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좋복 :) 절약정신

by viviana

2013년 여름, 그 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나의 두번째 직장이었던 사회복지시설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나는 지방에 있는 노인요양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법인 이사장님의 자원 절약정신으로 인해 사무실에 에어컨이나 히터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사무실 내부 온도는 38도를 넘어섰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외부 손님이 오지 않는 한 절때 에어컨을 틀지 말라는 이사장님의 명령이 있어 더위를 가만히 앉아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돌돌돌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4대로 8명의 직원이 그 여름을 견뎌 내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이사장실과 원장실은 춥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원했지만...)


직원들은 가끔 꼼수로 이사장님이 안 계시는 날, 몰래 에어컨을 틀기도 했는데 이사장님이 타지역으로 출장을 갔을 때만 가능했다. 얼른 에어컨을 틀었다가 이사장님이 오시기 전에 에어컨을 끄는 형식이다.

이사장님은 외근 중 시설로 돌아오시면서 항상 전화를 하신다.


"나 지금 들어가는데 별일 없죠?"


이사장님의 전화라는 생각이 들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직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어 실내온도를 뜨겁게 만드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시원한 느낌이 남아 있으면 에어컨을 켜고 있었던게 들키게 되니까...

(그런일은 여름 한 계절 동안 2번~3번 정도 있는 일이라고 한다.)


다른건 몰라도 에어컨이나 히터 만큼은 빵빵하게 틀어줬던 예전 상담시설이 생각나 아쉽기는 했지만 어쩌겠는가?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했으니, 참는 수 밖에!

무척이나 더웠더 그 해의 여름은 땀을 서너바가지 정도 흘리고 마무리 되었다.


천국 같았던 가을은 금방 지나갔고,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겨울이 찾아왔다.

겨울은 여름보다 더 힘들었다. 영하10도 가까이 떨어지는 날에도 히터는 마음대로 켤 수 없었다.

히터 역시 외부손님이 없는한은 절때로 틀면 안된다는 명령을 받아놓은 터였다.

전기세를 아껴야 한다는 명령하에 사무실에는 선풍기처럼 생긴 난로 3대가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춥다보니 환기도 제대로 시킬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제가 발생했다.


여자화장실 물 손잡이가 왼쪽으로 돌려져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사장님의 특명이 있었는데, 그건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경우가 있으면, 물 손잡이를 반드시 오른쪽으로 젖혀놓고 나오라는 것이었다. 당시 그 요양원은 왼쪽은 따뜻한 물을, 오른쪽은 차가운 물을 틀어주는 수도꼭지였는데, 물이 잠겨 있는 동안에도 손잡이가 왼쪽으로 가 있으면 보일러가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사장님의 기에 눌려 모든 직원들은 그 말에 반박 할 생각조차 못 했고, 그에 따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물 손잡이를 왼쪽으로 돌려놓고 그냥 나온 것이었다.

따뜻한 물로 손을 씻고 깜빡했으리라.


"방금 화장실 다녀온 사람들 이리 다 나오세요! 우리 시설에서 이런 낭비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남자 직원들은 용의선상(?)에서 제외 되었고, 누가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다녀왔는지 가려내야 했다.

사실 누가 화장실에 마지막으로 다녀왔는지 가려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다.

누가 그런것을 다 점검한단 말인가? 하지만 누군가는 나서야했다.

(나는 사실 이런 상황의 늪에 내가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불쾌함을 느꼈다. 화장실 물 손잡이를 오른쪽에 놓느냐 왼쪽에 놓느냐가 뭐 그리 중요하다는 말인가?)


나는 홧김에 '내가 그랬나보다. 깜빡한것 같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 상황이 빨리 끝나버리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사장님은 나에게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했다.'며 나무랐다. 한참을 혼나고 나서야 시말서를 쓰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 되었다.

시말서의 사유는 '시설의 자원을 절약하지 않은 점'이었다. 이미 비슷한 이유들로 몇 회 시말서를 썼던지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또 한장의 시말서를 내 인사기록부에 추가하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시설에 3년 정도를 있었다. 지금은 훨씬 직원복지가 좋은 곳으로 이직했지만, 그 때 당시를 생각하면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 기억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손을 씻으면 수도꼭지를 꼭 오른쪽으로 돌려 놓는 버릇이 생겼다. 우리집 화장실이건, 싱크대이건, 지하철이나 휴게소 공중화장실도 마찬가지다. 좋은 습관(?)을 생기게 해준 이사장님께 한편으로 감사해야 하는것일까?



살다보면 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절대, 결코, 반드시,' 이런 말들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제는 그런말을 점차 줄이게 되는 것 같다.

아직 40도 되지 않았지만 점차 절대적인것은 없다는 것을 점차 알아가게 된다. 사람들을 만날 수록 더 그런 생각이 짙어지는 듯 하다.


과거에는 놀부는 나쁘고 흥부는 착하다는 생각이 절대적인것 이었다면,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

또, 심청이 효녀가 아니라 시각장애인 아버지를 버리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러 가는 무책임한 딸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변함에 따라 절대적인것은 점차 사라지고 유연하게 바뀌고 있는것 같다.

나는 나이 들수록 절대적인 것이 없는, 유연한 사람이고 싶다. 이 다음에 내가 이사장님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면 조금 더 유연한 어른으로 후배들을 맞이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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