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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Oct 07. 2023

사르트르의 철학

Sartre's philosophy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인간’은 철저하게 고정된 불변적 본질에 반하는 것이자 반보편적인 것이며, 반체계적이다. 이렇듯 어떤 본질, 보편, 체계로도 환원될 수 없는 개별성과 구체성을 구비한 인간 주체적인 현존을 가리켜 인간 실존이라 부른다. 사르트르에게 실존의 반대 개념은 ‘본질’이다. 또한 그는 인간에게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고 주장했다. 사르트르가 보기에 본질 개념은 인간이나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미리 설계되고 정해진, 일정한 목적을 위해 조직되고 만들어진 존재자들의 성질이나 속성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개념이다.


  인간에게 자신의 실존은 자신에게 맡겨진 것으로, 전적으로 그의 자유이다. 인간과 사물(또는 도구)은 인간이 그것을 사용하거나 소유하거나 아니면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할 수 있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인간은 자신의 몸, 과거, 친구와 적, 어려운 장애와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실존하며,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 자신의 자유를 가진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현재 상황에 자신의 의도와 미래에 대한 목표를 투영하면서 어떤 상황이든 바로 그 상황을 자신의 자유로운 행위 동기로 만들어나간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유롭도록 선고받거나 저주받았다고까지 말했다. 자유로움을 포기하는 것까지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허락된 마당에 인간 실존이 자신의 자유로움을 벗어날 기회나 조건을 찾기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매 순간, 매번 인간은 선택한다. 심지어 선택하지 않음까지도 여러 선택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또한 선택이라는 것으로, 따라서 우리의 선택은 부단하며 끝이 없다.     


즉자 존재인 '사물'과 대자 존재인 '인간'

  ‘즉자 존재’란 자신에게 한 순간의 지체 없이, 한 점의 거리 없이 바로 임하고 머물러 있는 존재자 또는 그런 존재자의 존재 방식이나 존재 양식이다. 반면 ‘대자 존재’는 자신을 마주하는 존재자, 자신에게 맞서는 존재자, 스스로 대답하고 이에 상대하는 존재자 또는 그런 존재자의 존재 방식이나 존재 양식이다.     


  즉자 존재란 다음과 같은 존재이다. 그것들을 둘러싼 상황이나 다른 존재자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재. 철저하게 자기 완결적이고 자기 폐쇄적인 방식으로 자신에게 머무른 채로 딱 달라붙어 있는 것. 그 본질에 따라서만 존재하면 될 뿐 그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될 가능성도, 소명도, 의무도, 당위도, 소망도 심지어는 그런 불안도 없는 존재.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을 대자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의식(conscience)이다. 대자적으로 존재하거나 실존한다는 것은 더 이상 자신에게만 딱 달라붙어 조금의 반성적 거리도 취하지 못한 채 눌러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순간도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 상태로, 그리고 자신이 그 자신이 아니게끔 저주받은 방식으로 존재하거나 실존하는 것이 ‘대자적’의 의미일 것이다.     


  즉자 존재는 무엇이라 규정된 채로 그 자신을 한 번도 초월하거나 벗어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즉자 존재가 반드시 사물이나 도구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부재와 결핍을 알지 못하는, 안 다하더라도 그것을 무시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존재자는 모두 즉자 존재이며 실존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자가 아니다.     

  사르트르는 하이데거가 시도한 것과 같이 (현존재와 다른 존재자의) 존재의 현상을 구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현상을 기술하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후설이 의식 내에서 의식이 체험한 것의 본질을 기술하려 한 반면 사르트르에게서는 의식 스스로가 기술의 대상이 되는 것이 현상학적인 의미의 본질 기술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나치게 의식 중심적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타자는 나를 바라보는 자”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는 세계에서 나를 바라보는 타자가 나타나면 나는 오히려 그에 의해 바라보이는 존재가 되는 역전 현상이 생긴다. 그러면 나의 이 기준에 작은 균열과 구멍이 생겨나는데, 그 지점이 바로 타자다. 타자가 중심이 되어 꾸미는 세계에서 나는 나의 고유한 자리를 차지하기보다는 객체에 불과하다. 타자는 나와 함께 세계 체험의 준거점과 주인공 자리를 놓고 다투는 존재로, 나를 끊임없이 주시하고 시선을 던지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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