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경수 Oct 07. 2024

포퓰리즘과 미래

조삼모사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 - <카를로스 4세 가족의 초상>(1801)

선거철만 되면, 선거 공약과 당선 후에 어떤 정책을 펼칠지 공표하는 현수막이 넘쳐난다. 뭐 선거철이 아니어도 정치인들의 현수막은 어디에나 있지만 요즘 들어 그러한 현수막의 수가 증가가 확연히 체감된다. 파란색 테마 혹은 빨간색 테마의 현수막이 거래에 원래 저리도 많았던가? 그리고 현수막의 내용이 저리도 자극적이었나? 물론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보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 적었으며, 서울에 살지 않았으니 더욱 그러한 현수막에 노출되는 빈도가 적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수막의 수가 증가하고 내용이 인신공격에 가까울 정도로 자극적인 것은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흔히 좌파와 우파 혹은 진보와 보수라는 대명사로 그들은 불린다. 혹은 파란색과 빨간색 등 시각적인 요소로 현수막을 내건 주체가 누구인지 십중팔구는 때려 맞출 수 있다. 그들은 왜 현수막을 거는 것일까? 경사로운 일이 있어서? 아니면 너무나도 박수받아 마땅한 업적을 세워서? 내가 촌에서 자라서 그렇게 느끼는 걸 수 있는데, 보통 현수막은 서울대 합격, 서기관 임명, 교수 취임과 같은 누가 봐도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거는 거 아닌가? 그런데 요즘 현수막은 좋은 성과에 대한 축하보다는 자신의 성과를 생색내거나 자신이 지역구를 위해서 열심히 한다는 것을 굳이 티를 낼 때 쓰는 수단으로 느껴진다. 

 

그래. 정치인도 인간이기에 인정요구로 인해서 자신의 업적을 생색낼 수도 있고, 자랑스러운 자신의 성과를 지역구 주민들과 함께 축하하고 싶을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현수막은 국민으로서 크게 악감정이 들지 않는다. 아 드디어 저 문제가 해결되었구나. 그래 저건 좀 고쳐야 했어. 심하게 말해봐야 어쩌라고 정도?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의 발언 혹은 그들이 발의하고자 하는 정책들을 보면 저게 과연 나라를 위한 일인가 혹은 과연 미래세대를 책임질 청년들을 생각하고 만든 법안인가 싶을 때가 많다. 


굳이 어떤 정책인지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언제부턴가 세금은 덜 걷고, 국민들에게 복지와 혜택은 더 주려고 하는 것 같은 뉘앙스의 발언과 정책들이 눈에 띄는 것 같다. 어떻게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해 준다는 거지? 결국 국고의 바닥을 드러내어 다 같이 망하자는 건가? 


정책이란 결국 국민에 의한 것이며, 국민을 위한 것이다. 결국 그것은 등가교환의 법칙이 성립하는 순환이다. 따라서 우린 세금을 내고 그에 합당한 복지와 혜택을 누린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은 더 내고, 더 적은 사람은 덜 내며, 우리 사회는 부의 재분배를 실현함으로써 평등을 위하는 척을 한다.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살고 있기에 완전한 평등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권력은 최대한 사회를 평등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티를 내며, 서민을 위한 척을 한다. 그다음은 개인의 역량이다. 열심히 독하게 사는 사람은 부자로 신분상승하고, 평범하게 살면 현상유지를 하고, 생각 없이 살면 빈민이 된다. 


부의 재분배란 사실 불가능하다. 고조선 이래로 사유재산을 인정한 우리 민족이 어떻게 21세기에 와서 그들의 재산을 무슨 명목으로 몰수하고 재분배하겠는가. 그래서 그들에게서 세를 더 걷고, 그 자본을 사회 전체를 위해 사용함으로써 불균형과 양극화를 조금이나마 해소하려 한다. 그런데 걷는 돈을 줄이고, 푸는 돈을 늘리겠다? 이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 물 붓지 않는 독에서 물이 나오기를 바라는 상황 아닌가? 대체 어떻게 금투세와 종부세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면서 서민들을 위하는 복지 정책을 더 펼친다는 것일까? 좌우 여야를 막론하고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적게 벌고 많이 쓰면 바닥나는 잔고는 누가 책임지나요? 과연 그 정책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책인가요? 결국 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고, 서민을 위하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요? 


현재 정치판에서 국민들을 비전 없는 깡통정책으로 유혹하는 뱀 같은 정치인 말고, 장기적으로 국익과 국민을 위해서 진정으로 필요한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정치인은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하며, 국민은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소리를 하는 정치인만 지지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세금이란 국민에게 큰 부담이다. 몇 년을 뼈 빠지게 일해도 서울에 전셋집하나 구하기 힘든 게 슬픈 비극이다. 청년들은 물가와 월세에 허덕이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한 가정의 가장은 퇴근 후에 부업을 하며 조금이나마 더 벌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와중에 세율을 인상한다는 것도 참으로 암담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건 현실적인 정책으로 세금을 가장 공리적으로 쓰는 것이다. 왜 굳이 필요 없는 철도를 만들고, 고속도로를 개통해서 돈을 땅에 뿌리는가. 그 돈을 다른 곳에 썼더라면, 혹은 더 긴급한 곳에 사용했더라면 더 나은 상황을 초래하지 않았을까? 


국가와 집단은 결국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설립된 추상적인 집합이다. 그렇다면 그 집합을 유지하고, 리드하는 룰 또한 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단기적인 이익만 쫓는 집단과 장기적인 이익을 보는 집단 중에서 과연 미래에 웃는 곳은 어디일까?


네이버 블로그


글쓴이 저서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 - 현대미학과 그의 변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