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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Jan 26. 2022

자본과 물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속 돈이란?

  어제 시력교정 수술을 위한 상담을 위해 강남에 갔다. 26년을 살면서 나름 여러 병원들을 가보았지만, 강남대로 한복판에 있는 안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보통 병원에 온 사람은 환자이다. 아프거나 불편하기에 병원에 오기에 대부분 환자로 취급을 하는데, 그곳은 환자보다는 vip고객으로 취급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프런트 직원들과 실장 등 직원들은 백화점 직원처럼 차려입고 구두를 신고 있었고, 극진히 예의를 갖추며 내 이름을 불렀다. 심지어 문진을 작성할 때는 나한테 직접 찾아와서 내가 말하는 대로 받아 적었다. 


  문진을 작성하고 각종 검사를 받고 실장과 상담을 했다. 상담받으면서 느낀 건데, 이제는 외모와 시력까지 돈으로 사는 세상이구나 싶었다. 비싼 수술을 하면 잔여각막도 많이 남고, 보다 안전한 수술이라고 말하는 병원을 보고 역시 돈이 최고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본주의에 특화된 강남이라는 지역에서 상업적 시술과 서비스를 받으니 더더욱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돈을 버는 이유

  왜 우리는 돈을 벌까? 대체 돈이 뭐길래 7일 중에 5일 이상을 노동을 할까?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돈이 많아야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대답의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우선 돈이 있어서 먹고살고, 돈이 많으면 원하는 자동차와 명품을 살 수 있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식사가 보장되는 무인도에서 포르쉐를 타고 발렌시아가 옷을 입고 프라다 가방을 가지고 다니면 행복할까? 식사와 물건이 제공되는 무인도에서는 돈을 벌 필요가 없다. 오히려 물질의 풍요를 느낄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무인도에 혼자 사는 사람은 행복할까?


물질의 유한성

  우리 사회에는 계급이라는 것이 비공식적으로 존재한다. 거주지, 시계, 자동차 등에 주로 계급이 존재한다. 상위계급과 하위계급으로 나뉘는 기준은 성능보단 브랜드와 가격이다. 파텍 필립 시계와 카시오 시계를 비교해보면, 똑같은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일 뿐이다. 가격은 몇 천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성능은 차이가 전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요즘엔 스마트폰을 다 들고 다니는 시대라 손목에 시계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 근데 왜 손목시계를 사고 갈수록 고가의 시계로 업그레이드할까?


  이 세상에는 물질이 주는 쾌락이 존재한다. 그 물질을 사용함으로써 혹은 소장함으로써 느끼는 쾌락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쾌락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사소한 차이가 고객의 관심을 돌리기에 제조사들은 서로 경쟁한다. 이러한 경쟁으로 인해 그 산업은 발전하고, 소비자들은 양질의 제품을 저가로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제품이 저가는 아니다. 명품과 같은 럭셔리 제품들은 오히려 가격을 계속 인상한다.  사람들은 왜 저가의 제품을 두고 고가의 제품을 살까? 첫 번째 이유는 제품의 성능 일 것이다. 제품의 가격에는 그 제품이 개발되는데 쏟은 노력과 제품을 만드는 재료의 가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왕 살 거라면 조금 더 좋은 제품을 사면 더 오래 잘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흔한 생각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계급의 존재이다. 똑같이 9시 59분이라는 시각을 보는데, 왜 천만 원짜리 시계로 봐야 할까? 그 시계를 착용함으로써 주는 아우라가 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시계는 다 그게 그거 같다. 진짜 관심 있는 사람들만 알아보고 감탄을 한다. 특히나 지나가는 사람의 손목을 붙잡고 시계를 볼 수는 없으니 정말 순간적으로 보는 물건이다. 


  제품의 성능 차이는 가격에서 온다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더 고급 기술이 적용되고, 장인의 손길이 닿은 제품이기에 더 높은 가격이 책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1000만 원짜리 시계라고 5만 원짜리 시계보다 200배 좋은 것은 아니다. 시계를 구매하는 그 순간에 느끼는 쾌락은 200배 이상 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계가 익숙해지고 다른 시계가 눈에 들어오면 그 시계에 대한 애정은 결국 처음보다 식을 것이다. 


  그래서 천만 원짜리 시계를 팔고 1억 원짜리 시계를 산다면 어떨까? 똑같은 감정의 반복일 것이다. 결국엔 1억 원보다 더 비싼 시계를 원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시계는 이 세상에서 유한한 물질이다. 그래서 결국 세상에서 제일 비싼 시계를 가지게 되면 허탈할 것이다. 더 이상의 목표가 없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낄 것이다.


  물질은 유한하고, 인간의 생명도 유한하다. 그래서 결국 사람도 물건도 세상에게 소모품일 뿐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돈을 위해 뼈 빠지게 일을 할까? 어차피 죽으면 다 끝이고, 죽으면 돈은 두고 떠나는데..


돈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 A는 엄청 부자라 원하는 모든 재물을 다 가졌다. 옷장은 백화점 같고, 차고는 슈퍼카 전시장 같다. 하지만 그는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다. B는 다소 가난하다.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 다닌다. 하지만 그는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과연 누가 A와 B 중에 누가 더 행복할까? 아무리 비싼 차를 타고 명품을 입어도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그건 싸구려와 똑같은 기능을 하는 물건일 뿐이지 않을까? 앞에서 말한 무인도에서 사는 사람과 같은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매일 같은 옷을 입는 B는 조금만 바뀌어도 누군가가 알아봐 주고 칭찬해줄 것이다. 과연 누가 더 행복할까? 매일 다른 스타일로 치장하지만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사람과 조금만 바뀌어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는 사람 중에.


  나는 명품을 좋아하기에 명품을 구매하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하지만 명품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돈과 물질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하와이에 외롭게 여행을 간 사람과 친구들과 가까운 오이도로 당일치기로 여행을 간 사람 중에 누가 더 행복할까? 혼자서 외롭게 롤스로이스를 타고 집에 가는 사람과 아반떼를 타고 여자 친구와 여행을 가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행복할까? 물질로 사람의 마음을 채우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돈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으로 채울 수 있는 부분은 다른 행복으로 메울 수 있다. 가난하다고 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소한 것에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의 물질에 의한 쾌락의 역치는 부자들과 다를 것이다. 


내가 인문학을 선택한 이유

  나는 대학교를 공학 전공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4학년이 되고 인문학부에서 복수전공을 도전한다. 주변에서는 내가 미쳤다고 한다. 인문학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하는 전공을 공부한 나와 맞지도 않는 전공 억지로 참으며 평생 전공에 관한 일을 하는 미래의 나 중에 누가 더 행복하고 바람직할까? 결국 행복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대학에 입학한 건데, 나는 돈이라는 중간과정을 거치지 않고 인문학이라는 행복에 도달하기로 결심했다. 죽기 전에 못 먹은 밥보다 못 이룬 꿈이 생각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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