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골퍼에게 테니스엘보가 웬 말이냐

by 현해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프로님이 엘보가 잘 오게 생긴 팔이라며 다친 적 있느냐고 물으신 적이 있다.

풀스윙도 배우기 전에 무슨 그런 무시무시한 악담을 하셨나 싶지만 어쨌거나 내 팔은 내측 전완근이 빈약한 데 비해 외측 전완근만 제법 발달했던 것.


이때만 해도 10km 마라톤 후유증으로 오른쪽 고관절 때문에 꽤 스트레스를 받았더랬다.

병원에 가도 별 문제가 없다 하고, 사실 정확히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면서 뭔가 뻑뻑함이 느껴지는 그야말로 불. 편. 감.

민망한 모양새지만 강아지 쉬 하듯 다리를 옆으로 들어 올려 '뚜둑' 소리 한 번 내야 좀 시원해지는 괴상한 고질병.

마라톤을 뭐 엄청 열심히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광안대교 위를 딱 한 번 달렸을 뿐인데 5년 넘게 괴롭힘 당할 일인가 말이다. [준비운동의 중요성★★★★★]

어릴 때 마른 인형 다리를 뽑아댔더니 이제야 그 값을 치르는구나! 뒤늦게 후회했다.


당장의 고관절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미래의 엘보는 당연히 안중에 없었다.

엘보용 스트레칭 영상을 찾아놓긴 했지만 예방할 생각까진 못했나 보다.

그래서 무려 1년을 그냥 가지고만 있었다.

언제든 와라, 무찔러 주마! 이런 마음이었을까?


걷기, 등산, 요가, 필라테스에도 끈덕지게 따라다니던 고관절 불편감이 골프를 시작한 뒤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코어운동이 된 덕인지, 이제 갈 때가 되어서인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그리고 기어이 엘보가 오고야 말았다.

골프 엘보가 아닌, 왼팔 바깥쪽 팔꿈치 테니스 엘보가.


9월 초 어느 주말에 통증이 시작되었다.

토요일에 기타를 많이 쳤던가?

월요일 오전, 동전파스를 붙인 채 국지성호우를 뚫고 병원이 아니라 연습장엘 갔다.

성실함을 빙자한 미련함.

빈 스윙이나 하려고 했는데 공 몇 개 쳐봐도 딱히 아프진 않은데? (골프 중독이 분명하다ㅉㅉ)

그때 바로 골프를 쉬었더라면 훨씬 빨리 나았을 거다.

그것도 모르고 추석 연휴 때 짐 옮길 일이 있어 무거운 것도 번쩍번쩍 들어 올리곤 했다.

덕분에 점점 심해져서 상부장에서 접시를 꺼내는 손에 힘이 잘 안 들어갈 지경까지 이르렀다.


프로님은 처음 온 회원들에게 "공치다가 아픈 데 있으면 꼭 얘기하세요." 당부하신다.

"응. 그 부위는 좀 아파도 괜찮아요~" 하면 안 쓰던 근육이 이완되는 건데 이건 다른 문제였나 보다.

지나가는 말로 "오늘 팔꿈치가 좀 아파요." 했더니 눈물 좀 빼자며 근육 마사지를 해주셨다.

팔꿈치가 아프다니까 왜 팔뚝을?

골프를 시작한 뒤로 관절과 근육의 움직임, 인체의 신비에 대해 새삼 놀라고 있다.

우왑! 진짜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고 희한하게 팔꿈치 통증이 (사라진 게 아니라) 한결 덜했다.

그렇게 끝일 줄 알았지. 순진하긴~

한 달 반 만에 한의원에 갔더니 손목과 손가락부터가 문제였다.


아파 봐야 안다.

손톱 끝이 살짝 들리기만 해도 얼마나 불편고 모든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던가.

키보드를 오래 친 날, 특히 Ctrl+C, Ctrl+V 작업을 많이 한 날은 왼쪽 손목이 안 좋았는데 틀린 자세로 연습하며 계속 충격을 가했으니 1년씩이나 견뎌준 내 팔꿈치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이제야 안 사실인데 난 짐을 들 때 주로 왼손을 쓰더라. 오른손으론 뭔가를 조작해야 하니까?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왼팔에 무거운 걸 척 걸쳐놓은 상태다. 습관은 무섭다.

소를 잃고 나서야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찾고, 근육을 단련하면서 열심히 외양간 수리 중이다.


프로님이 그러게 아프기 전에 말 좀 듣지 그랬냔다.

"아~ 그 말인 줄 몰랐죠! 진작 렇게 설명해 주시지..ㅎㅎ" 하면 뒷목 잡으시겠지?

몸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분들의 최대 덕목은 뛰어난 언어능력인지도 모를 일.


그리고, 왜~

곱셈을 하려거든 꼭 필요한 구구단 같은 기초도 있지만..

글씨를 쓰다 보면 어느새 뭉개져 있는 획순 같은 기초도 있잖은가. ㄹ. ㅁ, ㅂ, ㅌ 모두 순서에 맞게 정확히 쓰는 성인을 나는 본 적이 없는걸?

결국 셋업 자세부터 다시 다듬어야 했다. [기본의 중요성★★★★★]


슬프게도 내 테니스엘보는 현재진행형이다.

선물로 받은 세 종류의 일본 파스가 미개봉 상태로 서랍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나날이 소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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