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by 김주이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야.


나에게 평양냉면을 처음 맛보여준 사람은 아빠였다.

맑고 밍밍한 국물의 평양냉면. 어릴 적 그 맛은 조금 낯설었다. 국물은 싱거웠고, 면은 단조로웠다. 어린 내가 그 맛을 좋아할 리 없었다. 친구들은 햄버거와 피자를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아빠는 나를 종종 평양냉면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이 국물의 깊은 맛을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아빠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아빠와 함께 먹는 냉면은 그저 특별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밍밍한 맛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어느새 여름이면 시원한 냉면 국물이 떠올랐다. 면을 쭉 한 입 먹고, 차가운 국물을 천천히 들이킬 때의 그 개운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제는 내가 먼저 아빠에게 냉면을 먹으러 가자고 조를 정도로 평양냉면을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평양냉면 집이 있었다. 그곳은 우리 가족의 단골집이었다. 여름이면 아빠는 “냉면이나 먹으러 갈까?” 하시며 나를 불러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따라 나섰다. 국물의 깊은 맛이 변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아빠의 눈빛에 맞장구를 치며 함께 냉면을 먹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함께 한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아빠의 입원 이후,
어느 날 혼자 그 집을 찾았을 때, 사장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요즘 아버님은 안 오시네요.”
나는 순간 대답을 잃었다. 아빠가 아프시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어쩌면 아빠와 이곳에 다시는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두려웠다.

“나중에 또 같이 올게요.”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 식당을 나섰다. 마음 한쪽이 아려왔지만 ‘아빠와 꼭 다시 이곳에 와야지.’ 다짐했자. 하지만 그 다짐은 결국 지켜지 못했다.
평양냉면을 함께 먹던 시간은 이제 나만의 기억 속에 남았다.

아빠는 늘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맛보게 해주신 분이었다. 복매운탕, 초계탕, 양갈비… 어린 시절의 내 입맛을 길러준 건 언제나 아빠였다. 처음엔 낯설었던 음식들이 이제는 모두 내게 익숙한 맛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평양냉면은 아빠와 나를 이어주는 가장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야.”

아빠는 그래서 나의 어린시절부터 아빠 나름의 미식교육을 해오신게 아닌가 싶다. 맛있는 음식을 알게하고 함께 나누시려고 말이다. 나는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을 알아주고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정말로 소중한 일이었다.

이제 아빠와 맛집을 찾아다니며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끔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더 많은 곳을 다니며, 더 많은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싶었는데 이제 더이상 그럴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아빠와의 기억은 여전히 내게 살아 있다. 평양냉면의 국물 한 입에 어린 시절의 아빠가 떠오르고, 복매운탕의 얼큰함 속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는 것 같다.

“아빠, 이 맛의 진가를 이제는 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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