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좋소 말고 좋좋복

에피소드

by viviana

나는 사회복지사다.

2011년부터 사회복지사로 일하기 시작했으니까, 대략 12년차 쯤 되는 것 같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나는 3번의 이직을 했고, 지금 직장에서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고 일하고 있다.


최근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 된 유튜브 채널에서 '좋좋소'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중소기업의 다양한 일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둔 내용이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다양한 갑질의 방법들도 나와서 신기하기도 하고 정말 저럴까 싶기도 했는데, 중소기업에 다니는 친구 말에 의하면, 현실 반영 200%라고 한다.


어쨌든, 나는 그런 의미에서 사회복지 분야의 갑질과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 : 면접과 부모님 재산 확인

대학을 졸업 후 취업을 위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몇 번의 당연한 질문들을 한 후, 면접장은 본격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면접 당사자들의 부모님의 재산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2011년 당시에만 해도 그게 가능했었나 보다.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연봉은 얼마나 되는지, 사이는 좋으신지, 조부모님은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등을 질문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나에게는 존경할 만한 부모님이 계셨고, 그래서 나는 부모님에 대해 솔직하게 답변했다.


나의 경우 내가 중학교 3학년 시절,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났고 그걸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물불 가라지 않고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셨고, 결국 지방이지만 건물을 몇 채 구입해 월세를 받게 되면서, 부모님 노후 걱정은 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그 모습이 존경스러워 아버지 사업의 부도 이야기와 극복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했는데, 재산의 총액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부모님의 모습만을 말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피드백이 날아왔다.


면접관 : "아버지 사업이 망했다고... 그럼 선생님은 집은 좀 가난한가 보네??"


순간, 어린 마음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 집이 가난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재산이 있어야 부자이고, 가난한지 정해진 게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동료 면접자들 역시 비슷한 질문을 받으며 당황스러워하는 혹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혹시 내정자가 있어 날 떨어뜨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곳에 면접 보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내가 합격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저런 사람들과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취업이 간절한 4학년 졸업반이라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그렇게 취업한 사회복지시설은 상담시설이었는데, 직원 6명 정도의 작은 사무실이었다.

그곳은 여러 가지 이유로 상담이 필요한 분들에게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상담사를 꿈꾸는 사람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곳으로, 신입인 나, 선임 1명, 과장 1명, 팀장 1명, 국장 1명, 원장 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구성 사회복지시설이 대부분 그렇듯, 선임으로 계신 선생님 한 명을 제외하고는 나를 포함해 모두가 여자였다.

유독 나의 선임인 남자 선생님이 미움을 받는 느낌이 있었는데, 염주를 끼고 왔다거나, 그 선생님 아내가 싸준 도시락 반찬이 너무 짜고 달다거나, 티셔츠가 너무 어린 티가 난다거나, 하는 것들이 이유였다.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이었지만, 신입인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 남자 선생님은 항상 긴장해 있었고, 딱히 실수하지 않아야 될 일들에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 남자 선생님과 소위 직급이 있는 그녀들에 대한 불편함을 공감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 : 카메라 도둑

그러던 중, 정말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우리 사무실은 24시간 상담을 진행해야 하는 곳이라 돌아가면서 여름휴가를 가게 되었는데, 늦여름쯤 나의 휴가 차례가 되었다. 금요일 과장님 담당의 조금 큰 행사가 있어 행사를 서둘러 마치고 퇴근을 했고, 월요일부터 휴가인 나는 더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휴가를 맞이하게 되었다.

꿀 같은 여름휴가 첫날인 월요일 오후쯤?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받지 말까 수십 번을 고민했지만, 소심한 나는 결국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의 냉정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팀장 : "혹시 휴가 갈 때 기관에 있던 카메라 들고 갔어요?"


나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휴가를 받았지만 멀리 갈 생각이 없어 집에 쉬고 있는 터였다.

나는 무슨 카메라를 말하는 거냐 물었고, 팀장님은 사무실에 사용하던 디지털카메라가 없어졌다며, 내가 휴가 가고 난 후에 카메라가 없어진 걸로 봐서 내가 휴가 때 사용하려고 카메라를 들고 간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난 정말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고 살아왔고, 부끄러운 행동 한번 하지 않고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이런 소리를 들으니 너무 억울하고 답답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 생각해도 화가 나는 걸 보니 아직 앙금이 다 풀리지 않았나 보다.


어쨌든, 난 아니라고 이야기했고, 의심 가득한 목소리의 팀장은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어찌나 화가 났던지 여름휴가 기간 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보내야 했다.

이후 출근해서 들어보니 디지털카메라는 행사를 담당했던 과장님의 책상 서랍 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행사 당일 정신없이 일한 뒤, 본인 서랍 속에 카메라 넣어둔걸 깜빡했다고...

카메라가 과장님의 책상 서랍 속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 팀장님은 내가 그 카메라를 가져갔다고 확신했었다고 한다. 집이 넉넉하지 않으니 카메라가 없어서 시설에 있던 걸 빌려갔을 수 있다고 하며, 말을 하고 빌려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출근하기 하루 전, 선임인 남자 선생님이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온 사무실을 뒤지기 시작했고, 결국 과장님의 책상 서랍에서 카메라를 발견했다고 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너희들보다 우리 집이 얼마나 재산이 많은지를 선언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냥 포기했다. 그럴 이야기를 할 가치가 없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2011년 그 해 여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세 번째 에피소드 : "위험하니까 선생님이 해 줄래요?"

내가 근무했던 곳은 지방도시인데, 사회복지 바닥이 다 거기서 거기라 나쁜 소문이 나면 재취업이 어려울 수 있다는 선배들의 조언이 많았다. 카메라 사건 이후 얄밉기만 한 사람들과 한 사무실을 쓰자니 참 괴로웠지만, 1년도 못 채우고 그만두게 되면 나를 이상하게 볼 것이 뻔했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경력을 쌓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해 겨울이 되었다. 사무실이 오래된 건물이라 바람이 많이 들어 히터를 켜도 영 따뜻하지 않았다.

그래서 각자의 자리 옆에 선풍기처럼 생긴 온풍기가 하나씩 비치되어 있었는데, 내 옆에 앉아있던 과장님의 온풍기가 고장 난 것이다. 다른 직원들이 오래 사용했으니 교체하자고 했으나, 과장님은 기필코 그걸 고치고 말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더니 온풍기 바닥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업무시간에 갑자기 드라이버와 펜치를 들고 온풍기를 고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절약정신이 대단하다 싶기도 했다.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온풍기 밑바닥을 야무지게 드라이버로 잠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다 고친 건가 싶었는데, 나한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곁을 갔더니 그녀가 한마디 한다.


과장 : "선생님이 이거 전기코드 좀 꽂아봐. 내가 고쳤지만 나는 위험할 것 같아서 못 꽂아보겠어."


순간 뇌 회로가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사회복지사라는 사람이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나? 아니 사회복지사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저럴 수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말이 사무실 사람들이 듣기에도 참 이상했는지 다들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난 웃을 수 없었지만...)

당황하는 내가 불쌍해서였는지, 진짜 위험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팀장님이 한마디 했다.


팀장 : "아니, 그냥 버리세요. 진짜 감전돼서 사고 나면 어떻게 하려고..."


결국 그 온풍기는 고쳐졌는지 여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전기를 꽂아보지 않았기에 폐기하기로 한 것이다. 온풍기는 즉각 폐기물 처리장으로 향했다. 본인은 위험하니 나한테 전기 코드를 꽂아보라는 이야기가 그저 장난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그때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아프게 남아있다.


이러한 다양한 일들을 겪다보니 회사에 만정이 떨어지기 시작한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직원으로써 존중하고 싶었고 존중받고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란 말인가?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업무로 인해 지키는 날도 참 많았지만, 사람에게 데인 상처는 방부제를 넣은것 마냥 썩지않고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있는것 같아 괜스레 마음한켠이 짠해져 오는것도 같다.



불현듯,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를 힘들게했던 그녀들이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