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D+6

by Bike and Books

하노이를 거쳐 루앙프라방에 와있다. 부모님, 남동생, 아들과 함께 여행 6일 차. 떠나기 전 생각했던 대로 우리는 서로 호흡을 맞추며 잘 지내고 있다. 일어나는 시간도 밥 먹는 시간도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분명 다 다른데 신기하게 말없이 서로를 배려하며 평화롭게 여행 중이랄까.


아버지는 패키지여행에 익숙하기도 하고 자유여행을 가더라도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 여행자라 나와 남동생의 여행 흐름이 너무 느긋하고 심심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어떤 요구를 하지는 않고 일찍 일어나면 혼자 낯선 도시의 길을 눈으로 몸으로 익히며 산책을 하고 느지막이 우리를 깨운다. 당뇨 때문에 식사 시간도 일정해야 하고 식사 전후로 운동도 엄청 열심히 하시는데, 여기서도 자신만의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나와 내 동생은 구글맵으로 먼저 길을 익힌 후 목적지를 향하는데 아버지는 먼저 걸어본 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러다가 동생이랑 빠직! 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럴 때는 엄마 아빠가 팀이 되고(아빠가 길을 아니까) 나와 내 동생이 팀이 되어 각자 갈 길로 가고 같은 목적지에 도착한다. 아버지가 우리처럼 론리 플래닛 시절에 여행을 시작했다면 아마 세계의 모든 골목길 지도가 머릿속에 들어있을 분이다.


엄마는 남편과 자식과 함께 하는 순간 그 자체가 좋은 것 같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액티비티도 하고 집라인도 타고, 남편 손 아들 손 잡으며, 딸과 손자 응원받으며 짜릿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만끽하는 게 눈에 보인다. 소녀처럼 철없이 행복해하는 모습, 맘껏 서툰 모습이 귀여워서 나와 동생은 연신 엄마 왜 이렇게 귀엽냐고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우리에게 큰일이 있을 때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묵묵한 믿음과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겨도 절대 티 내지 않고 혼자 해결하기도 했다. 그에 비해 엄마는 하늘처럼 바다처럼 우리를 품어주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아버지의 홀로 강함과 어머니의 함께 강함, 그 두 강함을 나와 내 동생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소년 소녀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그들을 향한 존경심이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하긴 인생 대부분의 순간에 나와 내 동생이 훨씬 철부지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엄마 아빠를 귀엽다고 느끼는 것조차 철없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동생은 늘 가족의 인정에 목이 말라있다. 어쩌다 보니 남들의 기준과는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밖에서 아무리 인정을 받아도 부모님의 ‘평범함’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있고, 부모님도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기도 하다. 부모 자식 간에도 궁합이라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럭저럭 맞고 내 동생은 좀 덜 맞는 타입인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맞는게 더 좋은건가 그건 잘 모르겠다. 사랑으로 따지자면, 그 성격도 크기도 동생을 향한 것이 늘 더 많았다. 내가 종종 들었던 말은 ‘너는 알아서 잘하잖아.’였는데 어떤 때는 그 말이 나를 으쓱하게 했다가, 어떤 때는 너무 큰 부담이기도 했다. 동생에게 퍼붓는 사랑에 대한 변명이자, 나에 대한 믿음과 기대이기도 해서. 동생은 지금도 부모님의 인정과 사랑을 원하는 어른아이고, 나는 다른 데서 인정과 사랑을 원하는 어른아이다. 뭐가 더 좋고 뭐가 더 나쁜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다름의 문제일 것 같은데 때에 따라 더 좋은 것과 덜 좋은 것이 달라지는 듯 하다. 어쨌든 동생은 욱하는 성격을 잘 컨트롤하면서 부모님을 따뜻하게 챙기고 있다. 나의 무뚝뚝함보다 동생의 따뜻함이 부모님을 훨씬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다. 특히 엄마를.


나는 아주 이중적인 여행을 하고 있다. 부모님, 동생,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좋기도 하면서 혼자였던 과거의 시간들과 이 여행 후에 이어질 혼자인 시간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다. 숙제 같은 감정들도 남아있는데, 예전 같으면 이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든 빨리 해결하기 위해 결정을 내리고 통보를 하고 했겠지만.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자꾸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동시에 익숙한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해결 방법을 배우고 싶기도 하다. 여행의 모든 순간이 좋으면서 동시에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 아주 이중적이다. 우리 중 가장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나일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 순간의 소중함과 특별함, 지금도 좋지만 두고두고 좋은 시간들에 감사하며 행복하다.


예비 고1 아들은 아마 집에 가고 싶은 순간이 많을 것이다. 핸드폰 게임도 실컷 못하고, 어른들보다 친구들과 수다 떨며 놀고 싶고, 컴퓨터 게임도 하고 싶고, 혼자만의 시간도 갖고 싶을 텐데. 열흘동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외삼촌 엄마와 24시간 같은 방에서 같이 지내고 있는 게 쉽지 않겠지. 그래도 순간순간 너무 행복해하는 얼굴이다. 오히려 나랑 둘이 다닐 때보다 덜 지루하고 더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 상대해 주는 어른들도 많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수시로 칭찬해 주시고 외삼촌은 제 맘을 알아주고 편들어주니까. 나만 악당이지.

외할머니가 ‘핸드폰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라고 하니 그 다음날 바로 이북을 챙기는 것만 봐도. 이 녀석은 참 착하다 싶다. ‘평소보다 적게 한 건데’ 라고 모기 소리로 항변하기는 했지만ㅎㅎ


내일은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아빠가 묻기 전에 얼른 정해야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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