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을 따라잡은 가로등이 연이어 빛을 머금는다. 행인들의 그림자가 여러 개 섞여 길어지고 짧아지기를 반복하던 중, 회사원들도 길을 따라 어딘가로 향한다. 그러고 보니 최근 야근이 줄었고, 회식도 많이 사라졌다. 그의 회사에서도, 이제는 점심에 친목을 겸해 식당을 빌려 주기적으로 식사를 할 거란다. 꽤 커다란 결단이자, 나름 시대에 문화적으로 적응하고자 하는 시도이리라. 술자리는 본래 꽤나 사적인 자리가 아니던가.
집을 향하던 가운데 들르곤 하는 포장마차가 있다. 술을 자주 마시지는 않는다. 다만 오늘, 신혼 즈음 와이프와 자주 마시던 소주가 당기기는 한다. 꼼장어를 주문하며 덧붙인다. ‘소주 한 병도 주세요.’ 아주머니가 고개를 까딱인다. 성호는 여기서 주로 요리만 먹는 편이다. 술을 먹으면 다음 날 몸을 버릴 거 같아 조심한달까? 다행히 내일은 쉬는 날이다.
실은 그런 이유가 아니다. 그는 여기에서 불편한 느낌을 찾아 마음을 무장하곤 한다. 주류 말고 요리만 시키면, 아주머니는 불쾌한 표정을 짓고 눈치를 주곤 한다. 장사로 치자면, 술에 마진을 두고 요리는 들러리인 모양이다. 이곳에 비하자면 집은 편하다. 그게 문제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들어서면 곧바로 액체가 되어버린달까? 덕분에 여기서 오돌뼈나 닭똥집 같은 음식을 씹으며 대비하고 돌아가지만, 매번 그대로다.
내어온 술과 잔을 건네는 손끝에 활기가 돈다. 너무 솔직하시다. 잔 하나에 병 하나. 반대편 손에 잡힌 젓가락 끝이 안주를 고르고 있다. 소주병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젓가락이 한 점을 입으로 가져오기 전 한 잔을 삼킨다. 생각 외로 잘 넘어간다. 오늘은 한 병으로 족하다. 딱히 슬플 일도 기쁠 일도 없다. 취할 명분은 없지만, 그래도 간혹 이렇게 마셔두는 게 장기적으로 좋을 성싶다. 야채까지 속속들이 긁어 입으로 가져간다. 반병 정도 마실 무렵 꼼장어가 동난다. 취기가 슬쩍 올라온다. 아득하면서도 무감각해진달까. 그러나 일정 이상 느슨해질 수가 없다. 두어 잔만 남기고 몸을 일으킨다.
현관에 다가설 때마다, 잠드는 느낌과 결부되어 거부감이 든다. 수면을 청해야 다음 날 일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이에 온전히 수긍되진 않는달까? 대문을 향한 그를 뒤따르는 걸음걸이가 들린다. 성호가 고개를 돌리자, 그의 첫째 아들과 눈을 마주친다. ‘오셨어요.’ ‘그래, 놀다 왔니?’ ‘네, 학원 끝나고 친구들이랑 있었어요.’ 녀석이 너무 조용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밖에서는 활동적인 면이 있나 보다. ‘잘했다.’ ‘술 드셨나 봐요.’ ‘응.’ 딱히 아버지에게 많은 게 궁금하진 않은 모양인지, 철우의 목소리도 성호의 말도 더 이어지지 않는다.
아들이 들어서고 ‘다녀왔습니다.’ 그가 뒤따른다. 구두를 벗던 성호의 눈에 희한한 게 띈다. 녀석의 운동화 밑창에 핏자국 같은 게 있다. 그가 냄새를 맡아본다. 피다. 아들의 신발을 들고 지켜보다, 누가 다가오자 내려 제자리에 둔다. ‘당신 왔네.’ ‘응.’ ‘밥 먹을래? 미역국 해놨는데.’ ‘먹을게.’ 주방으로 돌아가는 그녀를 따라나서며 말을 덧붙인다. ‘오다가 철우랑 마주쳤거든.’ ‘응.’ 성호의 착각인지, 그녀의 눈매가 한층 싸늘해 보인다. ‘아들이랑 퇴근길이 겹치니까 희한한 기분이더라고.’ 서연이 국과 밥이 담긴 그릇을, 식탁에 앉은 그의 앞으로 밀어놓는다. ‘먹어.’ ‘땡큐.’ ‘술 먹었어?’ ‘조금 먹었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랑 막내는 아까 저녁 했고, 철우는 친구랑 먹고 왔대.’ 성호가, 장남의 방과 이어진 복도를 슬쩍 바라본다. 그리고는 금방 느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