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자본의 해체와 재편

석유에서 인공지능까지 미국 반독점 사법 통사의 대장정

by 날개

미국 반독점법의 역사는 거대 자본의 탄생과 이를 통제하려는 국가 권력 간의 끊임없는 투쟁의 기록이며, 그 중심에는 항상 사법부의 결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세기말 도금 시대의 산업 트러스트에서부터 21세기 인공지능(AI) 혁명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법부는 '기업 해체 및 분할'(divestiture)이라는 가장 강력한 사법적 칼날을 휘두르며 시장의 경쟁 질서를 재편해 왔다. 셔먼법(Sherman Act) 제정 이후 사법부가 견지해 온 논리는 시대에 따라 변천해 왔으나, 독점적 지배력이 혁신을 가로막고 소비자 후생을 저해할 때 국가가 기업의 물리적 골격을 강제로 해체할 수 있다는 원칙만큼은 반독점 사법 통사의 핵심 줄기를 형성해 왔다.


1904년 Northern Securities Co. v. United States, 193 U.S. 197 (1904) 판결에서 사법부는 제임스 제롬 힐(James Jerome Hill, 1838-1916)과 존 피어폰 모건(John Pierpont Morgan, 1837-1913)이 결성한 거대 철도 지주회사의 해체를 명했다. 존 마셜 할란(John Marshall Harlan, 1833-1911) 대법관은 지주회사를 통한 결합이 형식적으로는 적법할지라도 실질적으로 경쟁을 말살한다면 셔먼법의 칼날을 피할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이는 산업화 초기, 자본의 결합이 정치적 권력을 압도하려 할 때 사법부가 시장 경쟁이라는 공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내린 단호한 결단이었다. 이는 이후 1911년의 Standard Oil Co. of New Jersey v. United States, 221 U.S. 1 (1911) 사건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법부는 정보통신이라는 새로운 인프라 독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82년 United States v. American Tel. & Tel. Co., 552 F. Supp. 131 (D.D.C. 1982) 사건, 즉 AT&T 해체 판결은 현대적 의미의 구조적 구제조치가 정점에 달한 사례다. 해럴드 그린(Harold H. Greene, 1923-2000) 판사는 AT&T의 수직 계열화가 장거리 전화 및 장비 시장의 진입 장벽을 형성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마 벨(Ma Bell)'이라 불리던 거대 독점체는 7개의 지역 전화 회사로 분할되었으며, 이는 사법부가 기술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네트워크 산업의 구조를 인위적으로 재설계한 가장 대담한 시도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윌리엄 허브스 렌퀴스트(William Hubbs Rehnquist, 1924-2005) 대법원장이 이끄는 법원이 들어서며 사법 기조는 급격히 보수화되었다. 리처드 앨런 포스너(Richard Allen Posner, 1939-)로 대표되는 시카고학파의 법경제학은 '기업 해체'와 같은 구조적 조치가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오판의 비용'을 발생시킨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기조는 2001년 United States v. Microsoft Corp., 253 F.3d 34 (D.C. Cir. 2001) 사건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1심의 기업 분할 명령은 항소심에서 파기되었고, 법원은 기술 혁신이 빠른 IT 산업에서 물리적 해체보다는 영업 관행의 수정이라는 행태적 구제조치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20년대에 접어들며 미국 사법부는 리나 칸(Lina Khan, 1989-) 등이 주도하는 신브랜다이스(Neo-Brandeisian) 학파의 부상과 함께 다시금 '해체'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그 최전선에 있는 사건이 바로 United States v. Google LLC (2024) 사건이다. 아미트 메타(Amit Mehta, 1971-)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2024년 8월, 구글이 검색 시장에서 불법적인 독점 지위를 유지해 왔다고 판결했다. 현재 법무부는 구글의 크롬(Chrome) 브라우저 매각이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분리 등 1982년 AT&T 사건 이후 가장 강력한 해체 명령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데이터 독점'이 인공지능 시대의 경쟁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는 사법적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동시에 진행 중인 Federal Trade Commission v. Meta Platforms, Inc. 사건 역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메타(당시 페이스북)가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인수한 행위가 잠재적 경쟁자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킬러 인수'였다고 주장하며, 이들 기업의 강제 매각(divestiture)을 요구하고 있다. 구글 사건이 검색 엔진이라는 '현재의 통로'를 다룬다면, 메타 사건은 소셜 미디어라는 '데이터 생성지'의 독점 구조를 겨냥한다. 사법부는 이제 과거의 단순한 가격 담합을 넘어, '데이터 네트워크 효과'가 어떻게 새로운 혁신의 등장을 가로막는지에 대한 구조적 분석에 집중하고 있다.


구글과 메타 사건의 공통점은 이들이 단순한 기업을 넘어 디지털 경제의 '기반 시설'(infrastructure)이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 철도와 전화가 물리적 이동과 통신을 지배했다면, 현재의 빅테크는 정보의 흐름과 AI 학습의 핵심 자산인 데이터를 지배한다. 사법부는 이들이 보유한 수직적 계열화(검색-브라우저-OS-광고)가 경쟁자의 씨를 말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AT&T 해체 당시와 유사한 '구조적 분리'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렌퀴스트 시대의 규제 소극주의로부터 완전히 탈피하여 다시 '혁신주의 시대'의 공격적인 사법 개입으로 회귀하는 거대한 유턴(U-turn)이다.


그러나 차이점도 명확하다. 과거 스탠더드 오일이나 AT&T의 해체는 물리적 자산의 분할이 명확했으나, 구글이나 메타와 같은 소프트웨어 및 데이터 기업의 해체는 훨씬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동반한다. 크롬을 분리했을 때 검색 데이터의 공유를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 알고리즘의 독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사법부의 고민은 과거보다 훨씬 깊다. 또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자국 기업을 해체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정치적 압박 역시 현대 사법부가 직면한 새로운 변수다.


사법부의 이러한 흐름은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앞두고 더욱 긴박해지고 있다. AI 모델의 성능이 데이터의 양과 질에 결정되는 상황에서, 구글이나 메타와 같은 데이터 독점체의 구조를 깨뜨리지 못한다면 AI 시장 역시 '승자 독점'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재 미 사법 당국의 판단이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는 매각 명령과 분할 조치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벌하는 징벌적 의미를 넘어, 차세대 산업인 AI 시장에서 공정한 출발선(level playing field)을 만들기 위한 '시장 설계'의 성격이 강하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1946-)의 재집권은 이러한 사법 기조에 또 다른 변곡점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리나 칸 식의 공격적인 규제에는 비판적이지만, 구글이나 메타와 같은 빅테크의 '정치적 편향성'이나 '표현의 자유 제한'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 하에 보수적 법리인 '효율성'과는 별개로 빅테크 해체 논의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법부는 이제 경제적 논리와 정치적 명분 사이에서 거대 플랫폼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고차원적인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법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게 미국 사법부의 이 100년 대장정은 생생한 교과서와 같다. 한국 역시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독점 문제와 구글,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의 국내 시장 점유율 확대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미국의 사례는 특정 기업에 대한 해체 명령이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전체 산업 생태계의 활력을 되찾기 위한 구조적 처방임을 시사한다. 특히 데이터와 AI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된 상황에서, 독점적 플랫폼이 혁신 스타트업의 진입을 막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사법부의 엄중한 감시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1904년 철도 재벌 해체에서 시작해 2025년 구글과 메타로 이어지는 미국 반독점 사법의 역사는 '독점은 혁신의 적'이라는 대원칙을 확인해가는 과정이다. 렌퀴스트 법원이 효율성을 위해 잠시 내려놓았던 사법적 메스는 이제 AI 시대의 공정 경쟁을 위해 다시금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다. 기업의 해체와 매각 명령은 사법부가 시장에 가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수술이지만, 그것이 고인 물을 흐르게 하고 새로운 기술의 탄생을 돕는다면 사법부는 기꺼이 그 칼을 들어왔다. 석유와 철도의 시대를 지나 데이터와 AI의 시대로 흐르는 경쟁법의 강물은, 결국 독점이라는 댐을 무너뜨리고 자유로운 경쟁의 바다로 나아가려는 사법적 의지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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