다리 잘린 고양이의 용서(6)

투견장의 구석

by 이채

으르렁대곤 한다던 호랑이는 잠에 빠져 있고, 원숭이들은 관객들에게 노골적으로 바나나를 요구한다. 딱히 궁금하진 않았으나, 예상을 많이 빗나가는 풍경도 아니다. 꿈속에서 동물들은 구경꾼들에게 뭔가를 바라거나, 심드렁하거나 했다. 눈을 뜨고 나서는 기억과 도무지 구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만치 생생하다 여기다가도, 금세 깨닫는 건 딱히 현실이 구분할 만치 생동감 넘치지 않는다는 정도다. 그러던 중, 미몽의 환상이 흐릿해진다. 그저, 동물들도 자기 영역이 있겠으나 미성년의 인간은 그조차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이 남겨진다.

학교와 학원에서 첨예하게 감시되고, 친구 관계 또한 부모가 마음만 먹으면 다 알 수 있도록 대비되어 있다. 철우는 때때로 불쾌하다. 누군가를 마주하기 전, 갈무리할 시간이 아이에게는 너무 없지 않은가. 함께 뒤섞인 채, 스스로 관찰할 시간도 없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대화에 내맡겨진다. 파도가 몇 번 치고, 그 아래에서 저들의 판단이 개시된다. 일종의 감옥이, 표준으로 정당화된 시야 앞에서 생활하고 성적표를 되돌려 받는다. 어른이라는 이름표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도리어 꼴불견의 파충류만 있다는 걸 너무 잘 알 법도 한데, 이를 확인하지 못한 채 불안 속에 머물도록 종용당한다.

저들의 전통적인 체계가 강요하는 무수한 요소들에 계속해서 저항할 수 없도록, 도시의 시선들이 제한하고 있다. 몇 없는 CCTV와 미증유의 경찰관들에 대한 정보가 소년에게는 없다. 덕분에 위협적이다. 요컨대 교복이나 제복과 같은, 어떤 종류의 으름장이 골목을 타고 돌아다닌다.

그가 옆자리의 현수에게 말을 걸었던 건, 그런 상념을 따라 머릿속을 떠돌다 일어난 일이다. 그러므로 어른들이 모를 법한, 아직 친하지 않은 이. 실로 예상 불가능한 누군가에게 학원에서 서로 얼굴만 알다가, 처음 말을 섞는다. ‘이거 재밌어?’ 녀석이 가방에 싸서 가져온 만화책을 통해 시작된 대화가 한참 이어지다 마무리된다. ‘나도 책 좋아하는데. 만화책도 많이 보는 편이고.’ 그의 말에 현수도 흥을 내서 대화에 속도를 붙인다. 그렇게 하교 시간이 다가올 즈음, 철우가 덧붙인다. ‘그럼 너네 집에 놀러 가도 돼?’ ‘그럼.’ 많은 말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손쉬운 승낙의 까닭을 당일 오후에 확인한다. 녀석의 집은 텅 비어 있다. 맞벌이 부모를 둔 현수는, 외동인 동시에 스스로 차분해서인지 딱히 걱정을 살 거 같지 않은 성격이라서인지 방치된 모양. 문제는 붙임성이 없어서, 스스로 어떤 사람과 쉽사리 친해지지도 못한다는 점을 부모님은 모를 거라는 점이랄까. 실은 전에도 몇몇 친구들을 전전하며 그들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는 했으나, 저들의 어머니가 철우의 어머니와 연락을 취하고자 시도할 때마다 자리를 피했다. 행로가 수집되는 게, 나아가 행선지를 추적해서 어른들끼리 공유하려는 의도가 메스껍다. 어릴 적부터 여태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방문은 꽤 오래 이어가고 싶다. 주로 어른은 집에 없을 양으로 보이고, 녀석도 딱히 싫어하는 분위기가 아니므로.

그가 올라선 현수의 집은 3층짜리 주택이다. 방학 동안 빈 시간을 보내는 데 좋아 보인다. 녀석이 물 한 잔을 가져온다. 혹시라도 민폐를 끼치기 싫어 되도록 자리에 앉아 독서만 한다. 그저 페이지를 넘기며 생각을 정리할 공간이 필요한데, 집을 제외한 도시 대다수의 공간은 돈이 든다. 그는 학생이고, 학생은 돈을 벌 수 없다.

교복을 갈아 입고 온 현수가 옆자리에 앉는다. 본인 방에서 평소에 읽던 만화책을 가져와 편다. 잠시간의 적막을 깨고, 그가 현수에게 흥미롭다는 듯 질문을 던진다. ‘진짜 그거 재밌냐?’ 그러자 녀석이 만화 속 등장인물의 온갖 이야기를 들려준다. 더욱 신이 나서는, 자기 방에서 해당 전집을 가져와 목청을 더한다. 한동안 듣던 철우는, 다시 책으로 돌아간다. 간헐적으로 만화책도 1권부터 보기 시작한다. 현수가 뿌듯해하는 게 눈에 선하다. ‘자주 와서 이렇게 책 좀 읽고 가도 될까?’ ‘그래.’ 녀석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