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Sublime)라는 사건

Newman. B. "The Sublime Is Now"

by 오경수
<Vir Heroicus Sublimis> 바넷 뉴먼, 1951년.

바넷 뉴먼의 「숭고는 지금(The Sublime Is Now)」은 서구 미술이 오랫동안 신뢰해 온 미학적 범주, 곧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정면에서 거부하는 선언문이다. 뉴먼에게 문제는 특정 사조나 양식의 한계가 아니라, 서구 미술 전체가 숭고를 말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숭고한 경험을 생산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는 이 실패의 원인을 르네상스 이후 회화가 지속적으로 감각의 세계와 대상의 세계에 머물러 왔다는 점에서 찾는다. 회화는 조화와 완결성, 감각적 쾌락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움을 조직해 왔고, 그 과정에서 숭고는 언제나 형식 속으로 흡수되거나 감각의 문제로 축소되었다.

뉴먼은 근대 미술 역시 이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그는 “근대 미술의 충동은 아름다움을 파괴하려는 욕망이었다”¹고 말하면서도, 그 파괴가 새로운 숭고의 창출로 이어지지 못했음을 분명히 한다. 인상주의의 추한 붓질, 입체파와 다다의 재료적 전복,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은 모두 기존 미학을 흔들었지만, 삶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 가치들의 전이에 머물렀다. 숭고는 생성되지 않았고, 대신 무엇이 진정으로 아름다운가라는 질문만이 반복되었다.

이 지점에서 뉴먼의 유럽 미술 비판은 더욱 구조적으로 전개된다. 그는 유럽 미술이 숭고에 실패한 이유를, 감각의 현실—왜곡되었든 순수하든—안에 머무르려는 맹목적인 욕망에서 찾는다. 그 결과 숭고는 절대적 감정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완전한 형식과 질서의 문제, 다시 말해 또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환원되었다. 몬드리안의 작업에 대해 뉴먼이 “기하학이 그의 형이상학을 삼켜버렸다”²고 말할 때, 이는 숭고가 더 이상 인간의 실존을 뒤흔드는 사건이 아니라 시각적 완전성의 영역으로 흡수되었음을 뜻한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분명해지는 것은, 뉴먼에게서 미와 숭고가 동일한 미학적 지평 위에 놓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조화와 균형, 완결성을 전제로 하며, 작품을 하나의 인식 가능한 대상으로 고정시킨다. 그것은 관람자에게 안정된 판단의 위치를 제공하고, 감각적 만족 속에서 경험을 종결시킨다. 반면 숭고는 이러한 안정된 판단의 구조가 붕괴되는 순간에 발생한다. 뉴먼이 아름다움을 반복해서 문제 삼는 이유는 그것이 쾌락적이어서가 아니라, 예술을 다시금 ‘보는 대상’으로 환원시키는 범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숭고는 미보다 더 강렬한 감정이 아니라, 미라는 범주 자체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하나임 I> 바넷 뉴먼, 1948년

이러한 미–숭고의 대립은 뉴먼의 회화에서 추상적 주장으로 머물지 않고, zip이라는 최소한의 조형 요소를 통해 직접적으로 시각화된다. zip은 화면을 구성하거나 완결시키는 선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완결 가능성을 중단시키는 흔적이다. 관람자는 화면을 조형적으로 파악하는 대신, 화면 앞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의 상태를 의식하게 된다. 이때 숭고는 화면 속에 재현된 것이 아니라, 관람자와 화면 사이의 관계 속에서 ‘지금’ 발생한다.

이 지점에서 뉴먼의 숭고는 현대 철학의 숭고 개념과 구별된다. 예컨대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숭고를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³으로 규정하며, 숭고를 재현의 불가능성과 언어의 균열 속에서 사유했다. 그러나 뉴먼에게 숭고는 그러한 이론적 반성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회화 앞에서 관람자가 더 이상 해석이나 판단의 위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실존적 사건으로 발생한다. 리오타르가 숭고를 ‘말할 수 없음’의 문제로 남겨두었다면, 뉴먼은 숭고를 지금-여기에서 경험되는 현실로 밀어붙인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선언—“숭고는 지금”—은 개념이 아니라 경험의 구조가 된다.


Endnotes

1. Barnett Newman, “The Sublime Is Now,” Tiger’s Eye (New York), no. 6 (15 December 1948): 52; reprinted in Selected Writings and Interviews, ed. John P. O’Neill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0), 170. “The impulse of modern art was this desire to destroy beauty.”

2. Ibid., 53. “The geometry (perfection) swallowed up his metaphysics (his exaltation).”

3. Jean-François Lyotard, The Inhuman: Reflections on Time, trans. Geoffrey Bennington and Rachel Bowlby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1), 82. “The sublime is the presentation of the fact that there is something unpresentable.”


References

Newman, Barnett. “The Sublime Is Now.” Tiger’s Eye (New York), no. 6 (15 December 1948): 52–53. Reprinted in Selected Writings and Interviews. Edited by John P. O’Neill, 170–173.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0.

Lyotard, Jean-François. The Inhuman: Reflections on Time. Translated by Geoffrey Bennington and Rachel Bowlby.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1.


연재처

네이버 블로그

티스토리


글쓴이 저서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현대미학과 그의 변명

형이상학적 시선─보이지 않는 침묵과 형상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보이지 않는 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