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의 독점을 승인한 대법원

130년 전 설탕 트러스트의 망령이 플랫폼 경제에 던지는 경고

by 날개

19세기 후반 미국은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거대 기업들이 자본과 권력을 독점하며 시장 질서를 흔드는 혼란기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대두된 미국 대 나이트사 사건(United States v. E. C. Knight Co., 156 U.S. 1, 1895)은 미국 반독점법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판결 중 하나로 기록된다. 이 사건은 당시 미국 설탕 정제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아메리칸 슈거 리파이닝 컴퍼니(American Sugar Refining Company)가 경쟁사들을 인수하여 실질적인 독점 체제를 구축한 것에 대해 연방 정부가 셔먼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 위반을 근거로 해산을 요구하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연방 대법원은 8대 1이라는 압도적인 다수의 의견으로 정부의 청구를 기각하며 기업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판결은 단순히 한 기업의 독점 여부를 판단한 것을 넘어, 연방 정부의 규제 권한과 주(State)의 자치권 사이의 헌법적 경계를 획정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당시 대법원이 이러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엄격한 이원적 연방주의(Dual Federalism)와 법률 형식주의(Legal Formalism)가 자리 잡고 있었다. 멜빌 웨스턴 풀러(Melville Weston Fuller, 1833-1910) 대법원장은 다수 의견에서 "상업(commerce)에 속하는 것은 미국 연방의 관할권 내에 있지만, 상업에 속하지 않는 것은 주의 경찰권(police power) 관할권 내에 있다."라고 명시하며, 제조와 상업을 엄격히 분리하였다. 법원은 설탕을 정제하는 제조(manufacturing) 행위는 본질적으로 지역적 성격이 강하며, 상업은 제조 이후에 발생하는 부차적인 단계라고 보았다. 따라서 제조 단계에서의 독점이 이후의 유통이나 가격에 영향을 줄지라도 이는 간접적인(indirect) 효과에 불과하며, 이를 규제하는 권한은 헌법상 주 정부에 귀속된 배타적 권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국가 권력의 비대화를 경계하고 주권의 자율성을 보존하려는 당시 보수적 법철학의 투영이었다.


이러한 논리적 틀 안에서 법원은 셔먼법의 적용 범위를 극도로 제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의회는 독점 자체를 직접 규제할 권한을 주장하려 하지 않았으며, 피고들의 계약은 필라델피아 정제소 취득 등 특정 주 내의 사업에만 관련되었으므로 주간 상거래(interstate commerce)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보았다. 멜빌 웨스턴 풀러(Melville Weston Fuller, 1833-1910) 대법원장은 심각하고 시급해 보이는 악들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헌법적 타당성조차 의심스러운 편법(expedient)으로 이어져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보다는 차라리 이를 인내하는 편이 낫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결과적으로 이 판결은 셔먼법이라는 강력한 칼을 쥐고도 제조라는 방패 뒤에 숨은 독점 기업들을 처벌할 수 없게 만드는 법적 공백을 창출했다.


이러한 판결의 파급효과는 파괴적이었다. 이후 약 10년간 셔먼법의 집행은 법률의 모호성과 대법원의 보수적 해석이 맞물려 매우 위축되었고, 기업들은 제조업이라는 명분 아래 더욱 대담하게 결탁(combination)과 트러스트를 형성하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다. 정부의 규제 의지는 꺾였고, 시장의 경쟁 질서는 사실상 방치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법 형식주의는 곧 강력한 사회적 반작용을 불러일으켰다. 거대 자본의 횡포에 고통받는 대중의 분노가 커지면서, 유일한 반대 의견을 냈던 존 마셜 할런(John Marshall Harlan, 1833-1911) 판사의 경고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할런 판사는 반대 의견에서 연방 정부가 자본의 결탁 앞에 팔짱을 끼고 무기력하게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전국적인 생필품 가격을 임의로 통제하는 조합의 존재가 헌법이 달성하고자 했던 주간 상업적 교류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침해한다고 보았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제조와 상업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실체였으며, 이를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현실의 경제적 지배력(economic power)을 외면하는 행위였다. 이 외로운 외침은 훗날 20세기 초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 행정부가 추진한 '트러스트 파괴'(trust-busting) 정책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이후 법원의 기류는 점진적으로 변화하여, 제조와 상업의 연결성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영향(substantial effect)이 있다면 연방 정부의 규제가 가능하다는 실용주의적 해석으로 이행했다. 이 과정은 대법원의 판결이 시대적 요구와 동떨어져 지나치게 경직되거나 한쪽 극단으로 치우칠 경우, 시장의 정의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되었다. 법적 논리에만 매몰되어 현실의 경제적 실체를 외면한 판결은 결국 법의 효용성을 스스로 실추시키고 사회적 비용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보수적 태도와 그로 인한 파급효과는 비단 과거 미국의 사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포스코(POSCO)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 등에서 나타난 보수적인 해석이 공정거래법의 집행의 유연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시장 지배력 남용을 판단함에 있어 입증 책임을 매우 엄격하게 요구하거나, 경쟁 제한의 실질적 위험성을 좁게 해석하는 경향은 나이트사 사건에서 미국연방대법원이 보여준 법률 형식주의의 흔적과 닮아 있다. 이러한 보수적 판례 형성은 규제 당국의 적극적인 법 집행을 위축시키고,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법이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줄 가능성이 크다.


결국 1895년의 설탕 트러스트 판결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 논의에도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현대의 플랫폼 기업들은 과거 설탕 트러스트처럼 물리적 공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과 데이터 네트워크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게이트키퍼(gatekeeper)로서 시장을 지배한다. 이때 130년 전 연방대법원이 범했던 오류처럼 플랫폼의 행위를 과거의 낡은 서비스나 중개의 범주로만 한정하여 해석한다면, 디지털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독점적 폐해를 적기에 방지할 수 없다. 기술의 변화와 경제적 실질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직된 법 해석은 자칫 시장의 역동성을 잠식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법의 해석은 시대의 변화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하면서도, 동시에 공정한 경쟁이라는 근본적 가치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 역시 특정 기업에 대한 형식적 규정 준수 여부를 따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전체 경제 생태계와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을 면밀히 따지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멜빌 웨스턴 풀러(Melville Weston Fuller, 1833-1910) 대법원장의 형식 논리가 초래했던 시장의 마비를 반면교사 삼아, 현대의 사법부와 규제 당국은 존 마셜 할런(John Marshall Harlan, 1833-1911) 판사가 강조했던 법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나이트사 사건은 법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닌 추상적 논리의 유희로 전락할 때 발생하는 위험을 경고한다. 우리나라 역시 급변하는 플랫폼 경제 시대를 맞아, 판례의 보수성에 갇혀 실질적인 독점의 폐해를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경제적 실체주의(economic substantialism)에 기반한 합리적인 법 해석만이 거대 권력의 횡포로부터 시장의 혁신과 소비자의 권리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130년 전의 낡은 판결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법은 항상 살아 움직이는 경제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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