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이 글만큼 횡설수설하는 나의 요리 실력

by 현해

나는 한 가지 요리를 하는 데 넉넉잡아 3일쯤 걸린다.

Step 1. 레시피를 검색해 서너 개 추려놓고 그중 가장 맘에 드는 걸 고른다.

백종원은 믿고 따른다. 유튜브 말고 블로그로 검색하는 게 나중에 요리할 때 다시 보기 편한데 다른 레시피에 '백종원'이 달린 경우가 많아서 비교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리텔을 보지 않아서 그런가 왜 슈가보이로 불렸는지 모르겠다. 원래 설탕이 그 정도 들어가는 거 아닌가?

황교익 씨가 저격하는 부분도 잘 알겠지만 나는 두 입장 다 존중한다.

('서진이네'에 나온 거나 어남선생 레시피도 탐난다. 늘 레시피는 넘쳐나는데 막상 해 먹으려면 마땅한 게 없다는 게 문제.)

Step 2. 장을 봐 와서부터 본격적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냉장고를 여닫을 일이 있을 때마다 재료들을 째려보게 되므로 되도록 빨리 시작하는 편이 낫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Step 3. 베이킹소다, 구연산, 녹차가루 등을 총동원하여 정성껏 재료를 씻고 정수로 헹군다. 남들은 귀찮다는데 씻고 다듬고 써는 이 과정을 좀 즐기는 편이다.

식당에서 이토록 정성스럽게 재료 손질을 할까 싶지만 요즘 이 과정을 약간 간소화하면서 주부 3단 정도로 올라섰다고 자부하고 있다.

Step 4. 실제로 음식을 만드는 데 하루를 써먹는다.

삼시세끼 욕심껏 솜씨 발휘 하려다간 요리하고 설거지하느라 진종일 주방에 서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 끼 생일상을 차리려면 일주일짜리 대장정이 시작된다.

손 빠른 척 부스터를 달아봤더니 허둥지둥 오히려 군더더기 행동이 많아져 결과적으론 더 오래 걸리더라. 깔끔한 주방을 유지하면서 요리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국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내 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속이 터진다. 음식을 얼추 해놓고 끓길 기다리는 동안 한 번 닦는 게 낫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어린 시절의 식사 시간에 관해선 좋은 기억이 많지 않다.

밥상머리 교육을 받느라 혼나기 일쑤였고, 우리에겐 반찬 투정 말라면서 아빤 입이 까다로워 엄마와 종종 투닥거렸다.

공부에 대한 압박을 적지 않게 받았지만 맞벌이를 하는 엄마로부터 더 많이 들었던 잔소리는 '아빠나 동생들 밥은 네가 좀 차려 주지' (내 밥은 내가 알아서 챙기라며?), '국이 한 솥 가득인데 가장자리만 뽀르르 끓었을 때 불을 꺼버리면 상하잖아!' 뭐 이런 것들.

설거지는 당연히 내 몫이었는데 그땐 따뜻한 물로 설거지를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먹는 것은 단지 생존을 위한 연료에 불과했고, 먹고 나서 치우고 설거지하는 게 귀찮으니 작은 그릇에 덜어먹을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으며 냉장고에서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것 외엔 요리라는 번거로운 과정을 추가하고 싶지도 않았다.


주방에 한하여 나는 극소심쟁이다. 그래서 내가 요리를 하면 싱겁거나 덜 익는 경우가 많다. 뜨거운 거, 기름 튀는 거엔 특히 취약하다. 괜히 용감한 척 작정하고 용기를 냈다간 양념 때문에 타버리기 십상이었다. (요즘은 좀 덜하니까 철저히 과거형)

오래 걸리거나 말았거나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결혼을 안 했으면 영영 요리와 담을 쌓고 지냈을지도 모르지.

남편은 일품요리를 좋아하고 배달 음식이건 냉동이나 레토르트 식품이건 개의치 않는다. 덕분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을 때 요리를 하며 서서히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일종의 부작용이라면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 빵 만들기는 재밌어한다는 것, 손이 느려터졌는데 김치, 장아찌, 과일청 등 일 벌이기에 소질이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은 한 번 해놓으면 오래 먹으니 더 이득!)

요리라고 할 순 없지만 마녀수프, ABC 주스, 디톡스 주스 등으로 불리는 그런 것들을 만들기 위해 결혼 초부터 양배추, 당근, 비트 등을 열심히 삶아댔다. 그러니까 불량주부는 아니라고 치자.

최근에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뜨거운 짬뽕이 랩에 친친 감겨온 걸 오만상 찌푸리고 풀면서 이제 시켜 먹지 말고 해 먹는 걸 늘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놓곤 마켓컬리에서 밀키트를 기웃기웃)




"이거 들고 가라."

여름휴가나 추석이 이른 해의 연휴였을 게다. 시댁에서 나오는 신랑 옆구리에 끼워진 까만 비닐봉지.

전 날 어머님이 고구마줄기볶음을 주신댔으니 우린 그 정체를 알고 있긴 했다.

누가 봐도 반찬 한 통인데 그렇게 수상하고 비밀스럽게 주시면 쫌...^^;

그것도 하필 아침에 매형이 "어머님, 이거 맛있네요!" 했던 거라 괜히 눈치가 보이고 미안했더랬다.

(형님한테는 생고구마줄기를 사서 들려 보내셨다고 한다. 내 요리 실력 때문에 차별(?)하신 걸까?)


이번엔 우리가 생고구마줄기 한 팩을 얻어왔다. (껍질이 벗겨진 거라 그나마 다행이다. 네일아트는 포기했지만, 아니 네일아트를 안 했기에 손톱밑이 시꺼메지는 건 곤란하다.)

아들이 좋아하는 고구마줄기볶음을 해주려고 사두셨는데 난데없이 딸의 장례식에 가시게 되는 바람에 요리는 내 몫이 되었다.

어머님은 "뭐 그냥 물에 데쳐서 양파 쫌 넣고 마늘 쫌 넣고 볶다가 간장 쫌 넣고 다시다 쫌 넣고 싱거우면 소금 좀 치고 하면 되지."

이건 흡사 밥 (로스) 아저씨. 손끝으로 마법을 부려놓고 놀리듯 "참 쉽죠~?"

그러고 보니 백종원의 "간단하쥬?"도 비슷한 맥락이네.


흐음~ 우리 집에 다시다는 없는데...

밖에서 사 먹는 음식에도, 어렸을 때부터 먹은 집밥에도 다시다나 미원이 들어간 걸 알면서도 왠지 안 사게 된다. (대학교 때 선배, 친구들과 몰려가 같은 부대찌개를 둘 시켰는데 한 테이블 것만 유독 맛이 없었던 적이 있다. 주방에서 다시다를 한 국자(!) 들고 와서 소생시키더라. 마법의 가루임에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거 하나 때문에 다시다를 사긴 좀 아깝다. 매번 이런 식으로 넘어가다 9년째 못 사고 있는 것 같기도...


결론적으로, 고구마줄기볶음은 해놓고 보니 어렵지 않았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나 자신 반성해.

암만 해도 싱거워서 액젓도 좀 넣고 간장도 좀 더 넣고 하다가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남편더러 고쳐보라고 할 심산으로(아, 남편에게는 요리 센스가 좀 있다.) 방치했더니 숨이 죽으면서 간이 뱄다!

매콤한 걸 좋아하니 땡초도 쫑쫑 썰어 넣은 게 킥. (난 레시피를 '응용'할 줄 안다!)

이번에 다시금 깨달은 사실은 나의 쪼금과 어머님의 쪼금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 과장을 좀 보태면 어머님의 한 볶음주걱 = 나의 한 티스푼 정도랄까? 내가 그렇게 간장 종지만 한 아량을 가진 사람은 아닌데..

제일 마지막에 한 번만 간을 덜했으면 딱 맞았겠지만 이 정도면 성공이다.

남편도 엄마 반찬과 제법 비슷하다며 나의 노력을 치하해 주었다.

'고향의 맛' 안 사도 되겠다.


장차 나는 우리 집 요리왕이 될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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