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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는 나를 위한 것

서로 다름을 인정하기

by 산들

내가 전업주부인데도 남편은 청소를 잘 도와주는 편이다. 일주일에 한 번, 주방과 욕실은 주로 내가 하고 방과 거실은 남편이 도맡아서 하고 있다. 남편은 시키지 않아도 일요일만 되면 걸레로 곳곳의 먼지를 닦고 바닥을 청소기로 밀고 물걸레로 닦았다. 어쩌면 내가 게을러서이기도 하고 위암 수술 후 체력이 약해져서 보다 못한 남편이 청소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자기 일인 양 책임지고 청소하는 남편이 고마웠다. 그 고마운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시되고 이제는 남편이 청소를 안 하면 해줄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점점 더 게을러지고 방청소는 남편이 하는 것이라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청소를 하던 남편이 갑자기 투덜거리면서 내가 남편을 부려 먹는다며 서운한 마음을 표현했다. 내가 시킨 것이 아니라 남편이 자발적으로 청소를 해놓고 짜증을 내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은 아들, 딸은 놔두고 자기만 청소시킨다고 투덜거렸다. 그 말에 나도 반박하는 말이 무심코 튀어나왔다. "아니 내가 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 해놓고 왜 내가 시켰다고 뒤집어씌워요? 앞으로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뼈가 부러져도 내가 다 할 테니.. 밥을 많이 먹으면 일도 많이 하는 것이 당연한 거 아냐?" 말하는 순간 내가 말실수하고 있음을 직감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남편에 대한 고마움은 싹 잊고 나의 억울함만 보였다. 참고로 그 후 남편은 일을 적게 하려고 밥을 적게 먹기로 했단다. ㅋㅋ 뒤끝이 길지만 귀엽게 느껴진다. 남편은 자신의 노고를 내가 당연시해서 투정 부렸을 뿐인데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남편 탓을 했으니 남편 입장으로는 화날만하다.


잘못을 인정하고 내가 먼저 걸레로 먼지를 닦겠다고 나섰다. 남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그동안 무심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동안 책임지고 방 청소를 도맡아 해 준 남편이 진심으로 고맙게 느껴져 걸레를 들고 큰방부터 먼지를 꼼꼼히 닦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닦아내다 보니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고 내 뒤에서 청소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던 남편 얼굴이 점점 어둡게 변했다. 평소 대충 닦던 먼지를 내가 너무 꼼꼼하게 닦으니 마음이 급해져서 기다릴 수가 없었던 걸까? 빨리 청소해 놓고 다른 일을 하려고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겨 나에게 걸레질을 맡겨서 후회된다고 했다. 하하하


나는 청소를 잘 안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너무 꼼꼼하고 완벽하게 하려는 성격이라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그래서 청소할 엄두를 못 낸다. 내가 게을러서 안 하는 것보다 너무 에너지를 과하게 쏟아서 끝내고 나면 기진맥진했던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청소를 시작하니까 청소를 대충 마무리했던 남편 눈에 내 행동이 얼마나 느리고 답답해 보였을까? 남편이 조급해져 재촉하는 모습을 보니 지난날 내가 딸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 마음이 짠해졌다.


딸도 자기 방을 엉망진창으로 내버려 두기 일쑤고 그러다가 정리 정돈을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다. 종일 정리만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성격이 급한 내가 느린 딸을 보며 재촉한 적이 많았다. 딸은 최대한 자기 속도에 맞춰 꼼꼼히 정리하고 있는 것인데 나는 딸이 느리다고 답답해하며 내가 서둘러 청소를 마무리했던 것 같다.


지금의 상황은 완전 반대로 내가 딸의 입장이고 남편이 내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야 남편의 답답한 마음도 이해되고 딸의 억울한 마음도 이해된다. 딸에게서 일으켰던 분별심이 완전히 사라지고 미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서로 자기 생각을 주장하며 얼마나 갈등을 일으켰던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 방식만이 옳다고 고집했으니 딸 입장에서도 답답했을 것이다.


딸이 느린 것이 아니라 꼼꼼해서 천천히 하는 것임을, 딸의 모습은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임을 딸 입장이 되어서야 알게 된다. 내가 하는 것은 로맨스고 남이 하는 것은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이 남녀관계가 아니어도 일상에서도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 상대 입장에서 보면 이해 못 할 것이 없음에도 우리는 자기 입장만 고집하며 살고 있진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해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니 이해는 나를 위한 것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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