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당국의 통합과 진화

by 날개

경쟁 당국(competition authority)이 전통적인 반독점(antitrust) 집행 권한을 넘어 특정 경제 분야의 부문별 규제(sector-specific regulation) 권한까지 통합적으로 수행하기도 하는 사례는 오늘날 복잡다단한 규제환경에서 나타나는 글로벌 트렌드이다.


이는 경쟁정책과 산업정책이 충돌하지 않고 통일성 있게 적용되도록 하고,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던 규제 업무를 통합하여 수행함으로써 중복규제를 피할 수 있으며, 행정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또한, 경쟁 당국이 직접 부문별 규제를 담당함으로써, 규제 활동 자체가 경쟁 촉진이라는 목표에 맞춰 일관되게 수행되도록 하는 장점을 갖는다. 아래에서는 OECD가 2021에 발행한 "Competition Enforcement and Regulatory Alternatives"를 참고하여 해외사례를 살펴보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검토한다.


호주 경쟁소비자위원회(ACCC: Australian Competition and Consumer Commission)는 연방 차원의 반독점 집행뿐만 아니라, 방대한 경제적 규제 권한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ACCC의 통합 규제 기능은 통신(telecommunications), 에너지(energy), 교통(transportation), 우편 서비스(postal services), 수자원(water resources) 분야에 미친다. ACCC는 이들 주요 인프라 및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 경쟁법의 적용과 함께 부문별 특성에 맞는 경제적 규제를 병행하여, 시장의 효율성과 소비자의 이익을 동시에 보호한다.


에스토니아 경쟁 당국(Estonian Competition Authority)도 2010년부터 조직 내부에 경쟁 부서와 규제 부서를 분리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는 경쟁과 규제 기능을 분리하되, 하나의 기관 내에서 통합 관리하는 구조이다. 규제 부서가 담당하는 분야는 에너지(energy), 물(water), 우편(postal), 통신(telecommunications), 철도(railway) 분야의 규제를 담당한다, 이러한 구조는 기관 내부에서 경쟁 정책과 산업 규제 정책 간의 내부 조율과 일관성 있는 집행을 용이하게 한다.


네덜란드 소비자 및 시장 당국(ACM: Authority for Consumers and Markets)은 2013년 4월 1일에 소비자 당국(consumer authority), 경쟁 당국(competition authority), 독립 우편 및 통신 당국(OPTA: Independent Post and Telecommunications Authority)의 세 기관을 완전히 통합하여 설립되었다. ACM은 통합된 규제 기관으로서 기존의 통신 및 우편 분야를 넘어 교통(transportation) 및 의료(healthcare) 분야에서도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권한까지 보유한다. 이는 경쟁 집행과 소비자 보호, 핵심 산업 규제를 하나의 우산 아래에 둠으로써 규제 비용을 절감하고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는 모델로 평가된다.


스페인 국가 시장 및 경쟁 위원회(CNMC: Comisión Nacional de los Mercados y la Competencia)는 경쟁 당국과 다양한 부문별 규제 기관을 합친 대표적인 통합 모델이다. CNMC가 담당하는 부문별 규제 분야는 통신(telecommunications), 에너지(energy), 철도(railway), 공항(airports), 오디오-비주얼(audio-visual) 분야로, 국가 핵심 기간산업 대부분을 포괄한다. CNMC는 광범위한 시장과 산업에 걸쳐 경쟁법과 부문별 규제를 일관되고 통일성 있게 적용함으로써 기업이나 금융 기관이 서로 다른 국가나 관할 구역, 혹은 서로 다른 규제 기관이 적용하는 규제의 차이를 이용하여 이익을 얻으려는 '규제 차익'(regulatory arbitrage)을 방지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들 해외 사례의 핵심적인 목표는 경쟁 정책과 산업 규제를 일관되고 통일성 있게 적용하는 것이다. 경쟁 당국이 부문별 규제 권한을 갖게 됨으로써, 특정 산업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반경쟁적 행위와 규제상의 문제를 동시에, 유기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는 규제 집행의 중복을 피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 목표를 부문별 규제 활동에 자연스럽게 내재화하여, 시장 전반의 효율성 증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는 순수한 경쟁 당국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으며, 통신, 에너지, 금융 등 주요 산업에 대한 부문별 규제는 각 소관 부처(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가 담당한다. 이러한 분리된 구조는 경쟁 정책과 산업 정책 간의 충돌이나 규제의 불일치를 야기할 위험을 내포한다.


해외 사례와 같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최소한 핵심적인 인프라 산업(통신, 에너지 등)의 경제적 규제 권한 일부를 통합하거나, 에스토니아 모델처럼 규제 전담 부서를 설치하여 내부적으로 경쟁과 규제 조율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통합은 규제 기관 간의 불필요한 중복 규제 해소와 정책 일관성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통합은 내부적으로 경쟁 전문성과 부문별 규제 전문성 간의 구분벽을 만들거나, 거대해진 기관의 관료화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독립성과 전문성을 유지하는 내부 구조 설계가 필수적이다. 궁극적으로는 경쟁법 집행을 통해 시장의 활력을 높이려는 국가 목표를 부문별 규제에 효과적으로 반영하여, 규제 정책의 통일성과 실효성을 제고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통적인 기간산업 분야에서 경쟁 당국에 부문별 규제 권한을 통합하여 규제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추세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 모델'이 새롭게 등장한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도 무조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는 전통적인 통신 규제의 일부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 특성과 규제 목표가 복잡하게 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EU가 디지털 시장법(DMA)에서 경쟁 이슈를, 디지털 서비스법(DSA)에서 이용자 보호 이슈를 명확히 분리하여, 전자는 유럽집행위원회(EC)가 후자는 EC와 각 회원국 기관이 협력하여 집행하도록 한 것은, 규제 대상의 특수성과 규제의 상이한 목표를 고려하여 기능적 전문성을 극대화한 전략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곧, 공정위가 기간산업 규제에서는 통합을 통한 일관성 확보를 고려할 수 있지만, 온라인 플랫폼과 같은 새로운 디지털 시장에서는 규제의 목표와 성격에 따라 최적의 규제 주체를 분리하여 전문성을 확보하는 접근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시사점을 제공하며, 시장의 특성을 고려한 규제 구조 설계의 다양성이 중요한 과제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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