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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Oct 09. 2023

이데아와 정치학

어쩌면 최초의 전체주의

테세우스 조각상

  플라톤의 『국가』는 플라톤 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 철학은 크게 진, 선 그리고 미로 셋으로 나뉘는데, 이 작품에서 우리는 플라톤의 진선미를 모두 느낄 수 있다. 첫 번째로 『국가』에 대해 다룬 글에선 '진'에 해당하는 인식론에 대한 이론을 다루었고, 두 번째 글에서는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해 다루었다. 『국가』의 미학에 대해 다룬 두 번째 글에선 플라톤의 미학에 대해 알아봤는데, 플라톤의 미학은 사실 인식론에 더 가깝다. 예술이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역할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그에게 예술이란 인식을 위한 도구로써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두 번째 글에서 잊고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플라톤이 미학을 최초로 다룬 철학자라고 한다. 직접적으로 미학이라는 단어를 그가 사용한 것은 아니다. 미학이라는 용어는 천 몇백 년 후 바움가르텐이라는 학자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글을 올리고 들은 생각인데, 인식론, 정치학(혹은 윤리학)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학에 대한 글을 썼다면 더 미학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이 순서로 글을 쓸 경우 '진선미'를 차례대로 다루기 때문에 뭔가 더 정석적으로 철학을 다루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진과 미에 다루었으니 별수 있나. 이제라도 이데아의 실천적인 부분에 대해 서술해보려 한다. 


세 개의 계급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국가에는 세 개의 계급이 있다. 통치자, 수호자, 노동자 이렇게 세 개의 클래스가 있다. 통치자는 제일 높은 계급이자, 지배자에 해당하는 계층이고, 수호자는 그다음으로 높은 계급으로, 나를 지키는 계급이고, 마지막으로 노동자는 말 그대로 국가를 위해 생산하는 일을 맡은 계층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계급은 선험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뒤에서 다루겠지만, 그의 이상국가에서 혈연과 핏줄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려부터 교육을 받고 시험에 통과하면서 개인들의 계급이 정해진다. 철저하게 능력주의 사회이자 동시에 평등한 사회라고도 볼 수 있겠다.  


  굳이 가방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면, 최상위 계층인 통치자, 두 번째로 높은 계층인 수호자 그리고 제일 아래의 노동자 순서로 가방끈이 길다. 노동자 계급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수호자가 되기 위한 커리큘럼에서 중도 탈락한 사람이라 중간에 배움을 그만두고 노동자의 길을 걷게 된다. 반면에 통치자 계층에 속하는 사람은 한 번도 탈락하지 않고 국가가 정해놓은 커리큘럼을 무사히 마친 사람이다. 그래서 노동자가 되기 위해선 배움이 짧아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위의 계층에 속하기 위해선 배움의 정도가 문제가 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의 세 계급은 마치 피라미드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계급 당 국민의 수는 노동자, 수호자, 통치자 순으로 많다. 소수의 통치자가 다수의 수호자와 노동자를 상대로 정치를 행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각 계급별 의무와 덕이 다른데, 이 조화를 통해서 그가 꿈꾼 이상국가는 온전히 유지된다고 믿었다.


아내, 자식 공유의 문제

  이 부분이 아마 『국가』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일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이상국가에서는 아내와 자식마저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오늘 밤에는 나의 아내인 저 여자가 내일 밤에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고, 오늘은 아무 사이가 아니었던 저 여인이 내일은 나의 아내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만약 국가의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면, 그게 누구의 아이인지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부모를 찾을 수 있지만, 2500년 전에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내를 공유하게 되면 자식도 공유하게 된다. 누가 누구의 자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저 미운 놈이 내 자식일 수도 있고, 저 똘똘하고 정이 가는 아이가 내 원수의 자식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진위를 알 방법이 없다. 따라서 국가의 모든 아이는 나의 아이이고, 국가의 아이에게 모든 어른은 부모가 된다. 따라서 편애가 없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누군가를 챙길 때 자신과 더 가까운 사람을 먼저 챙긴다. 따라서 만약 계급이 나누어져 있는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부모가 누구인지 다 알 경우, 부모의 계급에 따라서 아이들도 자연스레 계급이 나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능력주의는 물거품이 될 것이고, 부모에 따라 자식의 계급이 정해질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철저하게 특정 부모와 특정 자식과의 "국가-안에-가정"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모든 국민이 평등한 사회를 꿈꿨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는 부부의 잠자리에도 국가가 관여했다. 현대에는 국가가 그런 사적인 부분에도 간섭한다면 큰일이 날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2500년 전에 상상한 것이니 현재와 다른 관점으로 창작된 상상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정해진 어느 날에 생산가능인구가 모두 한 곳에 모여서 성교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기 때문이었을까? 특정 누군가와만 계속 관계를 가진다면 분명하게 그의 아이라는 게 자명하기 때문에 그런 성관계를 추구한 것일까? 


  정해진 날 잠자리 파트너는 제비 뽑기를 통해서 정해진다. 표면상으로 제비 뽑기란 상당히 공정하고, 운이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제비 뽑기는 국가가 미리 조작해 놓았다. 국가는 제비 뽑기를 통해서 미리 정해놓은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도록 했다. 그래야 우월한 남녀가 만나서 우월한 아이를 낳고, 열등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플라톤이 그린 이상국가에서 열등한 사람은 성적인 관계를 맺는데 제약을 받았을까? 그리고 열등과 우등을 나누는 기준은 뭐가 있을까? 계급일 경우에는 특정 계급에서만 아이가 나오기 때문에 누가 누구의 아이인지 어느 정도 가늠이 가능할 것이다. 상위 계급에서만 아이가 태어난다면 과연 그 아이를 하급 계급으로 내려보낼 수가 있겠는가. 따라서 계급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철저하게 능력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계급 또한 배제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특정계급에서만 아이가 나오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 우열의 판단 기준이 외모가 아닐까 싶다. 과거에도 역시 외모지상주의는 존재했던 것인가?


“그들의 아내를 공동 소유로 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어떠한 남자와도 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지. 아내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공유물이어서 부모는 자기 자식을 알 수 없고 자식들은 부모를 알아서는 안 된다는 법률이지. ... 우수한 남자는 우수한 여자와 결합시키고 열등한 남자는 열등한 여자와 결합시키는 것이지. 그리고 국민들을 가장 이상적인 수준에 이르게 하려면 우수한 자들의 자손만을 양육하고 열등한 자들의 자손은 양육하지 말아야 하네. 이것은 앞서 자네가 동의한 바의 내용으로 봐서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네. 그리하여 가장 우수한 양 떼가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가장 우수한 국가의 수호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도리가 없다네. 그러나 이런 사실은 통치자들만이 아는 비밀이어야 하네. 왜냐하면 국가의 수호자들이 이것을 알게 되면 국가에 대하여 반역할 위험성이 많기 때문이지.”
『국가』5권 중에서


철인정치

  플라톤은 이상적인 통치자가 철학자의 지혜와 통치자의 실용적인 기술을 모두 가진 철학자 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러한 통치자만이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직 철학자만이 감각세계인 현실이 진짜라 믿지 않고, 선의 이데아를 지각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까? 결국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은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달리는 하나의 각주인 것은 아닐까? 현명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에 반박할 사람은 없겠지만.


최초의 전체주의?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현재의 시점에서는 도무지 용인될 수 없고, 상식적이지 않은 국가이다. 지극히 사적인 섹슈얼리티까지 국가가 간섭한다 하면 21세기에 누가 좋아하겠는가? 아내와 아이까지 공유하여 모두를 하나로 묶는 그의 이상국가론은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국가 전체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서 말한다. 국민이 있어서 폴리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폴리스가 있어서 국민이 있는 거라고. 따라서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국민은 철저하게 폴리스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존재이다. 민주주의가 만연한 현재는 국가가 개인을 위해 있다는 담론이 널리 퍼져있지만, 플라톤은 명예체제, 과두체제, 민주체제, 참주체제야말로 잘못된 국가 체제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플라톤은 예술의 검열과 정형화된 국민 교육을 통해서 전체주의적인 본인만의 유토피아를 꿈꿨다. 왜 그랬을까?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에 의해서 사형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분명한 것 같다. 따라서 플라톤은 위대한 자신의 스승을 죽인 민주주의를 혐오하고, 스파르타와 같은 전체주의 국가를 꿈꾼 것일까? 결국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국가란 개인을 위한 울타리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존재가 부강한 국가를 위해서 예속되는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국가론 자체가 아니라 플라톤이 『국가』를 쓰게 된 배경부터 차근차근 봐야 한다는 사실인 것 같다. 그 사유의 배경을 먼저 파악하고 그 사유를 접함으로써 편견을 갖지 않고 그 철학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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