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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Dec 19. 2021

수직적 혹은 수평적 진리

진리는 어디에?

원자구조의 변천사 (출처 : 구글)


  중,고등학교 과학 교육과정에는 원자의 구조에 대한 부분이 있다. 고등학교때 문과를 선택하거나 이과에 가서 화학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원자 구조에 대해 배워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때 '화학1' 과목때문에 원자구조에 대해 배운게 마지막 기억이다. 그때 원자구조를 접하고 들은 생각은 "왜 자꾸 원자구조는 달라질까?"였다. 변천사가 다양해서 시험문제로 나오는 것은 당연하고, 다양한 원자구조에 대한 내용을 알아야하기에 이 부분이 싫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중장년층이 되었을때는 원자구조가 또 달라져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플라톤의 이데아(Idea)와 에피스테메(Episteme)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동굴 안의 세계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눈으로 보는 가시적(sensible)인 사실들은 모두 거짓이고, 이것을 독사(Doxa)라고 칭했다. 그리고 동굴 안의 세계와는 다르게 변하지 않고 언제나 옳고 동굴 밖의 세상인 이데아(Idea)의 세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 가지적(intelligible) 진리가 존재하며, 그것을 에피스테메(Episteme)라 칭했다.



  플라톤은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원자구조의 변천사처럼 당시에 진실이라고 믿었던 담론이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1803년 돌턴이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단한 작은 공이라고 정의했을때부터 톰슨이 1903년에 건포도 모양을 주장하고 증명할때까지 수 많은 과학자들은 돌턴의 모양을 플라톤의 에피스테메처럼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돌턴을 지지하던 과학자들이 톰슨의 모형이 더 옳다는 말을 들었을때 기분이 어땠을까?


수평적 진리(시간에 따라 변하는 진리)

  돌턴의 모형에서 톰슨으로, 톰슨에서 러더퍼드로, 보어의 모형에서 현대 원자모형으로 변한 것처럼 절대적이라 믿을 수 있는 담론 혹은 지식은 시간이 흐르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모순이 드러나고 다른 이론에게 '진리의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만약에 돌턴 시대에 살던 사람, 톰슨 시대의사람, 러더퍼드 시대의사람 그리고 보어 시대의 사람이 모두 시간여행해서 현대시간대에서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돌턴시대의 사람은 돌턴 이후의 모형은 믿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가 살던 시대에는 돌턴의 모형이 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톰슨 시대의 사람은 돌턴의 모형을 인정하고 그것이 진보하여 톰슨의 모형이 나왔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도 톰슨 이후의 이론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시공을 초월한 이 만남의 결론 사람은 자기 시대 이후의 이론은 믿지 못한다는 것 일거다. 그들 각자의 원래 시공간은 각각 다른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지구과학에서 말하는 지층처럼 '지식' 혹은 '진리'도 수평적 지층이 있는 것은 아닐까?

원자모형이론도 왼쪽 지층 그림처럼 누적되는 지식이 아닐까?


수직적 진리 (절대적 불변의 진리)

  수평적 진리와 다르게 수직적인 진리도 존재할까? 우선 수평적 진리와 수직적 진리의 차이에 대해 먼저 다루어야 한다. 수평적 진리는 그 시대에 통용되는 진리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 진리이다. 즉, 시간의 영향을 받는 진리이다. 반면에 수직적 진리는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이고, 같은 시대라도 지역에 따라 다른 진리를 의미한다.


그림판으로 직접 그려본 시공의 좌표

  그렇다면 수직적인 진리는 과연 존재 가능할까?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철학적으로 따져도 결함이 없는 담론만이 수직적 진리가 될 수 있을텐데?과연 우리 선조도 받아들이고 우리 자손들도 받아 들일 수 있는 진리란 존재 가능할까?아마 아마존에 사는 문명과 단절된 원시인이라면 수직적 진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기에 본인들만의 순수한 철학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원시인이 아니고 사회인이며, 수 많은 지식이 범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수직적 진리는 정말 존재 할 수 있을까?


진리는 어디에?

  수직적 진리를 함수로 나타내면 "x= k(상수)"의 형태 일 것이다. y값이 아무리 변하여도 x값은 항상 'k'일 것이다. 반면에 수평적 진리는 함수로 나타내면 "y=k(상수)"의 형태 일 것이다. x값이 아무리 변해도 y값은 항상 일정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세계는 끝없는 교류와 소통으로 인해 수직적 진리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하기에 수평적 진리 또한 불가능하다. 그럼 진리는 없는 것일까?



  과거에는 진리가 불변한 진리라 여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진리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는 담론일 것이다. 그래서 진리를 함수로 나타내면 "y=f(x)"의 형태 일 것이다. 그리고 x값의 범위가 정해져 있는 유한한 함수 일 것이다. 결국 진리란 편의점의 김밥처럼 유효기간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공간이나 이데올로기의 제약도 받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호남지방은 진보진영의 정당을 선호하고, 영남지방은 보수진영의 정당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지역색일 수도 있다.) 만약에 서울에서 온 어떤 관광객이 호남지역과 영남지역에서 보수진영을 찬양하고 진보진영을 비난하면 어떻게 될까? 호남지방에서는 아마 엄청나게 비난과 욕을 먹을 것이다. 호남지방은 진보진영의 텃밭이라고 알려져있는데 그곳에서 진보를 비난 하는 것은 큰 실수다. 하지만 보수의 성지인 영남지역에서 진보를 욕하고 보수를 찬양하면 그곳 어르신들이 맞는말한다고 칭찬하고 치켜 새워 줄 것이다. 이처럼 공간 혹은 지역마다 추구하는 진리(혹은 사상)이 다르다.



결국 보편적이고 영원한 "진리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진리는 유효기간이 있고, 공간의 제약을 받을 것이다.

네이버에서 진리를 검색해보았다.

 위의 사진을 보고 누구에겐 참되고 누구에겐 거짓인 명제를 우린 '진리'라고 칭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든다. '진리'란 상대적인 지식일까? 나와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이 대화를 할때 나의 이데올로기를 상대방에게 말할때 진리라고 칭해도 될까? '진리'라는 단어는 '완벽'처럼 이상적이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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