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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Sep 06. 2022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만물은 유전한다."

라파엘로의 작품 "아테네 학당"의 헤라클레이토스

  지난번에 최초의 서양 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Thales)에 대한 글을 썼다. 사실 개강 전날에 잠이 안 와서 복습할 겸 그에 대한 정리를 해본 것이다. 근데 생각보다 나에게 도움이 큰 일이라 생각이 되고, 나름 보람도 있어서 굵직한 철학자들의 내용들을 앞으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나는 러셀의 서양철학사와 요하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의 내용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그 저서들에 나오는 모든 철학자들에 대해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방대하기도 하고, 모두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상 깊었던 철학자나 중요한 철학자들을 위주로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판타 레이(Panta rhei)로 유명한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기원전 500년경에 활약한 철학자로 에피소스의 한 귀족 출신의 시민이다. 그의 사상을 두 단어로 요약하자면 '불'과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불(火)이 만물의 근원이 되는 물질이라고 말했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 즉, 아르케(Arche)는 물(水)이라고 한 것과 다르게 말이다. 탈레스는 생명체와 식물 모두에게 물이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물이 아르케라고 주장한 것 같다. 근데 왜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근원이 불이라고 할까? 


  헤라클레이토스는 일종의 특수한 물질적인 원소가 아니라, 끊임없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영원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요소로써 불을 아르케라고 말했다. 즉, 만물이 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만물이 불과 같이 정적이지 않고 동적인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불과 같이 계속 변화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따라서 정지해있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존재는 죽음 존재로 보았다. 끝없는 변화를 추구한 철학자답게(?) 그는 일상에 안주하는 평화보다 전쟁을 찬양하기도 했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요, 만물의 왕이다. 전쟁은 어떤 것은 신으로 만들고, 어떤 것은 인간으로 또 어떤 것은 노예나 자유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이 말은 그의 형이상학적 사상을 정치철학에 적용시킨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내가 참고한 자료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을 보면 그는 정치인의 임기 또한 제한을 두어서 장기 집권하는 것을 막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조심스레 해본다. 끝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동적인 철학자답게 그는 장기집권과 같은 안주하는 상태를 혐오했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 또한 든다. 하지만 그가 일자(一者, the one)의 존재를 인정한 것으로 볼 때, 그가 절대적인 권력 또한 인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전쟁이야말로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패전국의 왕은 더 이상 왕이 아니고, 귀족도 더 이상 귀족이 아니며, 노예가 될 수도 있고, 사형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전쟁이라는 과정에서 국가의 결속이 더욱 강해지고, 영토, 재물, 노예 등 다양한 전리품 또한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전쟁이 끝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국가들 간에 일어나는 변증법이 아닐까? (나는 전쟁을 반대하지만 헤라이클레이토스의 사상에서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영혼에 대한 사상도 흥미롭다. 그는 영혼이 '불'과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영혼이 오직 불로만 이루어진 상태를 "건조한 상태"라 하며, 가장 지혜롭고 선한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영혼이 습기를 가지는 상태는 술에 취하는 것과 같은 즐거운 상태라고 한다. 이 둘은 끊임없이 조화를 이루며 영혼의 상태를 결정짓는다. 왠지 여기서 나는 니체의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이 생각나기도 했다.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의 핵심은 '영원한 변화'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대립물의 투쟁에서 어느 한쪽의 궁극적인 승리로 끝날 수가 없게 된다고 한다. 마치 배고픔과 배부름이 영원하지 않고 반복되는 것처럼, 잠을 자는 것과 잠에서 깨어있는 것과 같이 대립물의 투쟁은 끝이 없다. 


인간은 같은 시냇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언제나 새 물이 당신에게 흘러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사상이 바로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의 핵심인 "판타 레이(panta rhei, πὰ ντα ρ̀εὶ)"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며 숨 쉬는 나도 끊임없이 변한다. 들숨에 공기를 내 안에 들이고, 날숨에 공기를 내보낸다. 그리고 인간의 몸은 결코 그대로 유지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가죽을 벗고 새 가죽을 입는다. 그리고 음식을 소화시키고 배설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가 늙는다. 아무리 잘 지은 강남의 아파트라도, 시간이 흐르면 재건축을 해서 새로운 아파트가 되고, 그 광활한 영토를 가졌던 고구려도 멸망하고 다른 나라가 탄생한다.  이처럼 세상에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탄생과 소멸을 반복한다. 소년은 노인이 되고, 노인은 죽고 소년은 태어난다. 해가 뜨면 달이 지고, 달이 뜨면 해가 지듯이.


  영원회귀는 이번에 다시 보면서 처음 보는 내용인데, 모든 사물들이 영원히 회귀하는 사상이다. 대우주년의 일 년은 10,800 태양년을 포함한다는데, 니체의 영원 회귀와 비슷하게 이해해도 되는 것일까? 니체는 영원 회귀를 통해서 운명애(Amor fati)를 말하지만, 헤라클레이토스는 탄생과 소멸의 반복 즉, 영원한 투쟁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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