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
여행도 결국 그 속에서 자신만의 테마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가족과 일용할 주말을 보내기 위해 좌충우돌 찾아보았던 수많은 장소들, 많이 쏘아 얻어걸리길 바라던 시간들이 있다. 때론 실패하고, 때론 일부만 즐겁던 와중에 정말 모두에게 번뜩이는 장소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곳은 우리들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 있지 않나. 그런 경우에는 잘 맞는 옷을 계속 걸치고 싶듯이 또다시 들르게 되고 결국 하나의 가족 행사가 되곤 한다. 그리고 그곳을 함께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추억보다도 값지다. 더 이상 공간은 지명으로 기억되지 않고 집 앞마당 마냥 유유자적 거닐었던 어스름녁 색채로 남아 있을 것이기에.
우리 가족에겐 그중 하나의 공간이 가평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다.
올해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의 날짜가 홈페이지를 통해 확정되었다.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이네. 10월에 공휴일이 많다 보니 이와 엮어서 첫째 혹은 둘째 주 금토일이 보통이었는데 셋째 주에 진행이 되는구나. 아직 티켓팅도 라인 업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이제 슬슬 발동을 걸리라. 대한민국의 수많은 페스티벌이 각 지자체와 장소에서 진행되어 매월 여행객들을 유혹하지만 이 페스티벌은 좀 특별하다. 우선 대한민국 음악 비주류 중에서도 가장 비주류라 할 만한 재즈를 테마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지역 국한이 아니라 국제 페스티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지역 페스티발의 성공담에 본 가평군의 자랑은 몇 손가락에 들 것이고 많은 이들이 영감 또한 얻어 왔다. 올해가 이미 21회 째인데, 단순한 명목상의 역사가 아니라 매년 성공적인 관객 유치를 이어오고 있고, 행사의 수준과 의미 또한 남다르다. 비가 오면 잠긴다는 황무지 자라섬을 페스티벌의 무대로 생각했다는 발상의 전환과 가평 공무원 분들의 열린 시각, 나윤선의 남편으로 잘 알려진 인재진 총감독의 기획력이 합쳐져 단단한 축제가 시작되었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이렇게 유명해지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전문성과 대중성 두 가지 이율배반적일 수 있는 요소를 기가 막히게 조율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전문성이란 음악 프로그램을 얘기하고, 대중성이란 즐기는 방식을 의미한다.
프로그램의 전문성이란 뭘까?
모두가 수긍할 만한 것이 페스티벌은 현재까지 재즈 흉내내기가 아니라 100% 전문적인 본연의 음악을 바탕으로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매년 어떤 국가의 재즈 씬라거나 특정 테마를 정해서 기획을 하는데 유명한 아티스트를 섭외하는 것뿐만 아니라 선구적으로 앞서서 트렌드를 알리려는 방향성도 가지고 있다. ‘국제’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해외 아티스트들이 많은 프로그램을 장식하고 있는데, 페스티벌의 위상이 커진 현재는 이들 뮤지션들도 서고 싶은 무대라고 한다. 한국의 재즈 아티스트에 대한 안배도 아끼지 않으며, 대회를 통해 선발된 신규 루키들의 무대도 지원하여 국내 재즈 토양을 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이름은 재즈지만 팝 지향적인 서울재즈페스티벌 프로그램과는 확실하게 궤를 달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전문성은 어떤 분야에서 첫 번째를 얘기할 때 손꼽히는 차별성으로 각인된다. 개인적으로는 부산국제영화제와 같은 위상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올해는 폴란드 재즈가 메인 테마라고 하는데 그런 기획의 방향성을 즐겁게 지켜보면 될 것 같다.
그럼 이런 소수의 음악을 다수가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드는 대중성이란 뭘까
여기에는 음악 페스티벌이라고 할 때 광란의 난장판, 긴 줄, 뙤약볕, 편의 시설 부족, 바가지 등 무언가 지레 부담을 가질 만한 풍경이 없다. 야외 소풍 오듯이 가족 단위, 친구 단위로 잔디밭에 앉아 편하게 먹고 마시고 즐기다 갈 수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 가족도 이 부분이 있었기에 연례행사로 가능했을 것이다. 혼자야 무조건 즐겁겠지만 사실 아이와 아내가 그렇게 재즈에 대한 관심이 있겠는가. 그러하다 보니 본 페스티벌에 오는 수많은 이들 또한 재즈가 너무 좋아서 혹은 이 아티스트를 반드시 봐야겠다고 오는 분들만 있지 않다. 오히려 많은 이들은 이 지역 축제 자체를 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기러 오게 되고, 이는 페스티벌 전체를 흐르는 메인 기조가 된다. 어딘가 떠나기 좋은 가을 하늘, 이만한 짧은 일탈이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전문적이지만 즐기는 방식은 일상적이다?
여기서 핵심이 돗자리이다. 주변 풍광이 모두 자연인 자라섬의 넓은 공연장은 모든 이들이 소풍을 즐기며 무대를 맞이하게 해 준다. 물론 앞자리에서 아티스트들을 보고 싶은 열혈팬들은 나름의 준비를 하겠지만 보통은 부담 없는 마음으로 들어가 적당한 자리에 돗자리를 깔면 된다. 돗자리를 까는 그 구획이 오늘 우리 가족이 일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정말 멋진데 여느 음악 페스티벌에서 인파에 갇혀 허덕이다가 나갔다 들어오기라도 하면 자리가 사라지는 그런 게 아닌 것이다. 돗자리를 깔고 즐길 준비만 해 놓으면 그다음은 우리 마음이다. 같이 먹거리를 사러 갔다 오기도 하고, 산보 갔다 오고, 드러누워 쉬다가, 방방 뛰고 원하는 데로 즐길 수 있다. 그래서 공연 기획인들은 가족, 친구 단위로 찾은 이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공연 중간 즐길 편의시설 또한 훌륭하게 준비한다. 대기업과 제휴해 여러 가지 다양하게 준비한 먹거리 부스, 편의점, 주류들은 훌륭한 수준이고, 게임이나 이벤트 또한 간간히 즐길 수 있도록 해 준다. 특히 화장실을 충분하게 확보해 놓아 가장 기본이지만 간과하기 쉬운 부분도 세심하게 짚어준다.
이런 분위기가 잘 알려져 있다 보니 이젠 몇 번 찾은 분들이라면 기본 준비하는 게 아주 자연스럽다. 보통 캐리어 하나 정도는 끌고 오시는데 우리 가족도 다를 바가 없다. 여기서는 간단한 캠핑 도구가 쏠쏠하게 쓰일만하다.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으면 세팅을 시작하며 놀 준비를 한다. 우선 작은 캠핑의자들을 거꾸로 해서 허리 받이로 준비한다. 접이식 탁자를 펴서 테이블 보를 씌우고는 플라스틱 와인잔을 조립해 놓는다. 집에서 가져온 과자, 과일이며 먹거리들도 꺼내 놓는다. 어두워지는 풍경에 분위기를 고조시킬 노오란 LED 램프를 올려놓으면 끝! 주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 무대 체크하는 사운드, 자라섬 지기들의 체조음악들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슬슬 즐길 마음이 남실댄다. 뺨을 스치는 가을바람과 멀리 바라뵈는 자연, 일류 레스토랑의 무드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캐리어 안에는 얇은 파카도 이미 대기하고 있다. 10월 자라섬의 호숫가 밤공기는 꽤 얼얼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터전은 그대로 두고 슬렁슬렁 걸어 다녀 본다. 올해는 어떤 이벤트들이 있나 살펴보고, 즐비한 가게들 중에서 맛난 먹거리를 미리 준비하기도 한다. 와인도 한 병 사야 하겠지. 아이를 위한 닭튀김에, 꼬지도 좋겠다. 나중에 밤공기가 추워지면 국물 어묵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내가 뱅쇼를 한잔 하며 무드를 밝혀 준다. 어느새 어스름해지는 주변, 무대의 조명은 여러 가지 색깔로 아름답게 반짝인다.
이런 편안한 풍경에서 진행되는 재즈 공연은 그 자체로 즐겁다. 음악을 알건 모르건, 어렵건 말건, 그게 중요할 게 있겠나. 모두들 그 자체를 충분히 즐기고 있다. 맨 앞자리에서 흥분하며 방방 뛰는 이들도 있지만 멀리 뒷자리에서 드러누워 쉬시는 분들도 계신다. 음악이 고조되기라도 하면 그 흥에 일어나서 몸을 흔들기도 하고, 누군가는 스윙 음악에 맞추어 댄스를 맞추기도 한다. 오로지 먹고 마시며 친구의 담소에 집중하는 분들도 계신다. 강아지까지 대동하신 이도 보이고, 아이를 무등 태우고 으쌰으쌰 하는 아빠의 웃음도 보인다. 흰머리가 지긋하신 두 노부부의 뒷모습도 있다. 어느 연인은 서로에 취해 고개를 기대고만 있다. 무대 위의 아티스트분들도 이 밤 이 분위기에 함께 취해 평소보다 더 큰 신명을 보여 준다. 관객들은 축제의 마음으로 열렬히 화답한다. 어느 누구도 푸쳐핸졉을 강요하지도 않고, 슬램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흥겨웁다. 마지막이 작열하는 불꽃놀이라면.... 단지 그 다양성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는 페스티벌이 너무 멋진 것이다.
행사는 3일간 진행되지만 이를 계획하는 방법, 가평으로 오는 방식들도 다양하다. 재즈매니아가 아닌 이상 3일 전체를 즐기려는 이들은 적을 것이다. 보통 무박, 1박 2일 정도로도 많이 이용하시는 것 같다. 서울에 계시는 분들은 페스티벌 공식 셔틀버스가 있어 합정역, 종합운동장 역에서 자라섬까지 왕복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지하철, 열차 itx를 활용하기도 한다. 캠핑까지 함께 즐기려는 분들은 자라섬 캠핑장이나 캐러반을 미리 예약하기도 하지만 인기가 많아 빨리 동나기도 하더라. 나 같은 경우는 1박 캠핑으로도 자 보고, 가평 인근의 숙소에서 지내보기도 했고, 페스티벌 후 바로 춘천이나 강원도를 찍어 여행을 보다 풍성하게 계획해 보기도 했다.
여름이 다가오는 지금 10월의 이야기를 왜 하냐고? 원래 여행이란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제 조금 있으면 라인업도 나올 것이고, 누군가는 어디에서 1박을 할 지도 궁리해 볼 것이다. 누군가는 가평에서 잣막걸리와 막국수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고, 누군가는 간 김에 가을 설악산까지 산행을 잡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페스티벌 찍고 강릉까지 가서 커피를 마실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아내를 꼬셔 보기도 할 것이고, 캠핑 장구를 만지작 거릴 것이고, 누군가는 연인과 친구에게 전화하여 약속을 잡을 것이다. 각자의 의미로 다가 올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에 국제적으로 내세울 재즈 페스티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운 나는 이렇게 한번 꼭지를 얘기해 본다.
페스티벌의 흥겨운 열기는 다른 영상으로 찾아보시면 될 것 같아서, 음악을 코로나 시절 온라인으로 진행했던 프로그램 중에서 가져와 보았다. 임미정은 한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단단한 연주력과 표현력이 돋보이는 분이라 생각한다. <Raindrops>는 그녀의 4집에 수록된 곡인데 두 가지 테마를 하나의 음악에 녹여내어 마치 비가 오기 전과 비 내리는 중, 그리고 그 후의 풍경을 이야기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비가 오면 빗방울 요정들이 사방으로 뛰어놀며 흠뻑 젖는 아이들에게 웃음이라도 선사해 줄 것 같단 말이지.
Mijung Lim Trio 임미정 트리오 [Composure] 2019년 <Raindrops> 자라섬재즈페스티벌 2020 Ver
https://youtu.be/OLWwmmWUHuQ?si=OvJFgB4C5UJOP2q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