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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Jul 12. 2020

아빠와 함께 걷는 일

보호자가 된 의료인


2018년 가을에 쓴 일기




2018년 2월 아빠는 다발성골수종 진단을 받았다.
척추 압박골절로 입원해 검사를 받던 중 단순한 골절이 아닌 뼈 군데군데 종양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빠는 치료를 위해 두 달간 침상에 누워계셨다.
침상에 누워서 뼈가 붙기를 기다렸다.
그 기간 동안 아빠 몸의 모든 근육이 빠지고, 극도로 쇠약해지셨다.

치료를 위해 병행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는 아빠의 몸 안에 암세포들과 함께 일부 건강한 기능들도 함께 파괴시켰다.
아빠는 삼킴 기능이 저하됐고, 폐 기능이 악화됐다.

암 진단과 치료는 그렇게 시작돼서, 아직도 아빠를 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아빠는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맛있는 것을 드시는 것을 좋아하고 맛 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였다.

나는 아빠와 여행할 수 있는 날이 많으리라 생각했고,
좋은 곳을 다닐 시간도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의 시간은 늘 자식의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는 모르지 않았는데, 또 놓치고 말았다.

아빠는 10년 전 뇌졸중 진단을 받으셨다.
아래는 내가 2014년에 쓴 일기이다.

나는 매 순간 알았다.
알았음에도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살지 못했다.
그렇게 살아온  나의 삶이 오늘도 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힘들어하시며 느리게 걷는 그날의 아빠의 모습이 또 이렇게 그리워지는 날이 올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나는 다시는 아빠와 함께 나란히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벚꽃 구경도, 여행도, 맛 집도 다닐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빠를 뵙고 오는 길에
언젠가는
함께 걷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지금뿐이었다는 걸 미처 몰랐다며 후회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매 순간 어제보다 내일을 생각하며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지금의 아빠의 모습을 사랑하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나도 아빠도 행복할 거라는 걸 알았다.


아빠 사랑해요.




2014.2.13

7년 전 어느 날
나도 언니도 엄마도 아빠도 지금의 우리보다 많이 젊었던 그 어느 봄날
우리 가족 모두 감수성이 충만해져서 흐드러진 벚꽃을 구경하고자
여의도 벚꽃축제에 간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여의나루를 출발해 국회의사당을 거쳐 벚꽃나무를 따라 꽃을 보면서 걷고 또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추억을 남겼다.

그로부터 1년 후 아빠는 lacunar infarction이라는 stroke 중에서는 가장 경미한,
그래도 가족이 느끼기에는 여느 뇌졸중의 무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뇌졸중을 진단받았고,
그로 인해 보행장애, 구음 장애, 안면비대칭이라는 증상을 갖게 되었다.


7년 후인 지금의 내가 아빠와 함께 오랫동안 거리를 걷는다는 것의 행복과
폴라로이드 사진 속 아빠의 정정함을 그리워할 줄은 그날은 알지 못했다.


7년 후 지금의 나는
며칠 전 아빠와 함께 여행을 다녀와서 아빠가 오랫동안 거리를 걷는 일을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았고
여행 사진 속 아빠가 내가 늘 생각하는 아빠의 모습보다 많이 늙고 지쳐있음을 알았으며
이제 앞으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아빠에게 기대는 일보다 아빠가 나에게 기대는 일이 많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2월 중순 한낮에 쨍한 햇빛에 취해
봄이 조금 내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느꼈고
봄에 가장 아름다운 꽃, 벚꽃이 그리워졌고
그냥 그 벚꽃에서 아빠 얼굴이 보였다.

지금 보다 많이 젊었던 아빠의 얼굴이 보였고 순간 그리워졌지만,

나는 그때보다 많이 늙고 지친 현재의 아빠 모습을 더 사랑하고 아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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