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는 기억하는 날의 이야기

서른 살, 한 살

by 목화

엄마는 스물아홉에 나를 임신해 서른 살 여름에 나를 낳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린 나이, 그러나 내가 태어나던 해인 1987년으로 돌아가면, 늦은 나이였다고 한다.


"그때 내 주변에서는 다 결혼하면 바로 애를 가졌어. 큰엄마, 둘째 큰엄마도 모두 신혼여행 가서 임신을 했으니까, 그런데 나만 임신이 늦어져서 내가 결혼을 늦게 해서 그런가 걱정했지. 우리보다 더 늦게 결혼한 아빠 친구 부부도 임신을 했다고 하니까 우리는 왜 이렇게 늦어지나 싶었지."


사실 늦은 것도 아니다, 엄마는 1986년 5월 10일에 결혼했고, 내 임신 소식을 그해 겨울, 12월쯤 알았다고 했다. 대부분이 허니문베이비이던 시절, 엄마는 찾아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면서 신혼을 보냈을 것이다.


나 : 맨 처음 나를 가진 걸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

엄마 : 좋았지, 행복했지. 이제 나도 엄마가 되는구나 싶었지.

나 : 아빠 반응은? 어떻게 알렸어?

엄마 : 전화로 말했던 것 같아. 아빠도 좋아했어.


"네 아빠가 너를 얼마나 예뻐했는지 몰라. 그 시절에 슈퍼백(요플레)이 나왔는데 동네 작은 슈퍼에 슈퍼백 6개가 들어오면 그걸 다 사 와서 너를 먹였어. 기저귀도 최고 좋은 것으로만 사고. 그렇게 키웠어 너를."


나 : 엄마는 나 낳다가 죽을 뻔했잖아. 그렇게 낳아서 나를 만났을 때 어땠어?

엄마 : 그랬지. 임신 중독이라고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해서 갔는데, 의사가 위험한 상황이라고 산모와 아이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냐고 아빠한테 묻더래. 아빠는 당연히 엄마라고 대답했지.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 둘 다 무사히 서로를 만나게 됐지.


응급 제왕절개로 너를 낳아서, 침대에서 일어나려면 하늘이 노래지고 겨우 바닥에 발을 디디면 온몸이 저 아래로 꺼지는 것 같았어. 그렇게 출산해서 누워있는데 친할머니가 오셔서 하는 말이 "아이고, 우리 막내아들만 아들이 없네."였어. 내가 임신중독이라서 아이 낳는데 죽을 뻔하니까 둘째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런데 그거 알지? 친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내 손을 붙잡고 "막내야 너는 딸이 있어서 좋겠다. 너만 딸이 있어서 얼마나 좋니"라고 말씀하신 거.


친할머니는 아들 셋을 낳았고 90세가 되던 여름 돌아가셨다. 첫째 아들인 큰아버지가 다시 아들 둘을 낳았고 둘째 아들인 둘째 큰아버지가 아들 둘을 낳았고 막내아들인 아빠만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두었다. 나는 친가에서는 삼대 독녀로, 자라는 동안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며 자랐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는 아직까지 남아선호사상이 남아있던 때였던 것 같다. 지금에야 딸 가진 엄마가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결혼해서 아들을 낳지 못하면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시대였다니, 나는 더 마음껏 열심히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지.


나 : 그러면 엄마는 나 낳고 언제 처음 본거야?

엄마 : 한 삼일쯤 지나서였던 것 같아. 그전까지는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힘들어 보러 가기도 어려웠어.

나 : 누가 데려다가 보여주고 그런 거 없었어?

엄마 : 그런 게 어딨어, 내가 내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어서야 보러 갔지. 너무 예뻤어.


"사실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지. 내가 엄마인가? 내가 정말 저 작고 예쁜 걸 낳았나? 네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줬을 때 비로소 나는 엄마가 된 것 같았어."




나 : 이 사진 기억나?

엄마 : 기억나지. 너 낳고 병원에서 데리고 나올 때, 내 나이 서른 살 너는 한 살.

나 : 신생아가 저렇게 머리가 자란다고? 진짜 그날 맞아?

엄마 : 그래 맞아. 얘는, 아기도 태어날 때부터 머리카락 가지고 나온단다.


서른 살, 내식대로 생각하면 아직도 한참 어리고 꿈은 많은데 어떻게 이뤄야 할지 모르겠고,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못하는 일 투성이에 갖고 싶은 건 많고 주머니에 든 돈은 별로 없는 그 나이에 엄마는 나를 낳아 엄마가 되었다.


엄마는 나를 낳아, 아기를 안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첫 아이인 나를 키우며 본능적으로 엄마가 되었을 것이다. 그때 엄마는 알았을까? 엄마 나이 예순여덟, 내 나이 서른아홉이 되어서도 나는 엄마가 정성스럽게 깎아준 단감을 받아먹고, 엄마가 해마다 겨울이면 담그는 김치를 받아먹고, 엄마가 차곡차곡 쌓아준 냉장고 속 반찬을 꺼내 먹고 여전히 인생의 크고 작은 산을 넘을 때마다 울면서, 엄마를 찾게 된다는 걸.


그 숱한 시절을 다 겪고도 여전히 엄마는,

나의 엄마이고 싶을까.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써내려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똑같이, 나를 만나는 이 길을 선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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