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수 없는 영웅들이 뭇 백성 위에 군림하는 이야기. 황량한 시대가 누군가의 대의를 정당화하는 양, 혹자의 혹세무민 또한 합리화하고 있다. 칼의 전쟁이기 전에 말의 싸움이며, 언변과 인용구의 덩어리들이 장면 간 문턱을 타 넘는다.
치세엔 능신이었을 난세의 간웅은, 친구를 배신하고 사촌을 살해하며 음모를 꾸며 전진한다. 미끼 삼은 친아들을 죽음에 밀어 넣는 임기응변과 더불어, 사후적 대의가 과오에 대해 끊임없이 변론을 시도하고 있다.
관객의 원망을 불러일으켜 정치술의 수단으로 삼고, 가신을 아끼는 태도 또한 실은 부리기 위한 치밀한 설계라는 풀이는 피가 난무하는 당대에서야 겨우 가능할 전략이리라. 금방 들킬 거짓말을 이어붙여서라도 일단 살아남아야 하며, 단순한 의기에 대해서조차 목숨으로 책임져야 하므로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상처와 피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이유로 쉬이 초인이 되기도 하는 이 중원엔, 소박한 만용도 삽시간에 행동으로 바뀌어야 할 테니까.
그러므로 사건들의 간격엔 갈등이 늘 숨어 있으며, 거기에는 끝없는 불안과 계산이 약동한다. 등장인물이 두려워하는 이상으로, 공포에의 극복은 숭배되는 동시에 과장된다. 허나 그런 과대포장은 서술자의 평가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모든 일들이 실제 일어났다는 역사에 의거하여 해당 감상은 더 멀리 뻗어 나간다.
역사소설이란, 그저 교양의 가면을 쓴 환상소설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조조에 심취하여 유비를 깔보고 있는 현수의 목소리는, 도리어 그 대상이 글월이 아닌 만화이기에 현실을 제대로 닮아 있는 게 아니던가. 철우가 보기에도, 인물에 관한 과대평가로서만 흥미가 동한다는 사실을 최소한 인정하고 있기는 하니.
지나온 대로, 열과 성을 다해 만화책을 설명하는 중이다. ‘정식 역사에서는 조조가 역사의 계승자로 나오지만, 나중에 허구가 많이 섞인 버전에는 유비가 그 역할을 한단 말이야. 근데, 국내 삼국지 만화책 중에는 유비 말고 조조가 주인공인 게 거의 없었어. 이게 거의 최초일걸.’ 녀석의 말에 따르면, 오락으로 소비되는 삼국지조차 정통 역사로부터 권위를 끌어온다. 더 사실적인 게 더 오락적이라니, 흥미롭다.
조조와 유비 시대의 역사를 서술한 ‘진수’의 아버지 ‘진등’은 유비에게 허리가 잘리는 형을 받아 죽었다. 그런 ‘진수’가 조조를 중심으로 전개한 역사 또한 그런 원한과 상관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나관중이 서푼의 허구를 심어 흥미롭게 만들고자 하였기에, 유비가 주연인 해당 창작물이 도리어 진실에 가깝다 언급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권위 이상의 현실이 어디 있을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살펴보는 권력의 작용은, 기어이 사실을 만들어낼 테고 지금 또한 그런 와중이다. 모략이 난무하던 시대에 진술된 사서 또한 그 모략의 일부분일 테니.
상념에 잠긴 철우의 눈이 공허하게 앞을 바라본다. 이런 허위에 열광하는 현수의 열정은 최소한 사실이다. 다른 사변들은 이를 위한 자료고.
현수는 여포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초선에 대한 사랑이 순수해서거나, 세계관 내의 최강자라서일 수도 있다. 등장인물에 이입하는 건, 전체적 관계 구조를 살피거나 저자의 의도를 잡아내고자 하는 독서와는 거리가 있다. 차라리 단조로운 이유가 많을 성싶다. 대표적으로, 다른 장소에서 받은 열등감을 해소하는 용도랄까. 곧, 책을 통해 환상을 넘나든다. 눈을 뜬 채 꿈을 꾸는 셈이며, 그러므로 녀석은 만화를 통해 의기양양한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어떤 종류의 콤플렉스일지. 여포의 멍청한 모습에서 순수한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을 발견해서였을까? 그저 단순하게만 보더라도, 무시당하지 않을 만한 완력을 가지고 있다는 까닭에서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야기꾼이 어떤 의도로 각 배역을 그런 식으로 묘사했는지 온전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게 살피자면, 만화는 오히려 가치 중립적이다.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묘사가 아닌 한, 그림을 통해 받는 인상은 즉각적이다. 요컨대, 저자가 아무리 여포를 미련하게 그리고자 의도하더라도, 그건 결국 대사와 그림에서만 표시된다. 읽는 이가 다르게 받아들이면 그뿐이니까. 추상적인 용어가 들어갈 자리는 상대적으로 비좁으며, 그래서 독자가 해석할 여지가 어떤 면으로는 늘어난다. 이미지에 사로잡혀 피상적인 상상력이 제한당하지만, 그로 인해 더 넓은 자유가 생기는 셈이다.
그러나 현수는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다. 자신이 어째서 여포를 좋아하는지, 왜 조조를 불쾌해하면서 또 그에게 호의가 가는지, 유비에게는 끝내 관심이 가지 않는지 살피지 못한다. 간간이 철우가 의혹을 제기하면, 반복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재밌으려고 보는 건데,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게 아닌 거 같아.’ 그러면 당연히 맞장구를 붙여넣는다. ‘그렇지. 볼 줄 아네.’ 더 깊이 질문하면, 이제 녀석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될 수도 있으므로 거기 정지한다. 이어 무의미한 감탄사로 돌아간다.
오후 8시에 어른들이 오신단다. 덕분에 7시 즈음 현수의 집을 나서며 여러 생각이 든다. 말실수했을까? 녀석이 설명하는 데 신이 났을수록 후에 찾아올지 모를 불편이 더 짙을 수 있겠지만, 들켰든 아니든 철우의 머릿속엔 이미 여포의 상과 녀석의 성격이 뒤섞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