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를 통한 자기의 출현
밤하늘의 별은 유한한 인간에게 포획될 수 없는 무한을 환기한다. 그 무한 앞에서 어떤 이는 자신을 축소하고, 어떤 이는 그 한계에 맞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한다. 변숙영의 회화는 후자에 속한다. 그는 타국에서의 삶을 통해 자신을 문제 삼았고, 그 문제를 회화라는 형식으로 지속적으로 사유해왔다. 그의 작업은 무엇을 재현하는가보다, 존재가 어떻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가를 묻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의 생애적 조건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독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재외동포로서 그는 서구 사회 속 동양인이라는 위치를 경험하며, 자신이 언제나 타자의 시선 속에서 규정된다는 사실과 마주해왔다. 이때의 시선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존재를 특정한 의미로 고정시키는 힘으로 작동한다. 이해하려는 태도와 해석하려는 시선은 대상을 명명 가능한 것으로 환원시키며, 그 고유성을 지워버린다. 변숙영은 이러한 구조를 수용하기보다, 그로부터 거리를 확보한다. 그의 회화는 바로 이 거리, 즉 해석과 시선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의 흔적이다.
이로부터 그의 회화는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사유의 방식으로 전환된다. 화면은 대상이나 감정을 재현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유가 발생하고 그 흔적이 남는 장소로 기능한다. 그는 형상을 제거함으로써 존재를 개념으로 고정시키는 경로를 차단하고, 명명 이전의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이때 화면 위에 남겨진 비정형적 흔적은 특정한 형상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어떠한 개념으로도 완전히 규정될 수 없다. 관람자는 이를 해석하려 하지만, 그 시도는 끝내 미끄러진다. 이 흔적은 작가 자신에 의해 ‘자기’로 지시되지만, 그것은 사회적 정체성이나 심리적 자아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개념으로 포섭되지 않는 고유한 것, 동일성의 체계로 환원되지 않는 자기이다.
이러한 자기의 개념은 자연스럽게 현대 사회의 동일화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우리는 다양한 범주와 개념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 존재를 위치시킨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존재는 점차 규격화되고 단순화되며, 고유성은 소거된다. 이해된다는 것은 특정한 틀 안에 배치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틀은 동시에 억압의 구조로 작동한다. 변숙영의 회화는 이러한 동일화의 압력에 저항하며, 규정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자기, 끝내 환원되지 않는 존재를 화면 위에 유지한다.
이 지점에서 그의 작업은 단순한 형식적 실험을 넘어, 자기 보존의 문제로 확장된다. 그는 타자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유지하는 존재를 지향한다. 이러한 태도는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에게 캔버스는 “이질적인 두 세계가 충돌을 넘어 공생으로 나아가는 무대”이며,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본질을 향한 사유의 선들이 하나의 조형적 하모니를 이루는 장이다. 다시 말해 그의 회화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긴장을 유지한 채 공존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공생의 개념은 그의 예술적 이력 속에서 구체화된다. 그는 지난 30년간 독일의 무대 예술과 상해에서의 동양화 수련이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관통해왔다. 서양의 강렬한 색채는 그에게 생명의 분출이었고, 동양의 연약한 선은 그 에너지를 조율하는 성찰의 방식이었다. 이 상이한 두 언어는 그의 작업 안에서 충돌하는 동시에, 서로의 조건이 되며 공존한다.
특히 그는 어느 시점에서 “왜 나는 한국인임에도 동양화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이 물음은 단순한 형식적 선택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과 예술적 기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로 이어졌고, 그는 서예와 수묵을 포함한 동양화의 전통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전환은 기존의 회화 방식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그 결과 그의 화면에서는 서양적 색채와 동양적 선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 캔버스를 채우는 강렬한 색의 층위는 생명력과 욕망, 세계를 향한 자아의 분출을 형성하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선은 비움과 절제를 통해 전체의 균형을 붙잡는다. 두 요소는 대립하지 않고, 서로의 배경이 되며 하나의 화면을 완성한다. 이처럼 선과 색이 빚어내는 공존의 구조는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원리이다.
이로써 변숙영은 동서양의 조형 언어를 단순히 병치하는 작가가 아니라, 양자를 동시에 운용하며 그 긴장을 새로운 질서로 전환하는 작가로 자리한다. 그의 회화는 경계를 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경계를 내부에서 재구성하며 충돌을 공생으로 전환한다.
결국 그의 작업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해석과 시선의 폭력, 그리고 동일화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개념으로 포섭되지 않는 자기로 존재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자기는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 변숙영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 질문이 지속될 수 있는 장을 화면 위에 구축한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자기의 출현이 일어나는 자리이다. 그것은 재현된 이미지가 아니라, 규정되지 않은 존재가 드러나는 사건이며,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을 넘어 공생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의 회화는 끝내 포섭되지 않는 자기, 그리고 그 자기의 지속적인 생성이 이루어지는 장으로 남는다.
한국 출생, 재독일 작가
베를린 예술대학교(UdK)에서 자유 회화 전공
개인전 20회 (독일, 중국, 한국 등)
상하이에서 서예 및 수묵화 전공 심화 과정
연극 및 영화를 위한 예술 프로젝트 (무대, 의상 및 전시 콘셉트)
미술 강사, 학교 워크숍
다양한 미술행사 심사위원 활동
G-ART Forum Südkorea의 문화 교류 및 대표 활동
G-ART Forum Deutschland 회장
*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우연한 만남임에도 자세한 작품 설명과 자료 공유로 이 글의 작성에 큰 도움을 주신 변숙영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이 글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