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개놈의 새끼야! 나쁜 놈의 새끼!” 엄마의 이상한 잠꼬대는 아빠와 헤어진 뒤부터 시작되었다. 깊은 밤이면, 악몽에 눌린 듯 낮고 거친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꿈속에서 엄마가 죽이고 싶어 하던 그 사람은 분명 아빠였다. 내가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가끔 나를 놀라게 하던 엄마의 잠꼬대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2020년 가을, 우리는 남동생과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았다. 그날 이후 엄마는 시들어가는 꽃송이 같았다. 쓰레기통에 버려질 날만 기다리는, 생기를 잃은 꽃. 아빠와 이혼하고도 늘 활기찼던 엄마는 좁은 방 안에서 처음 맞닥뜨린 깊은 슬픔에 끙끙 앓았다. 나는 이러다 엄마마저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제는 엄마를 내 곁에 두고 지켜봐야 했다.
“엄마, 미국 가자. 이제 한국에 무슨 미련이 있노?”
그렇게 몇 달 뒤, 엄마는 미국으로 왔다. 다행히 엄마는 서서히 달라졌다. 사람들과 어울렸고, 스스로를 가꾸기 시작했다. 예전의 엄마로 돌아온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잠꼬대가 다시 시작되었다.
“아니, 글쎄. 내가 어제 내 잠꼬대에 놀라서 깼다니까. 깨고 나서 여기가 어디인지… 한참 생각하다 다시 잤다 아니가. 희한하제.”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 꿈에서 또 욕했나?”
꿈에 아빠가 나타나니,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혼 후에도 엄마는 삶이 벅찰 때마다 아빠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했다. 한때 문학도를 꿈꾸던 예쁜 소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잠결마다 무지개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욕을 쏟아내는 아줌마였다. 울분에 찰 때마다, 엄마는 시 대신 욕을 뽑아내고, 아름다운 글을 쓰는 대신 쌍욕을 중얼거렸다. 엄마의 울분이 가득한 욕설 잠꼬대는, 사실 그 시절 철저히 혼자였던 엄마가 스스로를 달래던 작은 마법의 주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의식적으로 터져 나오는 그 거친 말속에는 사과받지 못한 상처와 외로움이 섞여 있었다.
어쩌면 욕은 엄마가 버텨낼 수 있었던 유일한 다정한 위로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