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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Mar 01. 2022

살바도르 달리 전(展) 관람 후기

Imagination and Reality review

  2022년 2월 26일 춘천 자취방으로 이사를 했다. 개강은 3월 2일이지만, 주말에 이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미리 이사했다. 자취를 한다는 것은 내가 알아서 모든 살림을 한다는 단점도 있지만, 내 자유가 이전보다 훨씬 커진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자유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하지만, 나는 책임을 물을 말한 행위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단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고독함이었다. 나는 춘천에 아는 사람이 없다. 올해 처음으로 춘천캠퍼스를 다니는 거라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만날 사람도 없고, 너무 심심했다. 대체 뭘 하면서 개강까지 버틸지 고민을 하다가 DDP에서 초현실주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1904~1989)의 전시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전부터 가야지 가야지 했지만, 엄청나게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라서 미루고 미뤘다. 그래서 나는 전날에 기차와 관람을 예약하고 다음날에 바로 갔다.


살바도르 달리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파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술가이다. 초현실주의 작가인 만큼 그의 작품은 이성으로 이해하기가 어렵고 난해하다. 달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열렬한 팬으로 그의 정신분석학에서 다룬 무의식을 기반으로 그의 작품들을 만들었다. 달리에 대한 설명은 그만하고 내가 전시를 관람하고 들은 생각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원화와 보존

  나는 전시회를 한 달에 하나 이상 관람한다. 2021년부터 이러한 취미가 생겼으니 열 군데 이상 다녀본 셈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는 그전에 관람한 전시와는 특별히 다른 점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다녀본 전시회들은 대부분 콜렉터의 수장고에 있는 작품을 꺼내온 전시였고,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현대 미술 작품들이었다. 고로 내가 지금까지 본 작품들 중에 가장 오래된 작품은 50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가 20세기 초에 태어나서 일찍 미술을 시작한 만큼 1920년대에 만든 작품들도 이번 전시에서 접할 수 있었다. 즉, 100년이 넘은 그림을 나는 이번에 처음 접한 것이다. 그전에 관람한 게르하르트 리히터,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은 고전주의 회화보다는 포스트 모더니즘 혹은 그 이후의 사조로 작품을 만들어서 원화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원작품은 맞지만 그것들은 타일, 청바지, 실크스크린 등으로 만든 현대미술 작품이기에 낡음, 오래됨 같은 느낌을 나에게 주지 않았다. 말 그래도 '현대'미술이었다. 하지만 달리가 100년 전에 그린 그림을 보고는 감탄을 참을 수 없었다. 물감의 꾸덕함과 입체감이 느껴지고, 아름다운 색채 그리고 정교한 그의 소묘를 보고 그의 팬이 될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본 현대미술작품들과는 다른 감흥을 내게 주었다. 작품 자체에 감탄을 한 후에는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었다. 어떻게 100년도 넘은 작품을 이렇게 보존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우리 집에 있는 책은 10년만 돼도 빛이 바래도 낡는데, 이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서 대체 어떤 조치를 취했을지 난 궁금해졌다. 그리고 앞으로는 포스트 모더니즘만 관람하기보다 고전주의 회화(원화)들도 더 감상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잘못 알고 있는가?

  작품들은 모두 대단했다. 초현실주의라는 사조를 개척해서 회화의 대상을 무의식의 범위까지 넓혔다는 것이 굉장히 혁신적이었고, 디테일도 굉장했다. 하지만 하나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작품 옆에 있는 설명들이었다. 내가 아는 달리의 인생과 너무나 다른 설명들이 많았다. 내가 미술전문가도 아니고 취미로 감상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라 내 의견에 공신력은 없지만, 내가 본 글을 쓴 사람들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들의 발언은 공신력이 어느 정도 있다. 내가 아는 달리는 프로이트에게 인정받기는 커녕 초현실주의를 잘못 알고 있다는 식의 비판을 받았는데, 이번 전시회의 설명에서는 프로이트가 인정한 초현실주의 작가라고 쓰여있었다. 또한 그의 연인 갈라에 대한 언급도 나오는데, 갈라는 달리와 결혼을 한 것은 맞지만 중간에 불륜을 저질러서 달리를 심리적으로 고생시킨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는 그들이 갈라의 죽음 직전까지 서로만 바라보며 영원한 사랑을 나눈 것처럼 설명한다. 이 외에도 내가 아는 달리의 일생과 다른 설명이 너무 많았다. 이 전시를 기획할 때는 분명히 전문 큐레이터들이 참여했을 텐데,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것일까? 하지만 내가 읽은 기사, 서적을 쓴 사람들도 박사학위까지 있는 전문가인데? 대체 누구의 주장이 맞는 것 일까? 내가 달리의 일생을 아예 모르고 관람했더라면 더 편하게 관람했을까?


내가 아는 달리는 일부분이었다.

  기억의 지속, 츄파춥스 로고 디자인 등등 나는 달리의 유명한 작품들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예술세계를 미시적으로 경험하고 있던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쉼 없이 예술활동을 해서 수많은 작품이 있는데, 나는 그중에 대표작들만 알고 있던 것이다. 또한 그가 파인아트를 잘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본 적은 없다. 나는 작가에 대해 파고들 때 그의 일생과 과도기 그리고 대표작 등을 주로 본다. 그래서 내가 보는 작품의 수는 아주 일부분인데, 이번 달리전은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달리의 작품들과 내가 생각조차 못했던 사조의 작품들도 있었다. 나는 달리는 무의식이라는 이름으로 정신 나간 그림에 예술성을 부여하는 괴짜인 줄 알았는데, 그는 진정한 작가였다. 소묘력만으로도 인정받을 만한 실력인데, 그는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작품의 범위를 무의식까지 넓힌 예술계의 혁명가였다.


대중은 왜 달리를 좋아할까?

  이번 전시에서 가장 놀란 점은 관객 수였다. 줄이 너무 길었는데, 이런 관람은 처음이었다. 달리가 인기가 많은가? 왜 월요일에 다들 일 안 하고 달리의 작품을 보러 동대문에 왔을까?  달리의 작품세계 또한 '초현실주의'라는 이름부터 머리 아파 보이는 사조라 사람들이 크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관람객이 오다니... 놀라웠다. 만약 아는 사람을 거기서 봤다면 왜 달리를 보러 왔냐고 질문을 했을 것 같다. 대체 달리의 어떤 예술성이 당신의 발걸음을 여기로 안내했습니까? 나는 달리가 그저 유명해서 그 전시회에 갔다. 딱히 다른 이유는 없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이유로 그곳에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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