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와 역할

by 김만두

꼭꼭이의 백일은 설연휴였다. 설 연휴에 시댁 친척들을 모시고 백일잔치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주에 신랑이 코로나가 걸려버렸다. 집 회사 집 회사만 하는 아주 성실한 코스만을 따랐는데,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요즘은 대외적으로 코로나가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이제 갓 백일 지난 아이를 데리고 코로나에 걸린 남편과 백일잔치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코로나에 확진되기 전부터 호흡기 증상이 있었던 신랑 덕분에 백일잔치를 취소하고 일주일을 홀로 육아에 전념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 없이 육아를 했다. 덕분에 설연휴에는 전혀 쉬지 못했다. 그때부터였을까? 감정이 아주 조용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었는데 꼭꼭이의 백일이 지난 후 퇴근하는 신랑이 발이 동동거릴 만큼 기다려지고 혼자 하루종일 애기를 보는 것이 지겹고 버겁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꼭꼭이의 백일이 있고 그 다음 주에 오신 나의 부모님은 이틀간 열심히 나의 육아를 도와주셨다. 그 안에서 나는 딸로서의 역할,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루종일 고민하고 끊임없이 싸우며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머릿속은 풀리지 않는 얇은 목걸이 체인처럼 뒤엉켜있었다. 물론 아기를 걱정하는, 또 나를 걱정하는 부모님의 갖가지 잔소리는 덤이었다. 이틀 후 안녕, 열심히 손 흔들어 보내고 난 뒤 이유 없이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부모님을 사랑하긴 하지만 평소에 애틋한 감정은 크게 느끼지 못한 나였기에 눈물이 날 것 같은 가슴이 뜨겁고 일렁이는 느낌은 참 이상하다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온종일 버거운 육아를 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퇴근하는 신랑을 맞이하는 평일의 일상이 지속되었다. 빨리 지나가길 바라고 시간을 그냥 때우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주말이 되었고 시동생 생일이라 아기를 데리고 시댁에 갔다. 모든 건 순조로웠고 역시나 아기를 위한 잔소리를 몇 가지 듣고 시어머님이 챙겨주신 아이스박스 하나를 챙겨 집으로 왔다. 아기를 눕혀놓고 아이스박스를 열어 김치를 정리하는데 김치가 너무 많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빈통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컥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꽉 찬 김치가, 새로운 통을 꺼내서 담아야 겨우 다 담기는 그 김치들이, 뚜껑을 누르면 밖으로 새어 나오는 그 김치 국물들이, 마치 내게 주어진 역할 같았다. 엉엉엉 소리 내어서 울었다. 꼭꼭이 목욕을 시키던 신랑이 황급히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진정하라고 했다. 목욕 후 배가 고플 꼭꼭이를 위해 분유를 타면서 더 엉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 냉장고를 열어 김치 자리를 만드는데 엉엉엉 더 눈물이 났다. 불어난 역할이 소화가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모성애라는 단어가, 엄마니까 해야 한다는 그 사명감 같은 것이 머릿속에 꽉 막혀서 피가 통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잘 해내고 싶어서 인 것 같은데 어떻게 잘 해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 느낌이었다. 육아는 그만둘 수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라 더 속이 막혔다.


냉장고에 가득 찬 저 김치를 과연 다 먹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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