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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Jul 12. 2020

용기를 강요받기보다는...

병원 이야기

"그게 그 사람 몇 살 때야?"

"열아홉. 여자도 그놈도 열아홉. 나도 한때 너처럼, 부모한테 쓰레기처럼 버려진 그놈이 쓰레기처럼 살고 싶어 하는 걸 이해하고 동정 한 적도 있어. 하지만 그런 놈을 사랑해서 집을 버리고 학교를 포기하고 자기 애까지 가진 여잘 책임지지 못한 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야"

"네가 뭔데 그 사람을 용서해? 사람이 사람한테 해 줄 수 있는 건 용서가 아니라 위로야. 내가 처음 뇌종양에 걸렸을 때 내가 바란 것도 위로였어. 근데 사람들은 오빠 너처럼 위로하지 않았어. 위로는커녕 6살 아이한테 용기를 강요했어 잔인하게. 괜찮아 영이야 수술은 안 무서울 거야. 괜찮아 넌 이길 수 있어. 항암치료? 그까짓 거 별거 아니야"

"그럼 사람들이 그 말 밖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어?"

"안 괜찮아도 돼. 영이야 안 괜찮아도 돼. 무서워해도 돼. 울어도 돼. 만약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난 하루 이틀 울다가 괜찮아졌을 거야. 근데 못 울어서 그런가, 지금도 6살 그때만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 그 사람도 나 같지 않았을까? 기억도 못 할 나이에 나무 밑에 버려졌는데 어쩌다 나타난 엄만 고작 58,000원을 주고 떠났는데 그것도 모자라 세상에서 사랑한 유일한 여잘, 어린 열아홉 살에 영원히 잃어버렸는데 아무한테도 위로받지 못했잖아."

"그래도 아일 책임지지 못한 건 잘못이야."

"잘못이지, 아주 큰 잘못. 하지만 그 사람은 자기도 책임질 수 없는 열아홉이었어. 그 나이에 자기 인생을 꼭 빼닮을 것 같은 아이는 많이 무서웠을 거야. 실수한 거야 너. 난 네 덕분에 오늘, 그 사람이 더 궁금해졌거든."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노희경-






나는 어려서부터 키가 컸다.
초등학교 때 160cm를, 중학교 때 170cm를 이미 넘었으니 또래보다 항상 머리가 하나 더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초등학교 4학년 즈음으로 보았다.

학동기 전 아이의 폐렴,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난 심한 감기 한번 앓았구나 생각할 텐데 6살이었던 나는 엄마에게 나는 이제 죽는 거냐고 물어볼 만큼 입원에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소아과 병동 다인실에 입원했는데 여느 3차 병원의 다인실이 그러하듯, 내가 입원한 그 방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장기 환아들이 입원해있었다.
장기 환아들의 부모들은 폐렴으로 입원한 나와 엄마를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일주일 후면 가장 늦게 입원한 내가 가장 먼저 이방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다인실의 환아들은 얇은 혈관에 다 들어갈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양의 주사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밥은 비워 관으로 먹고 밤낮으로 기계로 가래를 빼내는 치료를 받았다.

나는 스스로 가래를 뱉어냈고 밥도 잘 먹었다.

나는 아파서 입원했지만 입원한 그곳에서는 누구보다 건강한 아이였다.

그 두 가지,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크다는 것 그리고 나의 진단명이 다른 누구의 진단명보다 중증도가 낮다는 것 때문에 나는 입원기간 동안 이상한 용기를 강요받았다.

'주이는 괜찮아. 앞의 아가는 더 아프잖아.'
'주이는 좋겠다' 곧 집에 가서...'
'잘 참을 수 있지'
'다 큰 게 울면 안 되지'
'우는 건 창피한 거야.'
'다 큰 게 울면 안 되지'라는 그 말이 지금도 가끔 서러운데, 나는 그때 고작 6살이었다.

입원 기간 동안 나는 정말 울지도 보채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간호사 선생님이 혈관주사를 놓기 위해 혈관을 찾던 도중 내 혈관을 제대로 터트린 일이 있었다. 토니켓을 묶은 팔에서 순간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는데 그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모두가 나에게 '괜찮아. 아프지 않아'라고 말해줬기에 나는 정말 내가 괜찮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때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주이야 울어도 돼. 아프면 울어. 울어도 괜찮아"

그 순간 나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병원이 떠나가도록 엄마품에서 엉엉 울었다.
모두가 당황했다.
한 번도 울지 않던 내가 멈추지 않고 계속 울어서 많이들 놀랐다.
우리 엄마만 아무 말 없이 나를 다독여주었다.

그래 나는 괜찮지 않았다.
나는 그때 고작 6살이었다.
용기를 강요받기보다는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엄마품에서 엉엉 울어야 하는 6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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