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선택인가 필연인가

철학적 성찰

by 날개

결혼이란 무엇인가?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인가? 결혼을 선택했다면 결혼생활의 처신술은 무엇인가?


문득 드는 이런 의문에 대하여, 철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미셀푸코의 저서 'the third volume of Histoire de la sexualité'(자기배려) 제5장 아내(1.부부의 유대) 편을 통해 그 실마리를 파헤쳐 보자.


많은 고대 철학자들은 인류를 결혼이라는 형태의 공동체로 이끄는 것은 '자연'이라고 하면서, 남녀의 결합은 그것의 효용과 책무가 가져올 이점에 대하여 역설한다. 결혼은 짝을 지어 무리 속에서 사는 동물 본성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고, 부부라는 공동체는 서로 배려하고 서로에게 관심과 호의를 보여주는 삶의 동반관계로서, 결혼은 말그대로 자연스러운 것이고 이것은 인간의 이성과도 일치하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전 생에에 걸쳐 부부의 쌍수성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며, 동물로서, 이성적 존재로서, 이성에 의해 인류에 연결된 개인으로서, '부부적 존재'라고 주장한다. 특히, 스토아학파는 결혼은 자연에 부합하여 살기를 원하는 모든 인간 존재의 보편적 의무이자 사회와 인류에 유용한 삶을 살고자 하는 개인의 사회적 책무로서 인식하였으니, 이는 쾌락을 이성에 굴복시켜야 한다는 그들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속에서, 결혼을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관하여 고대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오랜 논쟁이 벌어졌다. 결혼의 장점과 단점은 그때 당사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단순하고도 명확했던 것 같다. 장점은 합법적으로 아내와 자손을 갖게된다는 유익함, 단점은 처자식을 부양하고 보살피며 그들이 병이나 죽음에 처할 수 있다는 염려와 곤란이다. 특히, 에피쿠로스 학파는 '특정 상황'이 부부라는 결합형태를 바람직하게 만들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결혼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특정 상황은 '철학적 삶의 선택'이다. 철학자의 삶의 목표는 자기 영혼의 배려, 정념의 정복, 정신의 평온 추구로 요약될 수 있는데, 철학자의 삶에 있어 독특한 양식과 결혼에서 요구되는 의무들을 현실에서 양립시키는 삶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당시 철학자들에게는 처자식을 포함하여 어떤 소유도 의미가 없었고, 결혼생활에서 비롯되는 사사로운 책무들과 귀찮음이 영혼을 교란시키고 명상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개개의 가정을 보살피는 것보다 보편적 인류 전체의 진리의 각성을 위한 일이 본인들의 사명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아무튼, 결혼을 선택했다면, 고대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결혼생활관을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철학자들은 결혼생활에 있어서 첫째로, 상호보완적 과업과 행동의 분배 문제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남편은 아내가 수행할 수 없는 일을, 아내는 남편이 수행할 수 없는 일을 분담하여 수행하면서, 가정의 번영이라는 동일한 공통 목표를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결혼은 두 배우자가 각각 자신의 삶을 둘의 삶으로 이끌어 함께 공동된 하나의 삶을 이루는 행동양식을 추구하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아내에게는 남편의, 남편에게는 아내의 부재만큼이나 참기 어려운 것은 없고, 슬픔을 줄이고 기쁨을 키우고 불운을 극복하는 데는 같이 있는 것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 함께 사는 기술은 '말하는 기술'이라고 하면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부부 간에는 상대방에게 자신이 한 일을 솔직히 얘기하고, 서로 물어보고 격려하면서 기뻐해야 한다고 하는데, 진솔한 대화는 애정을 날이 갈수록 더 깊고 강하게 하는 화학작용을 일으킨다고 조언한다. 궁극적으로 부부는 결혼생활에서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방식, 도덕적 태도, 덕성 면에서 본질적 단일체가 되어야 하고, 애정을 통해 원소들이 다시 분리될 수 없는 정도의 결합형태를 실현해야 한다.


요컨대, 결혼생활에서의 처신술이라고 한다면, 자기 배려와 연마를 통해 부부의 유대속에서 함께 단일체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되어야 한다.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유대감을 연결할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행동의 절제는 필수이고, 점점 타인에 대한 의무의 이행, 특히 서로에 대한 존경의 실행으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배려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와는 지구 저 반대편에 수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보편적인 인류로서의 동질감을 느낀다.

1757211833.jpg 견유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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