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thingsilove
지금의 동묘가 유명해지고 유행하기 전의 이야기이다. 어릴 때 중앙시장(시내)근처에 살았어서 엄마랑 자주 시내에 나가곤했다. 그때 거리에 나와있는 상점들 (옷을 팔거나, 속옷을 팔거나,, 등) 을 들어가서 구경하는 게 어린 나에겐 어렵고 창피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구경을 하다가 엄마한테 나가자고 하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땐 그런 가게들이 촌스럽고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빈티지라고 더 많이 불리지만 그 당시 '구제의류'가게에 엄마가 데리고 갔던 게 생각난다. 지금 동묘 길거리처럼 가게 안에는 커다란 산처럼 옷더미가 쌓여져있었다. 거기에 앉아서 옷을 고르던 모습들이 생각난다. 찢어진 옷도 있었던 것 같다. 거기서 엄마가 옷을 샀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어쨋든 이게 나의 첫 빈티지옷에 대한 기억이다. 지금 난 빈티지옷을 좋아한다는 말이 부족할만큼 사랑한다. 그리고 이젠 길거리에 뭘 늘어놓고 팔아도 누구보다 그런 가게에서 구경을 잘할 자신이 있다. 이젠 그런 곳이 노다지라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어릴 땐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때 창피했던 게 너무 미안하고 미안하다. 누구한테 미안한건진 모르겠음.
난 초등학교때 부터 옷을 좋아했던 것 같다. 갖고 싶은 옷이 있으면 가져야만 했다. 아직도 6학년때 엄마가 로데오거리 옷가게에서 지갑에 현금 2만8천원을 주저하며 꺼내던 기억이 난다. 난 그때도 엄마한테 미안한 감정이 들었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샀다. 너무 갖고싶었다 그 민트색 후드티. 사고 잘 입지도 않았는데 그냥 갖고싶어서 샀던 것 같다. 근데 아직도 그 습관과 버릇은 남아있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사는 빈티지옷들도 한번도 입지 못한 옷들이 더 많다. 소장욕구가 미친듯하다. 그래도 옷을 보는 눈은 있는 건지 그렇게 사고 되팔아서 대학생 용돈벌이도 종종 했다.
매번 보세의류를 즐겨입다가 빈티지옷에 눈을 뜬건 휴학때 였다. 친구 4명이서 서로 어떤 옷 스타일이 어울릴지, 어떤 옷을 입혀보고 싶은지 얘기가 나왔다. 친구 한명이 나에게 빈티지옷이라고 말했다. 그땐 진짜 빈티지 옷에 관심도 없었고 어떤게 빈티지옷인지 느낌도 몰랐다. 문득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는데 중학교때 누군가 내가 목에 걸고다니는 카드지갑을 보고 "빈티지스럽다"라는 얘기를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빈티지스러운게 뭐지?' 생각했다. 어릴 때 지도무늬 캐리어를 사달라고 졸랐었다. 유행하던 패턴이긴 했는데 그때 초-중학생이었는데 내 또래들 중에서 그런 취향이 있었을까 싶긴하다. 엄마도 그때 그걸 사주면서 의아했다고 한다. 내 취향이 좀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취향이란 소리를 듣는데 아마 그게 빈티지스러운 취향인가 생각해본다. 난 예쁘기만한데.
난 누가 뭐라해도 내 취향을 엄청 사랑하는 편이고 믿는 편이다.
빈티지를 알게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빈티지옷구매에 관심을 갖기 전에 '론희의 옷장'이란 쇼핑몰을 알게 됐다. 내가 처음으로 팬이 된 쇼핑몰이었다. 그동안의 보세옷 쇼핑몰과는 달랐다. 옷을 설명하는 문장과 단어들, 옷의 느낌들, 사진, 사장님의 성격,, 등 모든 게 다 내 취향이었다. 휴학했을 때 용돈은 내가 벌어서 썼기 때문에 옷 사는 것에 죄책감이 들진 않았다. 내 돈으로 내가 갖고싶은걸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아마 그때부터 내 취향이라는 게 생겼던 계기가 된 것 같다. 문제는 너무 많이 옷을 사서 나중엔 몰래 산 옷들도 너무 많았다. 아직까지도 엄마랑 언니는 모르는 옷들ㅎㅎ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0만원 이상 옷을 론희의 옷장에서사봤다. 아직까지도 너무 애정하는 옷들이다. 요즘엔 저렴이 빈티지에 눈을 떠서 론희에서 구매하는 일은 적어졌지만 아직까지 내 위시리스트엔 론희옷들이 많다.
론희 사장님은 처음은 빈티지의류로 사업을 시작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처음 론희를 통해 빈티지 옷을 접하고 다른 인스타 빈티지샵을 종종 구경하게 됐다. 정확히 기억나는 건 아닌데 아마 카메빈티지샵이 내 첫 빈티지옷 구매였던 것 같다. 그 뒤로 애정하는 빈티지샵이 많이 생겼다. 빈티지를 하나 둘 모으다보니 지금 옷장이 닫히질 않는다. 큰일이다.
빈티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나는 내 설계주제도 내가 있는 지역의 구제옷가게가 깔려있는 거리를 선택해서 백화점마냥 빈티지가게들이 모여있는 복합문화시설을 계획했었다. 한마디로 빈친자였었다. 뭐, 덕분에 한 학기를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 건축학과 설계과제를 하다보면 처음에 사이트분석이라는 걸 하게 되는데 그때 어릴 때 갔었던 그런 구제옷가게들을 많이 접하게 됐다. 사장님들 인터뷰도하고 의외로 예쁜 옷들도 많아서 구매도 해왔던 기억이 난다. 진짜 괜찮은 옷들이 많았는데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빈티지샵보다 훨씬 저렴하기까지 했다. 그때부터였다. 그때가 3학년2학기였는데 학교생활하다가 시간만 나면 거길 가서 옷을 샀다. 건축학과 특성상 잠을 제대로 못자는 경우도 많아서 2-3시간 자고 생활할때도 많았는데 그런날에도 거기까지 버스타고 가서 옷을 샀다. 아무도 모르게. 지금도 아~무도 모른다. 나만의 천국이었다. 옷더미에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빈티지옷에 미쳐있었다. 지금은 몇몇가게 단골이 돼서 갈때마다 사장님들이랑 스몰토크도 하고 커피도 내려주시고 옷도 이미 저렴한데 몇천원이라도 더 깍아주신다. 아무래도 아주머니들이 많다보니 칭찬도 많이해주시고 옷 잘입는다, 옷을 잘 고른다 등 칭찬을 엄청 많이 해주신다. 졸업하고도 가끔 찾아갈 것 같다. 내 학교생활이 그나마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렇게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는 게 행복하다. 앞으로도 꾸준히 빈티지를 사랑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