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신은 태어났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가? 인간은 왜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할까? 존재하는 것은 맞는 것인가? 이러한 우리의 존재에 물음에 대한 답은, 신의 섭리, 자연의 질서, 우주의 운명.... 그냥 임시적인 혹은 설명되지 않은 영역으로 포장되어 되돌아오는 것이 전부일뿐이었다. 인간은 그냥 세상에 던져진 존재일 뿐인데 말이다.
스스로의 존재가 무엇에 근거하는 것인지에 관하여, 그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그런 인간의 본성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규명하여야 할 운명 앞에 서있다.
타인과 사회는 그러한 존재를 알려주는 거울이긴 하지만, 우리는 그 거울에 비춰봐도 우리 자신의 실체를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거울 속의 내가 나인지 알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만들어진, 그런 기대와 바람 속에 형성된 나는, 언제나 불안정하고 외부의 반응에 따라 변하는, 일시적인 환영이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런 시선 속에서 그런 관심을 받기 위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는 강박 속에 갇혀 버린다.
그럼 거울은 제쳐두고, 다시 내면으로 향해볼까? 나는 나를 알 수 없다. 프로이트 분석대로 자아는 의식과 무의식에 복잡한 충돌 구조로 구성되어 있고, 기저에는 억압된 욕망과 두려움, 온갖 정념과 생각, 기억들이 층층이, 아주 켜켜이 쌓여 있다. 타자의 흔적은 물론이고, 온갖 세월의 나이테가 두껍게 나를 감싸고 있다. 이러한 불안정한 내면 속에서라도 존재의 단서가 될 사유의 씨앗을 찾는 이유는, 이것이 그나마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번 몸을 움직여 세상과 부딪혀 보자. 행동은 인간의 사유가 세상 속으로 표출되는 과정이다. 사유만으로는 부족하고 사유가 행위와 결합하게 되면 비로소 존재가 실증된다. 방구석에서 생각만 주야장천 한다고 나의 존재를 찾을 수 없다. 생각하고 움직이는 과정을 통해 나의 존재와 조금은 가까워진다.
결국 우리의 존재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존재의 근거란 끊임없이 무엇이든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 가는 행위이다.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곧 자기 존재를 다시 써 내려가는 능력이며, 그 순간 우리는 세계와 자신을 동시에 새롭게 창조한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세계에서, 인간은 사유하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탱한다. 결핍과 불안은 우리가 존재의 이유를 다시 묻게 만드는 원동력이며, 그 물음 자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우리는 완전한 답을 갖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그 질문을 지속하는 한 존재의 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그렇게 불완전함 속에서 영원(永遠)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며, 그 과정 자체가 곧 ‘나’의 증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