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잘린 고양이의 용서(11)

오딧세이

by 이채

둘은 말이 없다. 현수가 확인하기로, 친구의 페이지는 5분째 그대로다. 물을 자꾸 들이켜는 그의 바짓단이 신경 쓰인다. 핏자국이 분명하다. 손톱을 물어뜯던 철우가 갑작스레 말을 내뱉는다. ‘너, 나랑 학교 다르지?’ ‘응.’ 가방에서 문제집을 꺼낸다. 영어다. ‘우리 학교는 방학 숙제가 있거든.’ ‘우리도 있어.’ ‘마침 안 해서, 해야 될 거 같아.’ ‘책상 있는 방으로 갈래?’ ‘여기도 좋은 거 같아.’ 남의 집을 이리저리 돌아다닐 생각은 없다.

한참 동안 문제와 씨름하는 그의 옆에선, 만화책도 잘 읽히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푸는 게 아니다. 그저 답지를 확인하고 옮겨 쓰는 중이다. 멍하니 응시하는 현수의 눈길을 알았는지, 그가 한마디 한다. ‘너는 숙제 없어?’ ‘있어.’ ‘뭔데?’ ‘나는, 수학 푸는 건데.’ ‘응’ ‘포기하려고.’ ‘왜?’ ‘지금 시작해도 다 못하고.’ 철우가, 옆에 있던 비스킷 하나를 입에 넣는다. ‘답 뺏기면 되지.’ ‘우리 학교 수학 쌤은, 답이 맞아도 시키거든.’ 과자가 맛있다.

만화책을 옆에 두고, 풀이를 구경한다. ‘너는, 시켜보거나 하지 않아?’ ‘그래서 답지의 해석을 다 읽어둬야지.’ ‘나도 영어였으면 그렇게 할 텐데.’ 책 표면을 쓸어내리자, 과자 가루가 테이블에 쏟아진다. 얼른 주워 모은다. ‘쓰레기통이?’ 녀석의 손짓을 따라, 맞은 편 부엌으로 가져간다. ‘이건 다했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가서 쉬어야겠어.’ ‘왜 그래?’ ‘집중력이 떨어져서 독서가 안 될 거 같아.’ 가방을 챙긴다.

저녁을 하기에는 좀 이르지만, 배가 고픈지 현수네 집과 학원 사이 골목에 있는 국밥집으로 들어서서 국밥을 시킨다. 음식이 금세 나온다. 국물이 뜨거워 고기부터 건진다. 반찬으로 나온 김치를 듬뿍 얹어 씹는다. 금방 해치우고, 좀 전에 받은 돈으로 계산한다. 다시 길을 나서자 그제야 땅이 눈에 들어온다. 어디 파편인지는 모르나, 충분히 큰 돌덩어리들도 보인다. 그가 걷어찬다. 이리저리 몰고 다닌다.

어느새 학원이다. 카운터에만 계시는 선생님이 그를 발견한다. ‘다시 왔네? 너 수업 끝나지 않았어?’ ‘네, 그냥 문제나 좀 풀려고 왔어요.’ 자습실에는 철우 외에도 세 명이 더 있다. 다들 얼굴은 알 듯도 한데, 인사한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다들 숙제를 하던지, 아니면.

백팩을 빈 의자에 두고, 책들을 꺼낸다. 얼마나 풀었을까? 펜이 종이 위를 긁는 소리, 수업하는 양 저 멀리 들리는 희미한 목청, 복도를 돌아다니는 발걸음의 박자가 귀를 간질인다. 이제야 물어뜯던 손톱을 발견한다. 짐을 다시 챙긴다. 몇 시간이나 흘렀는지, 밖은 이제 어둡다. 배가 또 고프다. 집 앞에는 선생님의 SUV가 없다. 안심하고 현관을 들어서자, 거실에서 대화하던 부모님 중 어머니가 일어선다. ‘밥 차려놨다.’ 된장국 냄새다. 가방을 방에 두고, 옷도 갈아입는다. 식탁에 앉으니, 동생 녀석도 맞은 편에서 나름의 식사 중이다. 아까 전부터, 두 분 다 그를 곁눈질하신다. 철우가 물어보기를 기다리는지. 그래서 그는, 조용히 식사만 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