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낭 간다냥
2022년 4월.
나는 결국 서럽게 울어버린다. 첫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남편과 페이스톡을 하면서 그간의 힘듦과 서러움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이날 아이는 내가 짐승처럼 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다음날 아침 식탁 위에 '엄마, 나는 괜찮아요. 엄마가 힘들면 한국으로 돌아가요.'라고 쓴 쪽지를 놓았다. 아차 싶었다. 아빠도 없이 믿을 사람은 나뿐인 아이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버려 마음이 아팠다.
잔뜩 경직된 몸과 마음을 좀 풀고 싶어 휴가 기간(4/30~5/7)다낭에 가기로 한다. 경기도 다낭시. 나는 그전에 다낭을 가보지 않았다. 나는 청개구리 기질이 강해 남들이 하면 안 하고 싶고 남들이 안 하면 하고 싶다. 다낭이 인기 여행지가 된 지 한참이지만 나는 끌리지 않았다. 그 다낭을 가보기로 한다. 다낭-호이안-후에를 돌아보는 7박 8일 코스를 짰다. 다낭 공항에 도착해 그랩을 불러 미케 비치에 있는 호텔로 갔다. 호텔 창으로 내다보이는 해변이 아름답다. 세계 몇 대 아름다운 해변이라던데.. 모래 위로 부서지는 작은 파도들이 예쁘다.
저녁을 먹기 위해 호텔 근처의 로컬 식당으로 갔다. 로컬 식당의 선정 기준은 뭐다? 현지인이 젤 많은 곳! 식당에 가서 사람들이 먹는 샤부샤부 같은(러우)것과 해산물을 시켰다. 어라?! 국물에 토마토와 파인애플이 보인다. 한입 먹고 속으로 ‘우웩’.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생선도 넣고 오징어와 새우 등을 넣고 끓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함께 갔던 친구 아들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던 것 같고 어른 둘이서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왔던 듯.
다음날은 다낭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핑크 성당, 한 시장… 한국 여행객 블로그에 제일 많이 나오는 곳들. 베트남 어딜 가든 성당이 있다. 1923년에 지어졌다는 이 성당도 프랑스 점령기의 유산이다. 분홍색 외벽과 지붕의 수탉 모양 풍향계가 있는 이 성당이 인기포토존이라는데…글쎄… 그냥 다낭 왔으니 기념사진은 찍었다. 한시장 역시 베트남 아니 동남아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시장인데 요즘은 그나마 주변이 잘 정리되어 있지만 실내는 덥고 습했다. 파는 물건들도 특별할 것 없다. 소위 쇼핑리스트라며 여러 블로그나 여행자 카페에 사진으로 소개되는 각종 기념품들이 있긴 한데 요즘엔 해외 제품이 귀한 시절이 아니니까. (10여 년 전 호찌민에서 나는 g7커피 스무 통을 사갔었다)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맞춰 입을 수 있다고도 하는데 쇼핑에 큰 뜻이 없는 나는 그냥 그랬다.
오후에는 다시 호텔로 돌아와 해변에서 좀 놀려고 했는데 미케비치는 해수욕보다는 그냥 관상용 비치라 해야 할 것 같다. 조금 놀다 해변에서 생선을 팔길래 구경해 본다.
다음날은 애들이 고대한 바나힐~ 케이블카로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5월임에도 벌벌 떨리는 이 날씨 무엇?? 흐리고 찬 날씨… 너무 추워서 비닐 우비로 추위를 달래야 했던~ 비가 와 놀이기구도 운행하지 않았다. 음…. 여행은, 특히 날씨는, 알 수 없지……그래서 할 수없지…..
다음날은 호이안으로 떠나는 날. 기사를 불러 안방비치의 숙소로 간다. 2시간 정도 걸렸던 듯.
숙소에 짐 정리를 하고 그랩을 불러 호이안 올드타운으로 갔다. 와~ 등불이 몽환적이다. 아름답다. 올드타운은 정말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아기자기하고 고풍러웠다. 세월이 멈춘 듯한 고택과 운치 있게 늙어있는 거리가 일품이다. 1593년 일본인들이 세운 지붕이 있는 목조다리인 내원교와 중국 광둥의 어부가 살던 떤끼 고가, 풍흥이라는 무역상의 상점 건물인 풍흥의 집 등 멈춘 시간 속 풍경이 지금도 진한 잔상으로 남아 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이 대박이었다. 나는 여기서 인생 반쎄오를 먹게 된다. 첫 호이안의 이미지가 참으로 좋다. (귀임 전에 한 번은 더 갈 생각이다) 저녁을 먹고 한 바퀴 더 돌고 간식거리를 사서 다시 호텔로 왔다.
안방비치는 모래가 곱고 예뻤는데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은 터라 여기저기 문을 닫은 숙소와 식당들로 활기가 없어 보였다. 호이안에서의 2일 차 하이라이트는 그 유명한 바구니 배를 타는 것이었다.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아 당일 현지 예약도 어렵지 않았다. 바구니배를 젓는 아저씨의 현란한 몸짓과 퍼포먼스는 묘기에 가까웠다. 현지인들도 환호하며 즐긴다. wow!
바구니배를 타고 다시 그랩으로 올드타운으로 갔다. 낮에 본 호이안은 밤과 달리 제 색을 드러내며 우리를 맞는다. 베트남 곳곳에서 등을 볼 수 있지만 나에게 형형색색의 등은 역시 호이안의 색이다. 저녁은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버거를 먹으러 갔다. 구글로 검색해 찾은 버거집이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맛났다. 주인 아저씨가 아르헨티나였나 어디 사람이라 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호이안에서 2박을 하고 다시 다낭으로 가 친구를 보내고 딸아이와 후에를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오행산을 들렀다. 서유기의 손오공이 500년 동안 갇혀있었다는 산이다. 거대한 화강암과 대리석 산 5개가 한데 모여 장관을 이루는 이 산은 오행설에 따라 금, 목, 수, 화, 토산이라는 이름을 지녀 오행산이다. 가장 높은 수산(투이선)은 자연 형성된 거대한 동굴과 불교 사원이 있다.
산에 오르는 동안 딸아이의 컨디션이 별로다. 워낙 애기 때부터 험난한 여행에 익숙한 아이라 그저 파이팅을 외치며 달래어 산에 오르고 동굴에도 올랐다. 다낭에서 1박을 더 하고 다음날 후에로 가야는데 아이가 아프다. 열이 심하다. 한국인 약국을 수소문해 약을 배달시켰다. 이 아이는 코로나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고 2차까지 접종한 내가 코로나에 걸렸던 2월 말(나는 격리 해제 후 바로 코로나에 걸려 심하게 고생했다) 나와 같이 먹고 자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기에 단순 목감기인 줄 알았는데 하노이 돌아와 검사하니 코로나였다. 코로나인줄은 몰랐지만 아이가 많이 힘들어해 후에 여행을 포기하고 다낭에 더 머물기로 한다.
김밥과 어묵을 호텔로 배달시켜 조금 먹여보아도 영 시원찮아 해열제와 진통제를 먹이고 재웠다. 다음날도 충분히 재우고 호텔 인근 한식집을 찾아 갈비탕도 먹였다. 산책하고 호텔로 와 쉬었다.
조금 나아진 아이와 함께 야시장을 찾았다. 음… 몇몇 먹거리 수레가 보이고 조잡한 기념품 좌판이 보이는데 특색이 없어 보인다. 야시장에서 저녁을 먹기 별로라 해산물 식당을 검색했다. 아이와 둘이 새우구이와 조개 구이 등 이것저것 시켜서 절반도 못 먹고 나왔던 돈 아까운 기억.
다음날,
후에를 가지 못하게 되었으니 호캉스나 하자 싶어 호텔을 옮겼다. 그리고 하노이로 돌아가기 전 다낭을 좀 더 돌아보기로 한다. 해안가에 위치한 전망 좋다는 영흥사에 갔다. 30층 건물 높이의 베트남에서 가장 큰 해수관음상이 장관이다.
그 외에 인도의 영향을 받은 참파 왕국의 힌두교 양식 조각 예술품들이 전시된 참 조각 박물관도 둘러보고 바빌론 스테이크로 가 밥을 먹고 호텔로 갔다.
후에를 못 갔지만 우리의 첫 휴가는 코로나 투혼을 한 딸아이 덕에 무사히(?) 끝이 났다. 하노이에서 국내선을 타고 왕복하니 울산에서 제주도 가는 기분으로 다녀왔다. 하노이 라이프의 앞으로가 조금은 희망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살짝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해외살이의 장점으로 여행을 꼽는 사람이 많다. 나는 한국에서 나름 여행을 많이 다녀서인지 여행이 장점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 때, 하노이 사는 동안 베트남 여기저기 다녀봐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여전히 해외살이 뭐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