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늙고 병들고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

고양이에게서 배우다

by 산들

눈이 온 등산길은 마음이 설렌다. 겨울이라 옷을 두껍게 입고 단단히 무장하고 갔는데 바람이 불지 않고 맑은 날이라 외투를 벗어도 될 정도로 기온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산길을 덮은 눈은 녹지도 않고 얼지도 않은 걷기에 딱 좋은 상태다. 상쾌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오니 몸과 마음이 상쾌해진다. 기분이 좋으니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잎을 모두 떨구어내고 앙상한 가지들만 남은 겨울나무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천천히 걸었는데도 벌써 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 입구에 덩치가 커다란 고양이가 앉아있다. 따뜻한 해를 마주하고 조용히 눈을 감은 채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보통 산 고양이들은 멀리 서라도 사람이 다가오면 재빨리 몸을 숨기려 하는데 이 고양이는 가까이 다가가도 움직이지 않는다. 경계심이 없다. 나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고양이와의 거리가 거의 1미터 정도 되자 그때야 나를 의식했는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나무 밑으로 걸어간다. 사람을 경계하긴 하는데 몸이 무거워 움직이기 귀찮은 것처럼 보인다.


전망대에 마련된 긴 나무 의자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데 고양이가 살금살금 걸어 나와 내 옆에 앉는다. 나를 정면으로 보며 마주 앉아서 다시 눈을 감는다. 등을 보여주지 않으니 경계는 하는 것 같다. 내가 먹는 간식에도 관심이 없고 그저 눈을 감고 그 시간을 즐기고 있다. 간식을 건네려다 방해하는 것 같아 그냥 지켜본다.


자세히 살펴보니 눈이 조금 이상하다. 다쳤는지 눈을 떴는데도 검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고 흰자만 살짝 보인다. 눈곱도 떼지 않아 덕지덕지 붙어있다. 몸은 비대하게 살쪄있고 얼굴도 부은 것처럼 동글동글하다. 보통 몸은 살쪄도 얼굴은 고양이 형상으로 갸름한데 이 고양이는 얼굴도 호빵맨처럼 살쪄있다.

고양이는 몸을 스스로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의 관리를 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둔 상태다. 비만인지 부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왠지 편안해 보인다. 모든 것을 초월한 도인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하산할 준비를 하고 일어서는데도 고양이는 부동한 채로 그대로 앉아 있다.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집에 와서 고양이의 편안한 모습이 자꾸 생각나 찍은 사진을 딸에게 보여주니 죽을 때가 다 된 것 같다고 한다.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딸의 말을 듣고 보니 고양이의 모습과 행동이 이해된다. 모든 것을 초월한 모습이 현실에 집착하는 인간의 마지막과는 다른 모습이라 갑자기 숙연해진다. 늙고 병들고 죽음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자연의 담담한 마음을 배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