Земфира Zemfira
음악을 들을 때면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 파트로 구성 짓곤 한다. 그리고 가수가 사용하는 언어, 억양 또한 개개 악기가 표현하는 고유의 음색처럼 듣는 경향이 있다. 가사의 내용을 음악의 중요 요소로 받아들이시는 분들도 많고, 개인적으로 내용을 알게 되었을 때 제2의 음악적 경험을 하는 경우도 상당하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성향 때문에 가사의 내용은 거의 신경을 안 쓰고 음악을 듣곤 하는데, 이게 때로는 편리할 때가 있다. 전혀 모르는 언어로 부르는 음악들도 그 뉘앙스 자체를 느끼며 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내게는 생소한 언어인 러시안 록을 떠올릴 때 단박에 떠오르는 여성의 음악을 얘기하고 싶다.
그에 앞서 러시안 록을 얘기할 때 바로 떠오르는 이가 있지 않은가? 러시안 록은 과거 사회적 폐쇄성 때문에 자생적 한계도 있어 알려진 게 제한적이긴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Viktor Tsoi 빅토르 초이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할 것이다. 아버지가 고려인이라는 핏줄을 통해 국뽕을 자극하기에 이만한 게 없었고, 여러 매체에서도 과거 이를 다루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3세가 한국인의 핏줄이나 정체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그에게서 이런 언급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이 억지 끼워 맞추기는 개인적으로 마뜩잖았다. 하지만 국뽕이든 어쨌든 그 덕에 그의 음악들이 한국에 라이선스로 발매되고 수입되었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음악 자체적으로만 접근해도 그의 음악들은 매우 훌륭하기 때문이다.
빅토르 초이의 음악을 들을 때면 투명한 흰색이 떠오른다. 어두운 톤을 좋아해서 항상 검정색 옷을 걸쳤다고 하지만 말이다. 아주 단촐한 악기 구성하에 투박하게 내뱉는 거친 러시아 억양은 심심할 것 같으면서도 순백의 감동을 준다. 아주 추운 공간에서 만들어졌을 음악들이지만 따뜻한 아랫목이 생각나게 한다. 그런 마음들은 달리 말하면 반짝 사라질 감성이 아닌 것이다. 빅토르 초이가 그렇게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런 은근한 군불 같은 영속성이 가슴으로 다가왔던 것이리라 생각해 본다.
그런 빅토르 초이의 음악들에 의해 러시안 록이 내게는 친근하게 느껴졌을 때 혜성처럼 만나게 된 음악이 바로 Zemfira 젬피라 였다.
‘여전사’라는 이미지를 떠 올릴 때 나는 미국이나 영국의 그 수많은 여걸들을 제치고 단번에 Zemfira를 떠올리게 된다. 여기에는 강한 면모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거칠 것 없는 패기도 중요한 에너지이지만 온몸으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이 목소리에서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호소력 또한 한몫을 했던 것은 물론이다. 내유외강의 복합성을 겸비한 그녀를 처음 들었을 때 받았던 충격은 대단했다. 영미 록 음악과 비교한 신기함도 아니었고, 온전히 음악과 그녀의 목소리 자체로 한눈에 반했던 것이다.
특히 21세기를 앞두고 1999년 발매한 1집 [Земфира (Zemfira)] 동명앨범과 2000년 2집 [Прости меня моя любовь (Forgive me my love)]은 심심할 때 한 번씩 꺼내 듣고 싶은 명반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빅토르 초이의 음악이 따뜻한 이불 덮고 귤 까먹으며 듣는 감성으로 좋다면, Zemfira의 음악은 20대 초반 여성 음악인이 자신만만한 냉소를 가지고 세상에 거칠 것 없이 걸어 나가는 포부와도 같다. 그 감성에 가슴속이 시원해지는 것이다. 스튜디오 앨범인데도 불구하고 라이브 앨범인가 싶을 정도로 그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보이시한 외모를 포함하여 많은 어린 여성 팬들이 선망의 대상처럼 그녀를 좋아했던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물론 여기 남성 팬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녀의 노래하는 억양 또한 킬링 포인트로 언급하고 싶다. 러시아 억양이 이렇게 부드럽고 감미로운 구석이 있는가 싶게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일거에 해소시켜 주었다. 해외에서 활동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영어가 아닌 러시아 어로 앨범을 발매하고 공연을 하는 것도 내게는 좋아 보인다. 알아듣지는 못하되 억양이 주는 그녀만의 음악적 아우라를 어찌 놓칠 수가 있겠는가. 아마 서구권 팬들도 동일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프랑스어로 부르는 샹송을 굳이 영어로 요구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맛깔나게 배치된 편곡, 적절한 포인트에 배치된 현악, 아기자기한 음악적인 요소 또한 빠질 게 없으니 한눈에 반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아마 가사를 해석해 보았다면 또 다른 매력 요소 한 가지를 더 발견했을 것이나 지금까지 이 부분은 유보해 놓았다. 이로서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현재도 계속 앨범 작업 및 공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튜브로 공연을 간접적으로 접해 볼 수 있는 요즘은 더 좋은 환경이네. 앞으로도 멋진 모습으로 활동해 주길 기대해 본다.
그 이후 다른 러시안 록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다. 여정은 딱 두 뮤지션에 대한 공부로 끝났지만 여기 이렇게 위로를 주는 앨범으로 소개할 수 있는 지경이 되었으니 충분하다 싶다. 내게 ‘듣고 싶은’ 음악으로 말이다.
그녀의 음악 중 잔잔하게 잦아드는 한 곡을 소개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 작은 음악적 표현은 그녀의 아름다운 한 요소일 뿐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그녀의 직설적인 면모 또한 도처에서 함께 한다. https://youtu.be/i5PA9DQMIPY?si=IBqV3dXsBXwRj8v5
그녀가 1집 앨범 발매 후 영국에 잠깐 이주했을 때의 영감을 바탕으로 만들었을 곡으로 추측해 본다. 여전히 록 음악적으로는 폐쇄적이었을 러시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영국의 하늘은 과연 어떠했을지. 잿빛으로 가득한 하늘이었더라도 말이다. 정말 날아오르는 듯한 소름은 덤.
글을 쓰며 처음으로 그녀의 가사를 해석해 본다. 역시 이를 통해 또 다른 감흥을 받게 되네.
..... 내 이럴 줄 알았다.
Земфира Zemfira [Прости меня моя любовь (Forgive me my love)] 2000년 ЛОНДОН (London)
https://youtu.be/Uc9U_IBaIls?si=KmWaplRgJhR16l5N
ЛОНДОН (London)
런던 하늘에 대한 꿈을 꿨어
꿈 속에서 긴 키스를
우리는 어디에도 거칠 것 없이 날아다녔지
타워 브리지 위로 누가 먼저 추락할까
아침에
나는 알게 되겠지 아침에
너도 알게 될거야
이 꿈보다 소중한 건 없어
네 전화 없이는
결국 난 외로운 짐승일 뿐
난 그리워 밤을 헤메이고 있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여전히 한 마리의 짐승으로
마지막 지점까지 걸음수를 세어 본다
우린 날아오르려 달렸어
런던 하늘에 대한 꿈을 꿨어
꿈 속에서 긴 키스를
우린 구름 위를 거닐고 있었어
그리고 런던의 비인 척 아스팔트 위로 내렸지
아침에
나는 알게 되겠지 아침에
너도 알게 될거야
이 꿈보다 소중한 건 없어
네 전화 없이는
결국 난 외로운 짐승일 뿐
난 그리워 밤을 헤메이고 있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여전히 한 마리의 짐승으로
마지막 지점까지 걸음수를 세어 본다
우린 날아오르려 달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