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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조약사료진열관-상하이의 시작

by 안나

난징조약사료진열관

상하이는 난징이 낳았어요.

1840년 6월, 영국은 아편무역을 구실 삼아 중국을 침략하는 역사 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 불리는 아편전쟁을 일으켰고, 청나라는 전쟁에서 참패했습니다 1842년 8월 29일, 난징에 영국군함이 들어오며 난징조약이 체결됩니다. 아니 체결당했죠.

1842년 8월 29일, 청 정부는 난징 하관(下关) 강가에 정박한 영국 군함 영국 함정 HMS Cornwallis (康华丽) 위에서, 근대 중국 역사상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난징조약’ 체결을 강요당했습니다. 난징시 하관의 정해사(静海寺)는 당시 조약이 논의·서명·체결된 주요 장소로, 중국 근대사의 굴욕과 상처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난징조약사료진열은 “굴욕에서 부흥”으로라는 주제를 통해 난징조약의 논의, 협상, 체결 과정과 그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어요. 난징조약은 7차례 협상 과정이 있었다고 하네요.

당시 청나라를 둘러싼 열강의 으르렁거렸던 탐욕을 그린 만평, 원명원의 아치문 장식도 보이고요.

과거의 일을 잊지 말고 훗날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경세종 經世鐘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종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묵직하게 일깨워줍니다.

난징조약으로 광저우, 샤먼, 푸저우, 닝보, 상하이 이렇게 5군데 항구가 강제개항을 했고 그중 상하이가 유독 크게 변하며 발전했어요. 강제개항으로 시작했지만 중국 근대화의 시작이었고 상하이에 영국, 미국, 프랑스 조계지가 형성되면 주권상실과 치외법권지대 확대로 이어졌어요.


화려한 번영과 일본군의 상하이 사변, 국민당과 공산당 내전까지… 상하이는 중국 현대사의 굴곡을 깊게 관통하며 지금은 아시아 최대 인구 도시, 세계 10대 도시, 그리고 한국에서 중국을 찾는 여행객의 90%가 향하는 도시가 되었죠. “중국에서 상하이만 무비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요.

이 상하이는 난징에서 시작되었어요.

난징도 좀 예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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