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월화수목금. 주말을 기다리며... 우리는 이 사이클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문득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직업이라는 규격화된 노동시스템에 편입되기 위해, 학교를 다녔고, 경쟁을 하였고, 이렇게 살아왔던 것인가?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2025년 기준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약 5,180만 명이며, 이 중 직장인은 약 2,800만 명 내외로, 학령인구(6-21세, 약 700만 명)와 노인인구(65세 이상, 약 1,024만 명)를 포함한 비경제활동인구를 제외한 나머지 생산연령인구 대부분이 직장인이다.
이렇듯, 현대 사회는 직업을 가진 노동자를 사람의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있다. 소속과 노동을 통해서만,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임금, 금융 대출, 4대 보험 등 제도적 보호가 제공된다. 공휴일조차 직장인이 쉬는 날이라고 정의된다. 직업이 없는 사람은 사실상 사회 구조에서 배제된 듯한 느낌이다. 이 정도 되면, 국가와 이 제도가 노동을 강요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이 시스템은 우리가 이 세상에 있기 전부터 있어왔고, 수많은 세대에 걸쳐 '자본주의'와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고착화되어 이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노동의 의무는 이제 개인의 생존을 넘어, 거대해진 자본과 시스템 전체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악'이자 '집단적 의무'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시스템의 유지에 필요한 부품으로써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고 있으며, 그 대가로 생존을 허락받고 있다.
근대 이후 노동은 인간의 존엄을 증명하는 가장 숭고한 행위로 신성화되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은 종교적 명령에서 자본주의의 경제적 도덕으로 변형되었고, 근면은 덕목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일하지 않으면 무가치한 존재로 간주되는 사회적 윤리 속에 갇히게 되었다.
현대의 노동은 더 이상 자아실현의 수단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일한다. 노동은 자유의 실현이 아니라 의무의 반복이며, 인간은 노동의 주체가 아니라 노동 체계의 피고용자로 존재한다. 일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고, 일을 해도 자신을 완전히 증명할 수도 없는 구조 속에서 인간은 점점 더 깊은 피로감을 느낀다.
현대 사회는 “스스로를 착취하는 사회”이며, 이 사회 체계는 인간을 완전히 지치게 만들지도, 완전히 쉬게 두지도 않는다. 공휴일조차 쉬기 위한 날이 아니라, 다시 일하기 위한 휴식일뿐이다. 우리는 이 순환의 구조 속에서 더 이상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 일하는 것이 곧 살아가는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곧 일한다는 것으로 환원된 사회에서 인간은 점점 더 비인간화되어간다.
삶의 시간은 이미 시장의 시간에 종속되었고, 인간은 자신이 아닌 제도적 시계의 톱니로 존재한다. 이 체계 속에서 우리는 ‘나’를 점점 잃는다. 나의 감정, 나의 사유, 나의 존재는 노동의 효율성과 시장 가치라는 객관적 지표에 의해 평가된다. 그렇게 인간은 점점 더 효율적인 기계로 진화하면서, 동시에 점점 더 공허한 생명체가 되어가고 있다.
노동이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강력한 근대적 신화라면, 노동 이후의 인간은 그 신화를 넘어서는 존재다. 그것은 무위의 인간이 아니라, 사유의 인간이다. 행위로부터 벗어나 생각으로 존재하고, 생산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인간이다. 일하지 않아도 존엄한 인간, 소속되지 않아도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인간, 인류가 문명 이전부터 가졌던 원형적 인간성의 회복에 가깝다. 노동 이전의 인간, 즉 아직 직업으로 정의되지 않았던 인간은 자연과, 관계와, 사유와 더 가까이 있었다. 우리는 잊고 있을 뿐, 그런 인간의 형태는 여전히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다.
단언컨대, 우리는 이 피곤하고 불행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새삼스럽게도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한 이 시스템 속 노동의 쳇바퀴 안에 있는 우리의 모습을 몇 발짝 물러나서 바라보고, 그 부조리함에 대해 자각하는 것은 가능하다. 노동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존재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의무 속에서도 최대한 자신의 자율성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