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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Apr 02. 2020

Ondine's Curse

병원 이야기

온딘은 물의 정령이다.
다른 정령과 마찬가지로 온딘 역시 매우 아름다웠을 뿐 아니라,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존재였다.
온딘은 홀로 있을 때는 불멸의 존재였다.

그러나 그녀가 인간을 사랑하고 그의 아이를 낳게 되면 그녀는 불멸과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잔혹한 운명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온딘은 아름다운 젊은 기사 로렌스를 만나서 사랑에 빠졌고, 그와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맹세를 나누고 그의 아내가 되었다.
불멸의 삶을 사랑과 바꾼 것이다.

운명의 예언대로 첫 아이를 낳고 나자 젊고 아름다웠던 온딘도 나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젊음이 사그라드는 것과 동시에 그녀에 대한 남편의 관심도 사라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온딘은 다른 여인의 품 안에서 잠든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소중한 사랑의 맹세를 휴지조각처럼 날려버린 남편에게 분노한 그녀는 배신감에 몸을 떨며 그에게 저주를 내뱉는다.
그것은 살아있는 동안 매일 함께 눈을 뜨고 함께 숨을 쉬겠다는 맹세를 어긴 대가였다.

“굳건한 사랑의 맹세를 저버린 자여,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나와 함께 숨을 쉬겠다는 맹세를 잊은 자여, 그대는 이제 다시는 매일 아침 나와 함께 숨을 쉴 수 없을 것이리라. 매일 밤 잠이 들게 되면, 당신은 숨 쉬는 것을 잊을 것이오, 다시는 깨어날 수 없을 것이리라.”

- 독일의 전설, ‘온딘의 저주’ 중에서.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밤이 되면 소년의 모니터에서 알람이 울린다.

소년의 손가락에 연결된 산소포화도 측정기에 붉은 불빛이 반짝인다.


낮동안 자가호흡에 문제가 없는 소년은

모니터를 떼고 휠체어도 타고 재활치료도 다닌다.

그런데 밤만 되면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다.


소년은 인공호흡기가 밀어 넣어주는 호흡이 영 불편하다.


잠시 떼어달라는 소년의 의사표현을 받고 잠시간 인공호흡기를 해제해줬다.


그 사이 스르르 잠이 든 소년의 모니터에서 다시 알람이 울린다.


소년은 슬픈 저주에 빠졌다.


'Ondine's Curse'


소년의 진단명이 영 낯설다.

'온딘의 저주?'


재미로만 읽었던 신화의 내용이 내 환자의 슬픈 진단명이 되었다.



호흡조절 중추가 존재하는 뇌 부위에 손상을 입은 소년은 잘 때마다 불수의적 무호흡 증후군(Autonomic Hypoventilation syndrome)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밤동안 인공호흡기를 장착하고 잠을 자야 했다.


'조금씩 인공호흡기를 떼는 연습을 하고 싶어요.'


소년의 엄마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그의 뇌손상도 생각보다 깊었다.


마지막 면회시간

소년의 엄마는 인공호흡기 없이 눈을 뜨고  편안히 숨을 쉬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보며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가 잠이 드는 순간 어김없이 그의 모니터 알람이 울린다.


오늘도 소년의 밤이 길다.


소년이 어서 저주에서 풀려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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