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디어 시장 규제 history(2) : 텔레비전의 진화
지난 포스팅에 이어 이번에는 텔레비전(TV)이 전성기인 시대의 이야기이다.
라디오 다음으로 혜성같이 등장하여 전성기를 맞은 매체는 바로 텔레비전이다. 1920년대가 라디오의 전성기였다면, 1950년대는 TV가 전성기를 맞았는데, 1960년까지 미국 가정의 80% 이상이 TV를 소유하게 되었다. 초기에 TV 프로그램은 초기에는 그대로 반영했으며, 라디오 산업에서 확고히 자리 잡은 NBC, CBS와 같은 방송사들이 TV 방송시장을 지배했다.
연방통신위원회(FCC)는 TV 방송 신규허가와 갱신을 통제하였는데, FCC가 장려한 컨텐츠는 단일 출처에서 제작된 네트워크 프로그램과 지역 뉴스 및 시사 프로그램을 조합하여 방영하는 것이었다. 초기 텔레비전 방송 주파수 대역은 좁은 대역폭의 VHF(very high frequency) 채널로 제한되었으며, 1941년에는 채널 1~6(채널 1은 군용)이 할당되었고 1945년에 채널 7~13이 추가되었다. 좁은 주파수 대역에 한정되어 TV 방송이 VHF 채널만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방송시장은 독과점 시장이었고 TV 방송국은 수익성이 매우 높았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은 설립 초기부터 청취자나 시청자에게 TV 수신기 구입 비용 제외하고 서비스를 무료(free)로 제공하였고, 방송국은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했다.
TV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 증가와 VHF 채널의 제한된 수를 인식한 FCC는 1952년 UHF(ultra high frequency) 채널에서의 방송을 승인했다. UHF 채널은 더 넓은 주파수 대역에서 신호를 송출할 수 있어 인구 밀집 도시 지역에서 더 나은 수신 품질을 제공할 수 있다. UHF 신호는 VHF 신호보다 강력했지만 장거리 전송이 불가능했는데, FCC는 UHF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더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 예상은 빗나갔다. UHF 방송사는 보통 네트워크와 제휴하지 않은 독립 방송국이었으므로, UHF 방송국의 신호는 해당 방송 지역 밖에서는 수신이 어려웠고, UHF 방송국은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지역에서 프로그램을 재방송할 수 없었다. 또한, UHF 방송사는 모든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TV 방송에서 틈새시장을 확보하지 못하면 프로그램 제작 비용을 회수하기 어려웠다. 많은 UHF 방송사는 제작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고 주로 지역 시장에 맞춰 방송할 수 있는 지역 스포츠 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렸다. 이러한 UHF 방송국의 제한된 송신 범위와 특화된 프로그램 편성으로 인해, FCC가 할당한 UHF 채널 중 채워진 채널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거의 없었다.
TV 채널의 확산과 프로그램 편성의 다양화는 FCC와의 예상과는 다르게 다른 곳에서 대박이 터졌는데, 그것은 케이블TV이다. 외딴 지역의 수신 상태 개선을 위해 지역 사회들은 고지대에 안테나 기지국(head ends)을 설치하고 동축 케이블(coaxial cable; 중심축에 내부 도체가 있고 이를 절연체로 둘러싼 다음 외부 도체를 원통의 그물 형태로 씌운 후 최종적으로 피복으로 감싼 형태의 케이블)을 통해 신호를 지역 내 각지로 전송하기 시작했다. 케이블을 이용한 전송은 신호 품질을 높게 유지할 수 있었지만, 케이블 사업자들은 일반적으로 케이블 설치 허가와 지상권(케이블이 지나가는 토지 사용권)을 지자체로부터 승인받아야 했다. 결국, 케이블TV는 전 미국에 걸친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동축 케이블 수를 제한하기 위해 한 개 또는 극소수의 케이블 사업권만 허용했는데, 20세기 내내 동축 케이블은 지상에 설치되었다. 네트워크 텔레비전과 달리 케이블TV는 VHF와 UHF를 포함한 다수의 채널을 묶은 ‘패키지’(packages) 형태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되었다. 때로는 동일한 네트워크의 다른 도시 채널들이 패키지에 포함되기도 했다. 케이블TV 사업자들은 특정 지역에서 경쟁이 없거나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적정한 가격을 책정했다. 하지만, FCC는 케이블TV 산업이 등장한 직후 규제 권한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FCC의 케이블TV 규제는 20세기 중후반 미국 기업 활동의 주류로 부상한 통신 매체의 백그라운드에 잠재되어 있던 헌법적(constitutional) 쟁점을 표면화시키게 되는데...
이후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