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경수 Oct 05. 2023

이데아와 인식론

Idea and epistemology

플라톤 '국가' 일부

  플라톤이라는 철학자를 떠올리면 아마 그의 이데아사상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일단 키워드 자체가 왜 인지 모르겠지만 기억에 각인이 잘되고, idea라는 단어가 평소에 우리에게 많이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철학을 아느냐 모르느냐를 idea를 어떻게 발음하냐로 판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처음 플라톤을 접할 때, 나는 이데아 사상을 통해서 그의 사유에 입문했다. 하지만 플라톤 하면 이데아로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사실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의 철학자인 파르메니데스가 그 원조라고 말할 수 있는데, 따라서 플라톤이 이데아 사상을 A부터 Z까지 다 완성시킨 것이 아니라, 선배이자 스승인 그들이 먼저 연구하기 시작한 사상을 완성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플라톤은 소크라테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철학자이며, 동시에 소크라테스는 플라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철학자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앞에서 플라톤이 이데아 사상을 연구할 때 파르메니데스라는 철학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파르메니데스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철학자로 유명하다. 그에 따르면 변화는 모두 감각의 기만이고, 있는 것만 있을 뿐, 없는 것은 없다. 따라서 그의 영향으로 영원히 불변하는 것인 이데아 사상이 탄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플라톤은 원래 반대편 학파에 속했던 사람이다. 그는 원래 파르메니데스와 정 반대의 주장을 펼치는 헤라클레이토스 학파에 몸을 담았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변화한다고 주장한 철학자인데, 모든 것은 변하지 않고 정지해 있다고 주장하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과는 정반대이다. 헤라클레이토스 학파에 몸을 담던 플라톤은 어떤 계기로 소크라테스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 후 그는 헤라클레이토스 학파에서 떠나고,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된다. 


  따라서 플라톤은 이데아를 먼저 믿고 있었던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데아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세상을 말한다. 우리는 감각으로 이데아를 느낄 수 없다. 그곳은 감각이 아니라 이성으로 도달하는 곳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이데아의 세계에 있었다고 믿었다. 우리는 원래 이데아의 세계에서 모든 지식을 다 알고 있었으나, 레테의 강물을 건너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것들을 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계에서 지식을 얻는 것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로 건너오기 전에 이데아에서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사유 안에서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그건 아마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지식을 되찾는 것이 아닐까? 


  여하튼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영향이 지대하다. 따라서 이데아론이 온전히 플라톤 만의 주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불변하고 영원한 이데아. 그것은 살아있는 육신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자, 우리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절대적인 무언가이다. 


  플라톤이 이상세계인 이데아와 현세계로 세상을 양분했는데, 현세계는 이데아의 모방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현세계의 침대는 이데아의 세계의 침대를 모방한 것이다. 또한 이데아의 침대는 완전하지만, 현세계의 침대는 그렇지 못하며, 이데아를 흉내 내는 가짜에 불과하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데아의 침대와 현세계의 침대를 비교할 때 전자를 훨씬 우월하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현세계의 침대끼리 비교를 할 때는 이데아의 침대와 얼마나 닮았느냐로 그 우열을 가린다. 만약 침대 A, B가 있는데, A는 이데아를 절반만큼 닮았고, B는 반의 반도 닮지 못했다면, 당연히 A침대가 더 좋은 침대일 것이다. 하지만 현세계에서 아무리 뛰어난 침대라도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침대보다는 열등할 것이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만든 아니 파르메니데스에게 영향을 받아 탄생한 이데아론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분법적 사고의 시발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서양철학사는 끊임없는 이항대립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이성과 비이성처럼. 

  당시의 이데아론은 플라톤의 글쓰기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소크라테스는 문자는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겠지만, 더 이상 암기를 할 필요가 없애기 때문에 망각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를 표했다. 또한 문자는 진리가 아니라 진리의 유사품을 주고 사람들은 진실성 없는 외형적 지혜만 가지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글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글쓰기와 말하기의 이항대립 구조를 구축하고, 후자가 전자보다 우월하며, 전자는 불완전한 가짜라고 취급했다. 따라서 그의 영향을 받은 플라톤은 최대한 원래의 진리에 가깝게 도달하기 위해서 대화의 방식으로 책을 썼다. 


----

  이 글의 제목이 이데아와 인식론인데, 원래는 플라톤의 이상국가에 대해 쓰려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글에 멱살이 잡혔는지, 내 의도와는 다르게 정치학이 아닌 인식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따라서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 원래는 플라톤의 '국가'를 다 읽은 김에 그 내용을 한 글에 요약하려 했는데, 4부작으로 나누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첫 번째 글인 이 글 '이데아와 인식론', 두 번째 글 '이데아와 미학', 세 번째 글 '이데아와 정치학' 그리고 마지막으로 플라톤의 이상국가에 대해 정리함으로써 이 시리즈를 마치려고 한다. 알바를 마치고 피곤이 누적된 상태로 12시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글의 퀄리티는 많이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내가 추구하는 내 글의 이데아에 도달하도록 노력해 보겠다. 


네이버 블로그

작가의 이전글 누가 철학자를 죽였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