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지나간 시간과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50살이 되면 이혼을 할 거야
그런 다음 일을 그만두고 일 년 동안 세계 여행을 떠날 거야
한 도시에 머물며 그 도시의 말을 배울 거야
그 말을 쓰는 여러 도시를 여행할 거야
인생 후반부에 어떤 일을 할지 다시 생각할 거야
그리고 그때까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삶을 살 거야
단 하루라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야
이혼은 (다행히) 그보다 빨랐고
나머지는 별 일이 없다면 계획한 때에 맞추어 진행될 것이다.
15년 전부터 생각했던 꿈.
그때는 진짜 꿈같은 일이었는데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꿈.
오랜 지인들이기에 다들 알고 있었던 이야기인데도
늘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대하는 듯하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처음 생각했을 때 제일 필요한 것은 돈이었고
그날 바로 은행에 들러 적금을 들었다.
일단 돈이 있어야 시작을 할 수 있으니까.
시작을 하면 뭐든 하게 되어 있으니까.
그 돈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몇 년 전에 알았다.
적금을 늘리고 싶었는데 짜낼 구석이 없어서 그냥 두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다.
돈 다음으로는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것인데
그냥 어학 연수하듯이 언어나 배우고 해서는
하루가 너무 길기도 하고
새로운 일을 탐색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자각했다.
그러니 재충전과 재시작의 시간에 닿기 전에
무엇을 할지 미리 작정을 해야 한다.
그 고민도 작년부터 꾸준히 하고 있었는데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하는 여러 말들에
마음이 동한 적이 없어서 답을 찾지 못하고
사방팔방 더듬이만 세우고 있었다.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시절이다 보니
너의 이혼을 책으로 써라
너의 여행을 책으로 써라
쉽게들 책 얘기를 하는데
나는 감히 내가 쓴 글을 출판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브런치만 봐도 충분히 책이 되고도 남을 글들이 수두룩 빽빽이고,
서점에 깔린 책들 중에 돈 주고 살 가치가 없는 책들이 수두룩 빽빽이다.
스스로 만드는 트로피 같은 책은 생계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자아실현이 아니라 제2의 직업을 찾아야 한다.
지인들이 책을 낼 때 교정이나 교열, 윤문을 도우면서 이게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돈을 받고 작업을 할 정도가 되려면 전문 지식은 물론 믿고 맡길만한 충분한 경험과 실적이 필요할 거라서 그것도…
건강을 잘 관리해서 중년의 육체노동자가 되어야 하나.
그것도 고려 중이다.
나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어쨌든, 50살이 되면 꿈의 일부를 현실로 만들 거다.
다가올수록 실감이 난다.
새로운 꿈 덕분에 나이 먹는 게 싫지 않아
그것만으로도 이미 꿈같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