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의 뜨거운 눈물

by 날개

형제자매 중에 가장 본인이 존재감이 없다고 말하는,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쓰는, 어렸을 적 공평하지 못한 대우를 하소연하고 눈물을 쉽게 흘리는, 매우 다혈질이면서도, 마음이 여린, 둘째 딸로 태어난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우연적인 출생 순서가 그 사람의 자아에 미치는 영향은 깊고도 미묘하기도 하다.


첫째 딸이 부모의 모든 '첫 경험'과 기대를 흡수하고, 막내아들은 '귀여움'과 보호라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보호의 관심을 독차지할 때, 둘째 딸은 그 경계 사이에 끼인 '중간 아이'(middle child)의 숙명을 짊어지게 된다. 이 위치에서는 누구라도 필연적으로 자신이 가족 공동체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근본적인 결핍감을 형성하게 된다.


첫째는 이미 모범생, 책임감 있는 아이, 혹은 특정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라는 '정체성'을 선점한 상태이기 때문에 둘째 딸은 자신이 인정받기 위한 고유성을 갈망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첫째와는 차별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려 애쓴다. 그런데, 비교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남아 인정받기 위한 이러한 전략은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고, "나는 불쌍하고, 세상은 나에게 불공평하다."라는 피해의식이나 만성적인 열등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인정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쌓일 때, 둘째 딸은 과도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지기 쉽다. 갈등 상황에서 희생적인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가족 구성원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억누른다. 이는 결국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억압하고 자아를 희생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결핍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형태를 바꿔 지속된다. 둘째 딸은 연인이나 동료, 자녀에게 자신이 겪었던 불균형한 사랑의 패턴을 반복한다. 자신이 받지 못한 이해를 주면서 동시에 그만큼의 보상을 기대한다. 그러나 상대는 그 맥락을 알지 못하기에 결국 관계는 오해와 피로로 이어질 수 있다. 프로이트가 말한 '투사'(projection)의 기제가 여기서 작동한다. 억압된 감정이 타인에게 전가되고, 그 타인이 자신의 상처를 대신 연기하는 배우가 된다. 이런 대물림은 유전적이라기보다 정서적 구조의 복제에 가깝다.


둘째 딸이 자신의 성장 배경을 인과적으로 이해하고, 그 안에서 형성된 반응을 자각할 때, 비로소 패턴의 재생산을 멈출 수 있다. 부모의 사랑이 불완전했음을 인정하되, 그것이 자신의 가치의 척도가 아님을 인식하는 순간이 회복의 시작이다. 즉, 스스로도 자신의 결핍이 구조적인 위치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지하고, '착한 아이'가 되려는 억압적인 의무감을 내려놓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 결핍을 인지하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비교와 경쟁으로부터 진정한 자아를 해방시키는 길이다.


역설적으로 둘째 딸의 결핍은 창조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내면의 빈틈을 메우려는 시도는 예술, 학문, 사유의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하는데, 실제로 많은 작가나 연구자는 어릴 적 결핍을 사유의 자양분으로 승화했다. 둘째 딸의 결핍은, 그것이 부정되지 않고 성찰의 언어로 변환될 때,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과 사회적 감수성으로 진화한다.


둘째 딸의 회복은 부모에게 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로의 귀환을 통해 이루어진다. 더 이상 비교나 역할 속의 타자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자립적으로 승인하는 주체로서의 복원시켜야 한다. 결핍은 더 이상 결함이 아니라 통찰의 흔적이 되어 이 세상에 울림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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