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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Apr 03. 2022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책을 평소와 다르게 읽었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1872~1970)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1927)'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오래간만에 없는 시간을 짜내서 독서를 했다. 나는 평소에 독서를 굉장히 천천히 꼼꼼히 읽는 편인데, 이번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었다. 최대한 빨리 대충 읽었다. 내 책이 아니고 대출한 도서라서 짧은 책이지만 반납일에 전까지 읽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촉박했다. 거기다 이제 시험기간이기 때문에 이 책을 붙잡을 여유는 더더욱 없을 것이라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핵심 내용만 읽고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부분은 과감히 넘겼다. 무엇보다 전에 빌린 사람이 밑줄로 중요한 부분들을 표시해놓았는데,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밑줄 때문에 짜증이 났다. 본인 책이 아닌 학교 책에 밑줄을 그어서 굉장히 이기적인 행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의로 그 밑줄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읽다 보니 그 밑줄 친 부분만 읽어도 이 책을 다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밑줄을 적절한 곳에 그었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이 책을 한 방송에서 故신해철이 언급해서 알게 되었다. 왜 가수가 추천한 철학책을 읽냐고 물어볼 수 있는데, 신해철은 서강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이 책의 제목만 보면 두 가지 측면으로 예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기독교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왜 기독교를 믿지 않는지 말해주는 책. 두 번째, 이렇게 좋은 기독교를 나는 믿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담은 책. 나는 러셀이 수학자이자 철학자이기 때문에 전자에 가까울 것이라 제목만 보고 추측했다. 그리고 책 초반은 내 예상과 일치했다. 그는 기독교의 교리들을 논리적으로 비판했다. 왜 그 행위가 올바른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기독교는 그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비합리적이고, 고리타분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 같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러셀은 기독교의 '내로남불'을 비판하고자 한 것 같다. 논리적으로 너무 맞는 말이라 거의 모든 문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러셀의 말대로 비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하고, 보수적인 기독교라는 종교가 왜 아직도 있고, 수요와 공급이 있을까? 기독교를 변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하나님이 존재하며 하나님이 성서에 자신의 뜻을 밝혔다고 생각하는 근거를 제시하기보다, 만약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행동이 나아질 것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하느냐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만 강하게 내세운다. 이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인간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은 죽음 너머의 세상을 알지 못하는데, 이러한 두려움이 없다면 우리는 어떨까? 홉스가 말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같은 상태가 오지 않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종교는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또한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일상에서 사소한 기쁨을 가지고도 신의 뜻이라 생각하고 감사하는 신도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는 신의 존재와 상관없이 자신의 신앙으로 비롯된 인식틀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종교를 믿는 그에게는 사소한 것도 행복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종교는 우리에게 행복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종교에 대한 마냥 부정적인 관념을 조금 고칠 수 있었다. 처음에 러셀이 기독교를 비판할 때는 맞는 말이다 생각하며 역시 종교는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다 보니 종교가 주는 신앙심 혹은 신념이 우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고, 우리의 두려움을 안정화하는데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종교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공리주의적으로 볼 때는 종교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해서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겠지만, 그 장단점들을 비교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일 것 같다. 반대로 의무론의 관점으로 종교를 보면 검증할 수 없는 이야기를 설파하므로 선의지를 부정하는 존재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종교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둘 다 우리 사회에 큰 파급력을 행사하는 요소들이다. 세상 사람들을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 둘 사이에 애매한 위치에 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이진법처럼 0 아니면 1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나름의 결론을 생각해봤다. 종교란 결국 나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이득을 줄 수도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종교가 나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나는 종교를 존중한다. 결국 종교란 나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뭐라고 종교와 신의 존재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신의 존재는 내 이성으로 판단이 불가능하며, 세상에는 종교로 인해 치유되는 사람도 아주 많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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