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으로 사는 법

바라는 마음 내려놓기

by 산들
주인으로 살기.png

저녁을 먹으면서 갑자기 세탁기에 있는 빨래를 널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과 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위가 없어 음식을 먹고 쉬어야 움직일 수 있는 몸이라 빨래가 구겨질 것 같아서 걱정되었다. 남편과 딸은 서로 미루며 하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지금껏 내가 가족을 위해 밥도 차려주고 빨래도 해주었는데 그것 한번 못해 주나 하는 생각이 들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딸은 내가 하면 같이 하겠다고 하고 남편은 그동안 스스로 많이 도와주었으니 딸이 빨래 널기를 은근히 원했다. 남편은 얼른 밥을 먹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딸은 하기 싫어 아빠가 하면 같이 하겠다고 아빠를 설득하라고 했다.


밥상을 차려놓고 밥을 먹으라고 할 때는 좋아하더니 빨래를 널라고 부탁하니 모두 도망쳤다. 서운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남편에게 먼저 가서 평소에는 잘하지 않는 아양을 떨고 부드러운 말로 부탁했다. 비굴한 마음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남편이 웃으며 하겠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만약 거절했다면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갔을지 모르겠다.

남편이 빨래를 널고 있는데도 딸은 자기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또다시 부드러운 말로 부탁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딸은 평소에도 청소를 도와주지 않는데 무엇을 바라겠는가. 남편 혼자서 많은 빨래를 널었다.


일어난 상황은 평상시와 똑같은데 마음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느꼈다. 서운함과 비굴함에서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딸에 대해 포기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가족이 집에 없었으면 평상시처럼 빨래가 구겨져도 잠시 미루었다가 편안하게 널 수도 있었는데 가족이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니 부정적인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와 집안일을 자기 일로 여기지 않는다고 가족을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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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장난에 놀아나고 있었던 내 모습을 돌아보며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인으로 살기 위해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도와주면 고맙고 안 도와줘도 할 수 없고 부탁을 할 수 있지만 부탁을 꼭 들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거절할 자유도 상대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얻으려고 하고 바라는 마음이 강할수록 비굴해지기 쉽고 노예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주는 마음이 주인으로 당당하게 사는 길임을 또다시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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