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다.

관점 바꾸기

by 산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생긴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그때는 좋았는데 지금은 나쁜 일이 되기도 하고 그 당시는 나쁜 일로 여겨져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 일이 좋은 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얼마 전 정년퇴직을 앞둔 남편과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 의논한 적이 있다. 용돈도 줄여야 한다는 내 말에 남편이 농담 삼아 옆에서 듣고 있던 딸을 보며 “내가 못 벌면 딸이 보태 주겠지” 하고 건성으로 말했다. 거기에 나도 보태어 “딸이 하숙비를 내겠지” 하며 웃으며 맞장구쳤다. 농담을 진담으로 받는 딸의 성향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미 말을 뱉어버린 상태였다. 남편과 내 말을 듣고 있던 딸이 벼락같이 화를 내며 “딸에게 하숙비 받는 사람이 어디 있어! ”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화를 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27세인 딸은 평소에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독립하겠다는 말로 우리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해왔었다. 딸은 자존심도 강하고 자립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농담처럼 던진 말에 딸은 비수를 맞은 듯 상처를 입고 말문을 닫아 버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말실수한 것을 바로 사과했으나 딸은 감정이 폭발해서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딸이 성실히 일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자기 앞가림이라도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내 무의식에 딸에게 은근히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무조건 미안하다고 말했고 마음을 표현하는 카톡을 전했으나 딸은 읽지도 않았다. 감정이 많이 상한 것 같았다. 딸이 마음을 열 때까지 내가 먼저 말을 걸고 대답을 안 해도 밥도 챙겨주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보통 자식들은 부모가 그런 말을 하면 흘려듣거나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정상인데 딸은 오히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도움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딸의 모습을 보며 20대의 나를 떠올려보았다. 나도 부모에게 용돈이나 생활비 줄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고 받으려고만 했다는 생각에 이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고 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또 망각했구나. 내가 했던 말들이 딸에게는 엄청 서운하게 들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볼 때마다 사과하면서 딸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걸고 물으면 말은 하지 않고 예스일 때 눈꺼풀을 깜빡였다. 미안함을 받아들이긴 하는데 아직 감정이 풀리지 않음을 알리는 신호인가? 살짝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딸 눈치가 보여 참았다. 그것도 소통의 한 방법이라 생각하니 다행이었다. 그렇게 무언의 대화라도 하니 답답한 마음도 점점 편안해지면서 딸이 예전처럼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할 일에 좀 더 집중하게 되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딸이 마음을 활짝 열고 웃으며 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딸이 스스로 답답했는지 묻는 말에 조금씩 대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퉁명스럽게 시작하다가 점점 말수가 많아졌다. 그동안 어떻게 말문을 닫고 지냈는지 모를 정도로 요구사항이 많아지고 잔소리도 많아졌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차라리 말 안 할 때가 좋았구나. 바라는 대로 되었는데 또 그것이 귀찮은 일이 될 줄이야. 그래도 잘못한 일이 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딸에게 맞추었다.

딸이 말문을 닫은 것은 나쁜 일이고 딸이 마음을 연 것은 좋은 일인데 좋은 일이 또 나에게 나쁜 일로 여겨지니 일어나는 상황을 내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좋고 나쁨이 정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나쁜 일이 생겨도 좋은 일이 생겨도 크게 구애받을 필요가 없음을 느낀다. 좋은지 나쁜지는 지나 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생겨도 나쁜 일이 생겨도 그 순간은 감정을 느끼지만 일어난 감정에 얽매이지 않으니 자유롭다.



작가의 이전글이해는 나를 위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