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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Jan 04. 2022

[일기] 21년 1월 4일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 부산 1일 차


광안대교 야경

  부산에 왔다. 요즘에 여러 가지 요인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충동적으로 기차와 호텔을 예매해서 여행을 오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만 해도 귀찮았다. 아 부산 너무 먼데.. 왜 이렇게 이불이 따뜻하지… 하며 빈둥거리다 세수랑 양치만 하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중간에 판교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메뉴인데도 입맛이 없었다. 밥을 다 먹고 판교에서 버스를 타고 이태원에 갔다. 기운 없이 병든 사람처럼 이태원을 돌아다니다가 타로 집 간판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나는 원래 타로 같은 거 믿지 않고 실존주의를 외치며 사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들어갔다. 먼저 온 손님이 있어서 나는 뒤에서 핸드폰을 보며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이게 맞나? 그냥 서울역으로 바로 갈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고민하는 중에 앞 손님이 끝나서 내 차례가 되었다.


  여러 가지를 선택이 있었는데 나는 타로(디테일)를 택했다. 2~3개 정도를 15분에서 20분 정도 봐주신다고 미리 말해주셨다. 처음에 본 건 연애운이었다. 최근에 0 고백 1차임을 당했는데 미련이 좀 남아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중이어서 연애운부터 봤다. 그런데 타로 봐주시는 선생님이 소름 끼치게 맞는 말만 했다. 그녀의 성격과 우리 사이, 내가 생각하지 못한 점까지 다 말해서 많이 놀랐다. 내용을 다 말할 순 없지만, 내 연애운을 타로로 보면서 그동안의 시간들을 성찰하고, 내가 듣고 싶은 결말(?)과 고무적인 운명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진로에 대해 봤다. 나에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A(철학과 복수전공 후 대학원 진학), B(철학과 복수 전공하고 졸업 후 취업), C(전기공학 단일 학사로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취업)가 있다. 나는 봐주시는 선생님께 A, B, C 선택지의 내용은 말하지 않고 그냥 카드를 뽑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하시는 말이 C는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히 A, B, C 말고는 아무 내용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지금 전공에 맞지 않는 것을 알았을까?


  타로를 맹신하지는 않지만 오늘 타로를 본 덕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들어서 그런 걸 지도 모르는데, 타로를 본 다음에는 기운이 나고 이번 여행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태원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기차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미리 기차를 탈 수 있었다. 타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책도 읽고, 잠도 잤다. 잠을 좀 자서 그런지 부산에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느낌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부산역 앞에서 역 사진을 찍고 호텔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아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서서 갔다. 심지어 버스가 서있는 사람으로 꽉 찼다. 부산 버스를 처음 타봤는데, 서울버스랑 좀 달랐다. 기사님도 츤데레 느낌이 나셨다. 승차하는 승객마다 “어서 오이소~”하고 인사를 해주시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에도 미리 말씀을 해주셨다. 운전을 하시면서도 승객을 챙기셔서 운전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그 투박한 운전도 기사님의 정에 가려져서 부산버스 첫 경험은 좋았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라디오가 나왔다. 서울에서 탄 버스는 기사님만 들으실 수 있는 정도의 음량이었는데, 부산 버스는 승객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버스에서 음악을 안 듣고 라디오를 들었다.

호텔방에서 마린시티가 보인다.

  5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조금 걸어서 호텔에 도착했다. 체크인하고 방에 들어가서 커튼을 걷었는데, 마린시티가 보였다. 마린시티뷰는 기대도 안 했는데! 창밖을 구경하다가 배가 고파서 호텔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혼밥을 했다. 나만 혼밥이라 들어갈 땐 어색했는데,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인데 내가 왜 신경을 써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신경 끄고 식사했다.


  몸은 힘든데 뭔가 아쉬웠다. 첫날이지만 밥만 먹고 쉴 순 없었다. 어디든 가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수변도로를 따라 광안대교를 보며 걸었다. 적재의 “별 보러 가자”를 들으며 광안대교를 보니 너무 아름다웠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감미로운 음악과 아름다운 경치의 조합이 환상이었다. 걷다 보니 광안리 해수욕장까지 와버렸다. 많이 걸어서 다리도 아프고 배고파서 스타벅스에 갔다. 평소엔 단 것을 잘 먹지 않지만 오늘은 슈크림 케이크도 시켜서 야무지게 먹었다. 광안리 스타벅스도 그냥 스타벅스였다. 평일이라 관광객보단 주민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강릉 안목해변 같은 곳에 있는 카페는 대부분 관광객인데 오늘 간 카페는 카공족이 좀 있었다.


  어느 정도 충전을 하고 다시 호텔을 향해 걸었다. 광안대교와 오션뷰의 고층아파트들은 다시 봐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또 사진을 찍으며 걸었다. 내일은 마린시티에서 점심을 먹고 동백섬과 LCT 쪽으로 가볼 생각이다. 부산은 정말 화려한 도시인 것 같다.

마린시티와 광안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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