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nstant called oneself
이전의 글에서 주체(sujet)라는 자명한 개념의 계보를 뒤지며, 그것의 달력과 지도를 찾아내려 했다. 주체란 태초부터 그 자체로 완전한 즉자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과 같이 유동적인 대자적 개념이다. 여기서 즉자적 개념이라는 것은 사물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즉자존재는 자기 충족적이다. 존재 내부에 추호의 빈틈도 없다. 그것은 다른 존재와 결코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즉자존재는 “현재 있는 그대로의 존재”, 자기 이외의 다른 존재와는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는 존재, 따라서 ‘운동’, ‘결여’, ‘미래’, ‘가능성’ 등과는 거리가 먼 그런 존재이다(변광배, 120).” 하지만 주체성이라는 인간의 착각과 자만이 폭로되고, 기만되는 이상 우리에게 주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즉자적 의미를 가지지 않는―상수가 아닌 변수인― 대자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나임을 보증하는 절대적이며, 항구적인 불변의 본질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내가 '나'이며 내 행동의 주체가 '나'임을 보증하는 주체성이 무너졌을 때,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나의 내재성은 과연 존재할까?
“구조주의와 니체가 도입한 것은 단적으로 ‘주체’ 지위에 대한 의문이다. 데카르트와 칸트로 대변되는 기존의 근대 철학이 주체를 철학적 사유에 기초를 제공하는 일정한 상수로 가정하는 데 반해, 구조주의와 니체주의는 이를 이분화 작용 또는 힘에의 의지가 낳은 효과이자 결과물, 곧 종속변수로 설정한다(허경, 2023, 103).”따라서 개인의 특성은 그가 갖는 본질이 아니라 ‘구조 전체 배열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효과, 결과이다. 다른 구조, 다른 체계, 다른 배열은 다른 의미, 다른 특성, 다른 개체를 만들어 낸다. 각 개인, 곧 주체는 그가 속하고 있으며 그를 만들어 낸 구조가 발생시킨 효과이자 결과이다. 한마디로 주체는 구조의 효과이다! 구조주의에 의하면 차이들의 체계 혹은 구조가 개별자의 특성을 발생시킨다(허경, 2021, 19-20).
푸코는 '주체'의 계보학을 추적하며, 그 기원과 발생과정을 탐구했다. 푸코의 연구범위는 주로 르네상스 이후 서구 유럽이었다. 『광기의 역사』(1961), 『감시와 처벌』(1975),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 등 그의 굵직한 작품들은 모두 그러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 더 이전의 역사를 살펴본다. 그래서 푸코는 기존의 연구범위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 사회를 연구한다. 푸코의 연구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윤리에서는 자기와 맺는 관계를 포기하고 그 자리를 신과 맺는 관계들로 채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심세광, 404). 즉, 그리스도교 사회 이전에 개인은 자기와 관계를 맺었으나, 그 이후로 개인은 자기를 포기하고 신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주체를 성립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우린 자기를 만드는 자기 관계를 하지 않고, 신을 전제로 성립되는 주체를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 그때부터 주체(sujet)라는 것은 예속의 결과물이자 자유(Liberty)를 포기한 자유(Freedom)의 산물이 되었다.
이 작품은 푸코의 출세작이자, 대표작 중 하나이다. 에피스테메(épistémè) 개념을 제시한 이 작품은 과거의 나에게 그저 푸코의 인식론적 저작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말년의 작품들까지 다 읽고, 다른 2차 자료들과 함께 그의 초기 사유부터 다시 공부하다 보니 나의 생각이 그저 착각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흔히들 이 작품의 가치와 핵심을 에피스테메(épistémè)라 여기고, 거기서 발견하고자 한다. 말과 사물의 핵심 개념이 에피스테메임은 인정하나, 푸코에게 에피스테메는 그 과정의 매개체에 불과한 도구이자 수단이다.
『말과 사물』의 핵심 주장은 칸트가 재현 작용의 에피스테메에 입각한 고전주의를 끝내고, 인간을 에피스테메로 갖는 시대인 근대를 발생시켰다는 것이다(허경, 2023, 85). 이 저작에서 푸코는 칸트가 무한의 인식 불가능성을 주장하면서, 인간은 오직 유한을 인식할 수 있을 따름이라 주장한다고 말한다. 또한, 칸트는 푸코에게 고전주의적 재현 작용의 세계에서 단순히 부정적 한계로 간주되던 인간의 유한성을 근대적 사유의 긍정적 조건으로 전환시킨 인물이다.
푸코는 칸트로부터 시작되는 근대를 끝내기 위해서 『말과 사물』을 썼다. 그는 칸트로 대표되는 근대를 끝내고, 니체의 사유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저작의 마지막에서 인간의 종언을 예언한다.
근대 이후의 시대를 우리는 뭐라 불러야 할까? 푸코는 이에 대해 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근대를 끝내려고만 했다. 그렇다면 왜 그는 근대를 끝내려고 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알기 위해선 푸코의 생애 모든 연구를 관통하는 단어가 '주체'임을 알아야 한다. "푸코의 관심사는 언제나 주체였다. 그가 가진 관심은 ‘주체의 본질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하는 것이다(강미라, 11)."
"‘주체’라는 열쇠말을 가지고 푸코의 전 사유를 다시 되짚어 보면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는 광인으로 주체화되는 인간을 연구했고, 『말과 사물』에서는 인간과학의 대상이자 주체로 주체화되는 인간을 연구했으며, 『감시와 처벌』과 『지식의 의지』에서는 근대의 지배적 권력의 테크놀로지인 규율권력 및 생명관리정치의 대상인 개인 및 인구로 예속적으로 주체화되는 인간을 연구했다. 그리고 후기 사유에서는 자기 돌봄과 타자 돌봄, 혹은 자기 통치와 타자 통치라는 틀에서, 윤리와 정치의 교차 지점으로서의 주체 문제를 보다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다(심세광, 393)."
푸코의 관심사가 항상 주체였음을 감안하고서 우리는 그의 연구시기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놓아야 한다. 그의 연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국가박사학위인『광기의 역사』(1961)부터 『지식의 고고학』(1969)까지의 <지식의 고고학> 시기, 꼴레쥬 드 프랑스 교수취임 연설을 정리한『담론의 질서』(1971)부터 『성의 역사 1: 지식의 의지』(1976)까지의 <권력의 계보학> 시기 그리고 성의 역사 1권 이후부터 그의 죽음(1984)까지의 시기인 <윤리의 계보학>로 나뉜다. 이렇게만 봐서는 우린 푸코의 연구가 주체임을 알 수 없다. 하지만 각 시기의 푸코의 연구 주제를 질문화시키면 우린 푸코의 연구 주체가 주체였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초기부터 후기까지 그의 연구주제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의 주체로 구성되는가? (지식의 고고학 시기의 질문) 우리는 어떻게 권력관계 안에서 행사하거나 행사를 받는 그러한 주체로 구성되는가? (권력의 계보학 시기의 질문)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행위의 도덕적 주체로 구성되는가? (윤리의 계보학 시기의 질문)
푸코의 평생에 걸친 연구 주제는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주체였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주체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기존의 근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다.
주체라는 단어는 자유로운 개인, 실존의 미학을 지닌 현존재를 의미하기에는 푸코에게 퇴색된 단어였다. 경계를 허물며 자유를 외치며, 이성의 억압을 뿌리치는 그에게 주체라는 단어는 그가 원하는 새로운 시대에 미학적 실존을 의미하기에는 근대와 함께 사라져야 할 산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자기(moi)'를 주체를 대신하는 단어로 가져온다. 그에게 주체라는 것은 받아들여지는 것이고, 만들어지는 수동적 의미를 지니지만, 자기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미학적 실존을 의미한다. 주체란 근대와 함께 청산되어야 하는 과거의 것이었다. 새로운 시대에 그 빈자리는 자기로 대체될 것이다.
주체의 종속의 산물이자, 수용의 대상이었다면, 자기는 실존의 산물이자 능동성의 결과다. 주체라는 변수는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자기라는 상수는 변하지 않는다. 변하더라도 그건 즉자적 변화가 아니라 능동적인 대자적 변화일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은 비시간적 본질을 갖는 초월적이거나 자연적인 실체가 아닌 특정 시공간 내에서 구성된 사회적, 문화적 구성물이다. 푸코의 모든 기획은 시공을 초월한 이른바 유일한 ‘보편성’이 실은 특정 시공간 내에서 구성된 하나의 역사적, 문화적 결과물에 불과함을 드러내려는 작업이다. 철학자 푸코의 위대함은 ‘역사와 문화를 초월한 것으로 가정되어 오던’ 초월성, 보편성, 객관성 같은 관념들이 실은 ‘역사적으로 구성된’ 역사적 아프리오리들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당신은 당신의 역사, 당신의 경제, 당신의 사회적 실천, 당신이 말하는 랑그, 당신 선조들의 신화, 심지어 당신의 부모가 당신에게 해 준 어릴 적 우화까지, 이 모든 것이 실은 당신 자신도 명확히 의식하지 못하는 일련의 규칙들에 전적으로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허경, 2021, 128-224).
푸코는 왜 모든 기만성을 폭로했을까. 내가 푸코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가 회의주의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비판적이고 냉철한 포스트 모더니스트이기에 해체만 하고 대안은 주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니체와 같았다. 『도덕의 계보학』의 니체는 망치를 든 철학자로 기존의 서구 철학을 부쉈다. 하지만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작품에서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외치며, 개인의 실존에 활력을 넣어주고, 다른 존재 방식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했다. 그런 면에서 푸코는 니체와 참 닮아있다. 전반기와 중기의 그는 감옥, 이성, 권력을 공격하며 기존 서구 문화를 망치로 내려쳤지만, 말년의 그는 실존의 미학을 외치며, 다른 존재 가능성을 찾았다.
결국 현학적이며, 사변적인 이 댄디한 프랑스의 철학자는 간단한 것을 추구했다. 실존의 미학, 탈예속, 서신, 휘포므네시마, 파레시아, 파놉티시즘 등 이 모든 단어가 지칭하는 것의 껍데기 속에는 자기의 eudaimonia가 들어있었다.
변광배, 「장뽈 사르트르 : 인간 존재 이해를 위한 대장정」, 『현대프랑스철학사』, 창비, 2015.
허경, 「푸코와 칸트 : 칸트적 ‘근대’에서 니체적 ‘현대’로 (에피스테메의 변형을 중심으로)」, 『푸코와 철학자들』, 민음사, 2023.
____, 『미셸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 읽기』, 세창미디어, 2021.
심세광, 「윤리의 계보학과 고대 철학자들 : 자기 삶을 스캔들로 만들기(진실의 용기와 자유의 실천)」, 『푸코와 철학자들』, 민음사, 2023.
강미라, 「니체와 푸코의 실존의 미학」, 『현대유럽철학연구』 제62집, 한국하이데거학회,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