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라는 시스템 앞에 개인은 철저히 무력하다.
배경사진 출처 : 오펜하이머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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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과 분열, 시스템과 개인, 자기파괴와 모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킬리언 머피 주연의 영화 ‘오펜하이머’. 개봉 전부터 기대감을 자아내다 영화 ‘바비’와 함께 ‘바벤하이머’라고 불리며 미국 극장가에 돌풍을 일으킨 그 영화가 8월 15일 한국에 개봉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고한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수장, 오펜하이머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로 당시 일본 식민지였던 한국에서는 독립 기념일인 8월 15일에 개봉한 것이다.
아이맥스를 사랑하는 놀란 감독답게 아이맥스 흑백 필름으로 촬영했는데 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어 코엑스 돌비관에서 봤다. 아이맥스로 보려면 맨 앞에 앉아야 했는데 3시간 동안 고개를 들어 큰 화면을 읽을 자신이 없었다. 자막이 많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렇게 살면서 돌비관을 처음 가봤는데 스크린 화질이나 사운드 경험이 너무 좋아서 아이맥스와 다른 의미로 최고의 경험을 얻었다. 심지어 광고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 몇 분에 걸쳐 자랑까지 하더라, 돌비관은 이런 관이라고. 어른이 되고 나서 영화관에서 느끼는 막연한 노스탤지어가 더 이상 어렸을 때 갔던 영화관처럼 크고 웅장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부족함을 해결해 준 곳이 울산 아이맥스, 용산 아이맥스 그리고 이번의 코엑스 돌비다. 킬리언 머피의 눈동자와 눈꺼풀까지 떨리는 연기에 내 감정까지 떨리는데 돌비 사운드에 실제로 의자까지 떨려서 몰입이 극대화되었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예습했다. 오펜하이머와 함께 당대를 살았던 많은 인물이 나와서다. 그들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줄 것 같지도 않았고, 이걸 알아야 더 깊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좋아하는 궤도 형님이 말해주는 영상이 있어 매우 즐겁게 예습했다. 이에 대한 결론을 덧붙이자면, 예습하고 가길 정말 잘했다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지 않는 오펜하이머의 유년기 시절과 다른 등장인물들과의 관계를 알고 보면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들이 다른 의미로 들린다. 오펜하이머가 실제로 실험보다 이론에 강했다는 내용, 막스 보른이 그를 오만하기 짝이 없다고 평가했다는 내용, 그로브스와 서로 ‘내가 쟤 상관이지’ 라는 마음을 품고 있어 더욱 잘 맞는 동료였다는 내용… 특정 장면들과 대사에서 궤도의 설명이 연상되어 더욱 풍부하게 즐길 수 있었다. 시간상으로 우선인 오펜하이머의 시점을 컬러로 묘사하고 이후인 스트라스의 시점을 흑백으로 묘사한다. 일반적으로 과거를 흑백으로 연출하는 것과는 반대인데, 그렇기 때문에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데 더 집중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난 후 실컷 떠들고 다른 이야기들을 더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유튜브를 통해 이동진 평론가님의 영상도 찾아보는 등 유튜브로 더 복습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를 관람한 지인들과 한정 없이 떠들고 싶었다.
영화는 두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핵융합과 핵분열. 핵융합은 수소폭탄의 기저가 되고 핵분열은 원자폭탄의 기저가 된다. 융합과 분열이라는 구조는 영화를 전반적으로 설명한다.
물리학을 연구하는 당대의 지성들이 모여 연구를 이어갈 때 하나의 연구 결과가 도착한다. 우라늄에 중성자를 충돌시켰을 때 우라늄은 바륨과 크립톤으로 쪼개지고 2~3개의 중성자를 방출하는 데, 이때 강력한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내용이다. 이를 접한 물리학자들은 모두 떠올린다. 연쇄 핵분열 반응으로 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2차 세계 전쟁이 발발하고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원자폭탄을 연구한다. 미국에서는 나치보다 먼저 개발하기 위해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이 프로젝트를 이끌 수장으로 오펜하이머를 책봉한다. 뉴멕시코의 로스 앨러모스에 하나의 도시를 건설하고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력과 그 가족들을 끌어오며 프로젝트를 이어 나간다. 이게 세계 물리학자들의 융합과 분열이다.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참여한다. 전쟁이라는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융합이다. 이후 성공적으로 원자폭탄을 개발한 후 그들은 윤리와 수소폭탄 앞에 분열한다. 오펜하이머는 트리니티 실험에서 실제 원자폭탄을 터트린 후 수소 폭탄 개발을 반대하고 세계 기구를 설립하여 원자폭탄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지지하지만, 수소폭탄의 개발은 계속되었고 그가 사랑하던 뉴멕시코의 로스 앨러모스는 핵무기의 중추가 되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물리학을 사랑하던 교수 시절부터 비공식 청문회를 겪으며 산산이 조각나기까지를 보여준다. 그가 살면서 했던 행동과 말 하나하나가 모두 기록되고 왜곡된 채 모두 앞에 폭로된다. 누군가를 몰아내기 위해 작정한 자리에서 폭로되는 내용이라면, 그 앞에서 상처받지 않고 떳떳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영화에서도 강조하지만 절대 재판은 아니라고 하는 한 사람의 생을 할퀴는 비공식 청문회. 결국 연쇄 반응 끝에 한 사람이라는 세상을 파괴한다. 세기의 천재이자 수천 명의 과학자를 이끌고 세계적 거물이 된 오펜하이머조차 정치적 압박 앞에 무력했다.
핵무기가 전쟁억제력을 가진다는 논리에는 자기 파괴적 성향을 띄기 때문이다. 만약 제3차 세계대전으로 핵전쟁이 발발한다면 순식간에 지구는 죽음의 땅이 될 것이다. 핵무기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기를 가질수록 전쟁을 억제하여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모순이다. 언뜻 들으면 말이 되나 모두가 가지지 않는 것이 사실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결국 죄수의 딜레마처럼 우리는 효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고 칼날 위를 걷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만들지 말았어야 했냐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당시에는 나치와 전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오펜하이머는 핵무기를 완성하였고 제우스로부터 번개를 훔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이자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물리학과 뉴 멕시코를 가장 사랑하던 그는 핵무기 개발과 함께 모든 걸 잃었다.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핵폭탄의 위력을 실험한 후 이를 과시하여 전쟁을 종결시키려 할 수는 있다. 그런데 과연 이 폭탄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을까? 수만, 십수만, 수십만의 피해자를 비롯해 제대로 측정할 수도 없을 만큼의 피해를 자아내는 폭탄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일하게 일본만 항복하지 않았을 때 일본은 가미카제라는 자폭 전술을 사용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little boy’와 그로부터 3일 후 나가사키에 떨어진 ‘fat man’으로 항복하지 않았더라면 실제 많은 군인이 일본 본토에 대한 인류 최대의 상륙작전을 감행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 피해는 더 컸을 수도 있다. 전쟁터에 나간 미국 군인 부모님의 심정으로 무척 기뻤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영화는 원자폭탄을 개발해 낸 미국과 오펜하이머를 미화하거나, 전쟁 승리에 대한 고양감을 고취하거나 하지 않는다. 원자폭탄에 대한 두려움과 그 선택이 내려지기까지의 윤리적 갈등을 비롯하여 정치적 상황에 대해 관객에게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서 다루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에 대해 알 수는 없다. 3시간 안에 설명하지 못할 만큼 복잡한 상황이었을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모든 사실을 알 수 없는 나는 영원히 이 답을 찾지 못할 것 같다. 아니, 모든 사실을 알더라도 뭐가 최선인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벌어진 전쟁이라는 참극과 남겨진 피해에 대해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것밖에 없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메가박스 벽면에 ‘좋은 영화란 영화가 끝나고 난 후 시작되는 영화’라는 의미의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는데 이와 비슷한 말은 이동진 평론가님도 하신 적이 있다. 그렇게 봤을 때 오펜하이머는 명확하게 좋은 영화다.
국가권력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를 하는 개개인이 무능하고 부패할 수는 있으나, 국가의 권력은 전혀 무능하지 않다. 일반적인 작품에서는 이를 희화하여 무능한 국가와 영웅적인 개인을 부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가라는 시스템 앞에 개인은 철저히 무력하다. 한 개인에게 전체 시스템을 파괴할 힘이 있지 않은 한 시스템은 그를 포용하거나 배척한다. 만약 개인에게 그런 힘이 있다면 그건 이미 시스템의 영역으로 사실상 더 큰 시스템에 복속되는 것일 뿐이다. 어떤 시스템에도 속하지 않은 개인이 현재를 살아갈 방법은 없다. 나는 이걸 잘 묘사한 작품들을 좋아하고 오펜하이머는 국가라는 시스템이 가진 힘을 잘 보여준다. 요즘에는 기존과 달리 플랫폼과 알고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초국가적인 시스템들이 개성을 지우고 개인을 없애고 있다.
2023.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