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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Apr 23. 2020

힘든 결정

병원 이야기

신경외과 병동에서 근무할 당시,
내가 돌보던 환자가 파종성 혈관 내 응고 증후군(Disseminated Intravascular Coagulation, DIC)을 진단받았다.
DIC는 혈액응고인자들이 비정상적으로 소진되어 지혈작용이 정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질병이다.


그 환자가 내가 근무하던 신경외과 병동으로 입원했던 이유는 소량의 뇌출혈 때문이었고,
입원 후 치료 과정에서 뇌출혈은 매우 잘 제거되었다.
그런데 환자는 지속적인 두통과 전신무력감을 호소했고, 확인을 위해 검사한 CT 상 다시 출혈이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량의 뇌출혈을 제거한 이후에도 반복되는 출혈이 계속되어 원인을 찾다 보니 상기와 같은 진단이 그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단 이후 그 환자를 위한 치료는
뇌에 있는 출혈을 제거하는 것과 함께
비정상적인 지혈작용으로 인한 혈액 손실을 보충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환자는 매일매일 다량의 수혈을 하게 되었다.
수혈 시마다 환자는 힘들어했다.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온몸의 혈관이 군데군데 터지고 약해져 더 이상 주삿바늘을 꼽을 혈관을 찾기도 어려웠다.

DIC 진단 후 환자를 담당하는 진료과는 신경외과에서 혈액종양내과로  변경되었다.
전과가 되면 담당 의사가 바뀌게 되는데,
전과 당일 환자를 담당하게 된 혈액종양내과 의사는 병동에 와서 환자의 예후에 대해 보호자에게 설명을 했다.

담당 의사가 보호자에게 설명한 환자의 여명은 일주일, 매일 수혈을 해도 이 주일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보호자들에게 무거운 숙제를 하나 남겼다.

일주일의 생명 연장을 위해 수혈을 지속할지를 다른 보호자들과 논의 후 결정하라고 했다.

며칠 후 보호자들은 고심 끝에 수혈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소량의 뇌출혈로 환자가 우리 병동에 입원했을 당시 그 환자는 입원한 환자들 중 경증 환자에 속했다.
뇌출혈을 제거하는 수술도 잘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환자가 곧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환자가 DIC를 진단받고 여명이 이제 일주일 남았다고 한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남편과 딸의 얼굴을 보는데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환자의 치료 방침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한 흔적이 두 분의 얼굴에서 묻어났다.

수혈의 과정 자체도 환자가 너무 힘들어했기에, 내가 환자의 보호자였어도 동일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다만 이런 결정을 결국 힘든 상황에 있는 보호자들이 고민하고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치료를 한다고 해도 환자가 완치되는 것은 아니기에 보호자들은 결국 치료의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 결정을 내리면서,
이 치료마저 선택하지 않으면 엄마에게, 아내에게 간절한 하루를 빼앗는 것만 같아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것이다.

보호자들의 그 무거운 고민의 시간이 나에게도 느껴져 죄송하고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나는 그 마음을, 감정을 절대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들이 너무도 힘든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그 결정을 지지하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앞날을 위해 기도하자고 다짐했다.




아빠가 응급실로 내원하게 됐다.
아빠는 다발성 골수종을 진단받고 한 달간의 입원 치료 후 집에서 항암치료를 지속하던 중이었다.
  
항암치료 시 고용량의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게 되는데 이는 당뇨가 있는 아빠의 혈당을 비정상적인 수치로 올려놨다.

아빠는 순간 의식을 잃었고 우리 가족은 구급차를 불러 빠르게 응급실을 찾았다.

아빠의 혈당은 700을 넘는 수치를 보였다.
아빠의 혈액 수치들도 비정상적이었다.

혈당 조절과 함께 탈수와 혈액 수치들을 교정하기 위해 많은 양의 혈액과  수액이 아빠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일부 수치들이 교정되는 동안 급격하게 늘어난 체액으로 아빠의 폐에는 물이 차기 시작했다.

아빠는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우리는 담당 의사와 면담을 했다.

- 아버님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실까요?
어머님과 두 따님이 계신 게 맞나요?
- 네.
- 아버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세 분이 논의하셔서 연명치료를 하실지 결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님의 평소 생각이나 가치관을 생각해주세요. 아버님이 지금 컨디션이 좋지는 않지만 의식이 있으니 아버님과도 상의해주세요. 오늘 밤에라도 응급상황이 오면 기관 내 삽관 치료를 하실지, 심폐소생술을 하실지 의견을 말씀 주세요.

그 환자를 간호하던 과거의 나는 나에게도 이런 힘든 결정의 순간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 지금 아빠의 폐가 많이 안 좋지만, 기관 내 삽관을 해서 치료를 받고 폐가 좋아지면 다시 관을 뺄 수 있을까요?
- 힘들 것 같습니다. 결국 기관절개술을 하시게 될 거예요.
- 그럼 아빠와 대화를 할 수 없나요?
-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그럼 심장이나 폐 기능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심정지의 응급상황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때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가요?
- 심폐소생술도 환자에게 너무 힘든 과정이에요.
아마 따님이 잘 아실 거라 생각은 됩니다만... 심폐소생술을 거부한다면 심정지의 상황이 오더라도 추가적으로 기관 내 삽관을 하거나 심폐소생술의 처치는 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 밤이 가장 위기일 것 같습니다.
논의하실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결정을 내릴 시간은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았다.
언제 그런 응급상황이 올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우리도 그때의 그 보호자분들과 동일한 결정을 내렸다.
우리 가족은 모두 아빠의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엄마와 아빠의 가치는 확고했다.
의식 없이 심장만 뛰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고 하셨다.

엄마는 평소 당신의 가치대로 연명치료는 하지 말자고 하셨다.
아빠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고 하셨다.
모든 처치가 아빠에게는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나는 임상에서 많은 환자들을 보았다.
내가 일하는 신경외과는 갑작스러운 뇌사상태로 연명치료를 받게 된 환자들이 많이 있다.
그 과정이 환자에게도 많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연명치료를 거부한 두 분의 의견에 동의했다.

언니는 응급상황에서 아빠에게 아무런 의료적 처치도 하지 않는다는 말에 많이 놀랐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의견에 동의했다.

우리는 그 반나절의 시간 동안 많이 울었다.
고민하는 내내 만에 하나 올 수 있는 그 상황들을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아빠는 다행히 그날 밤 무사히 위기를 넘기셨다.


우리는 과정 중에서 힘든 결정을 내렸고,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 속에는 우리 가족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나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좀 더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힘든 결정이다.

지금 이 순간 이런 힘든 결정을 내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

어떠한 선택을 내리더라도 많은 시간 고민해서 내린 그 힘든 결정을 지지해드리고 싶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최선의 결정이 맞습니다.
당신의 고민과 결정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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