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접근권과 AI 시장의 진입 장벽

앤트로픽 명령이 선언한 ‘비표현적 이용’의 시장 가치

by 날개

인공지능(AI)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침해 여부를 둘러싼 사법적 판단이 기업의 재산권 보호와 기술 혁신의 촉진이라는 두 갈래 길에서 충돌하고 있다. 2025년 6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District Court for the Northern District of California)의 리타 린(Rita F. Lin, 1978-) 판사는 Bartz et al v. Anthropic PBC(Case 3:24-cv-05417) 사건에서 원고 측 작가들이 제기한 저작권 침해 주장을 상당 부분 배척하는 취지의 명령(order)을 선고하였다(전문). 이는 앞선 톰슨 로이터 판결이 ‘데이터 봉쇄’에 무게를 두었던 것과 달리,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학습 과정을 ‘변형적 사용’으로 넓게 인정함으로써 AI 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동태적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중요한 경쟁법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사건의 발단은 작가 및 저작권자들이 앤트로픽의 인공지능 클로드(Claude)가 자신들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복제하여 학습했다며 집단 소송을 제기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원고 측은 앤트로픽이 저작권을 침해하여 확보한 데이터를 통해 상업적 이득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원저작물의 시장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린 판사는 앤트로픽의 학습 행위가 원저작물을 그대로 복제하여 배포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통계적 패턴을 분석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생성하는 고도의 변형적(Highly Transformative)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 주목하였다(order at 12). 법원은 AI가 원저작물의 표현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능을 학습하기 위한 도구로 데이터를 활용했다는 기술적 실체를 법리적으로 수용하였다.


경쟁법적 관점에서 이 명령의 가장 핵심적인 기여는 데이터 접근성과 혁신 시장의 구조에 대한 전향적인 시각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톰슨 로이터 판결이 데이터를 사실상 필수설비(essential facilities)처럼 보호하여 후발 주자의 진입을 막았던 것과 대조적으로, 앤트로픽 명령은 데이터를 패턴 추출의 대상으로 보아 공정 이용의 범위를 넓혔다. 만약 법원이 학습 단계에서의 복제를 엄격한 저작권 침해로 규정했다면, 오직 천문학적인 자금력을 보유한 빅테크 기업들만이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AI 시장을 과점하게 되었을 것이다. 린 판사의 판단은 중소 개발사와 스타트업들에게 최소한의 학습 자원 접근권을 보장함으로써 시장의 집중화를 방지하고 혁신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경쟁 정책적 효과를 낳았다.


린 판사는 공정 이용의 제4요소인 시장 영향에 대해서도 원고 측의 주장을 면밀히 반박하였다. 그는 AI 모델이 학습 데이터를 직접적으로 대체하여 시장에서 판매되지 않는 한, 단순히 학습 과정에서 데이터를 소비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원저작물의 잠재적 시장이 파괴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order at 21-23). 이는 지배적 콘텐츠 사업자들이 저작권을 내세워 학습 데이터 라이선스 시장이라는 새로운 수익원을 독점적으로 창출하려는 시도에 제동을 건 것이다. 경쟁법 박사의 시각에서 볼 때, 이는 기존 권리자들이 자신의 지배력을 인접 시장인 AI 훈련 시장으로 부당하게 전이(leveraging)시키는 행위를 차단하고, 기술의 파급효과(spillover)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또한, 본 명령은 알고리즘의 영업비밀성과 데이터 투명성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제시한다. 앤트로픽은 자신들이 활용한 데이터의 처리 방식이 고유의 기술적 혁신임을 강조하였고, 법원은 이를 단순한 복사가 아닌 가공의 영역으로 인정함으로써 기업의 기술 개발 유인을 보호하였다. 톰슨 로이터 사건에서의 비바스 판사가 생성형 AI와 비생성형 AI를 엄격히 구분하여 비생성형 AI의 변형성을 낮게 보았던 것과 달리, 린 판사는 대규모 언어 모델이 수행하는 분석적 이용(non-expressive use)의 가치를 전격적으로 수용하였다(Order at 14). 이는 데이터의 사적 소유보다 사회적 활용이 가져오는 소비자 후생의 증대가 더 크다는 판단이 저작권법의 형식을 빌려 표현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바츠 v. 앤트로픽 명령은 인공지능 시대의 경쟁법적 정의가 자산의 보호가 아닌 기회의 개방에 있음을 시사한다. 데이터가 특정 기업의 영업비밀이나 배타적 재산권으로 묶여 혁신의 병목 현상을 초래할 때, 사법부가 공정 이용이라는 법리를 통해 그 물꼬를 터준 셈이다. 이 결정은 기술 권력의 세습을 방지하고 동태적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대 경쟁법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향후 AI 산업의 지형은 데이터를 잠근 자와 푸는 자 사이의 법적 공방 속에서 결정될 것이며, 앤트로픽 명령은 후자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보다 경쟁적인 AI 생태계 구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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